세정제, 살균제, 살충제, 화장품, 방향제, 접착제, 코팅제 등 우리는 수많은 화학제품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이를 통해 우리 몸 속에 화학물질이 축적되고 있다.
이런 화학물질들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와 불안감으로 생긴 것이 화학물질 공포증(케모포비아)이다. 케모포비아가 심한 사람은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일체 거부하는 노케미족(no-chemistry 族)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활 속 화학물질은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때문에 피하는 것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고 관리할 수는 없을까. 지난 16일 ‘알수록 쓸모있는 생활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과 관리방법’을 주제로 과학기술회관서 열린 제10회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에서는 그에 대해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위해성 평가‧관리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케모포니아 막으려면 위해평가체계 제대로 갖춰야
올해 초 실시한 ‘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7%가 화학물질과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54.3%는 화학물질이나 화학제품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기피행동’을 보였다.
이처럼 심각한 ‘화학물질 공포증’이 생겨난 원인에 대해 이병훈 한국독성학회 회장은 ‘불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6년 시판 분유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던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착유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넣은 화학물질이 분유에 녹아서 큰 이슈가 됐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는 업체와 제품별 검출치를 미공개한 채로, ‘현재 시판하는 분유 등 유제품은 안심하고 먹어도 좋으며, 유해성이 없으므로 특별한 대책도 필요없다’고 발표했었다.
이 회장은 “실제로 독성을 분석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유해성이 없다고 발표했던 이러한 사례들이 모여 불신을 낳았다”라며 “이와 함께 위험성을 과장하는 언론,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괴담 등으로 인해 정부나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더욱 쌓여 화학물질 공포증을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불신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회장은 리스크 분석과 리스크 매니지먼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뤄진 ‘위해평가체계’를 제대로 갖출 것을 주문했다. 그는 “위험성 분석은 과학자들이 맡고 매니지먼트는 정부가 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제대로 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은 유해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이해당사자들 간에 정보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전문가들은 자기들끼리만 분석하고, 정부의 발표는 신뢰를 받지 못하고, 국민들이 그저 걱정만 해서는 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때문에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과학자와 정부, 일반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화학물질 등 환경 감시하는 공익적 역할해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유 교수는 “특히 방송 광고는 그 내용들이 모델링 과정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내면화되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며 화학물질이 포함된 국내 스프레이 제품의 방송광고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유 교수는 “광고를 통해 화학물질 스프레이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쾌한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사용하면 능력있는 리더감으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라며 “제품 사용 행위가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것으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유 교수는 “정보 제공에 있어서 과장하지 않아야 하고, 성능과 성분의 정도에 대한 통계적의 유의미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라며 “합성성분이면서도 ‘천연’이라는 말을 표기하는 등 거짓, 과장 정보를 제시하는 것을 철저히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성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유 교수는 “정부는 겉면 규정에만 위해성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 있고, 기업은 기업비밀이란 이름으로 흡입독성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를 중심으로 소비자, 기업(생산자), 학계, 미디어 등 리스크 거버넌스 주체들이 함께 생활화학제춤의 위험성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체 피해 화학물질 양과 비례.. 통합위해평가 필요
배옥남 한양대 약학대학 부교수는 모기기피제 사례를 토대로 통합위해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배 교수는 “식물유를 주성분으로 사용하는 모기기피제를 사용하는 경우에 발암물질로 분류된 메틸유게놀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문제는 피부를 통한 흡수와 호흡기 흡입 외에도 식이 섭취 등의 요인으로 총 노출량이 증가하게 되면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화학자 겸 의학자인 파라켈수스의 ‘세상의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물질이다. 약물이 될지 독성물질이 될지 결정짓는 것은 바로 적절한 용량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화학물질은 용량과 비례하여 생체반응이 증가하기 때문에 인체에서 배설되는 화학물질의 양을 검사하는는 등 통합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김순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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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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