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이것은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물/돌/소나무/대나무/달) 중 대나무를 찬미한 시조이다. 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생물학자들은 대나무에 형성층이 없으므로 풀(초본)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Virus)는 생물인가? 무생물인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바이러스’ 하면 컴퓨터바이러스를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바이러스는 생물체에 기생하여 번식(생식)하면서 질병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생식을 한다고?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생물이겠군’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기생하고 있는 숙주생물체 밖으로 나오면 단백질 결정체에 불과하다. ‘어! 그렇다면 생물이 아니겠는걸’ 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으로 분류하고 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이라고? 그러면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최초로 생겨난 원시 생명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최초의 생명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생할 수 있는 숙주생명체가 없는데 어떻게 최초일 수 있겠는가? 바이러스는 진화의 전략으로 퇴화를 선택한 무리이다.
‘퇴화가 진화라고?’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진화는 발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주위 환경에 선택되어 적응하여 가는 변화인 것이다. 체내기생충(회충/요충/십이지장충 등)은 소화기관에서 기생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곳에 선택/적응되어 자체 소화기능은 퇴화되고 생식기능만 발달되어 있다. 이렇게 퇴화도 역시 진화의 일종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왜 기생생활을 하는가?
바이러스는 물질대사를 못한다. 왜냐하면 물질대사에 필요한 효소나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물질대사를 수행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숙주생물(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생물의 물질대사를 이용하여 복제(생식)를 한다.
이때 물질대사를 빌려준 숙주세포는 파괴되고 만다. 예를 들면 독감바이러스는 호흡기 세포에 기생번식하면서 호흡기 세포를 파괴하여 독감을 일으키고, 간염바이러스는 간세포에 기생번식하면서 간세포를 파괴하여 간염을 일으키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T림프구에 기생번식하면서 T림프구를 파괴하여 에이즈(AIDS)를 일으킨다.
바이러스는 1892년 이바노브스키가 담배 잎의 추출 액에서 처음으로 (그림1)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TMV)를 확인한 이후, 1935년 스탠리가 결정체 형태로 분리해 내는데 성공함으로써 그 연구가 급속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바이러스는 모든 생물들처럼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핵산은 유전물질로서 DNA와 RNA 두 가지가 있다. DNA는 유전자의 본질이고 RNA는 유전자의 보조물질이다.
세균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그림2) 박테리오파지 등은 DNA를 가지고 있고, 담배 잎에 기생하는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와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그리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은 RNA를 가지고 있다.
1952년에 허시와 체이스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여 유전 물질을 확인하였다. 세균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는 머리 부분에 DNA가 들어있고, 나머지 껍질(피막) 부분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DNA는 C, H, O, N. P 등의 원소로 구성되고, 단백질은 C, H, O, N, S 등의 원소로 구성된다. DNA와 단백질의 구성 원소 차이는 P(인)와 S(황)이다.
허시와 체이스는 방사성동위원소 32P를 함유한 배지와 35S를 함유하는 배지에서 각각 대장균을 배양한 다음, 각각의 대장균에 파지를 감염시켜 단백질이 35S로 표지 된 파지와 DNA가 32P로 표지 된 파지를 각각의 얻었다. 이 각각의 파지를 보통배지에서 배양한 대장균에 감염시킨 결과 35S로 표지 된 파지를 감염시킨 대장균의 체내에서는 35S가 검출되지 않았으며, 32P로 표지 된 파지를 감염시킨 대장균의 체내에서는 32P가 검출되었다.
이 실험의 결과 파지의 단백질 껍질(피막)은 대장균의 표면에 붙어 남아 있고, 대장균 속으로 들어간 것은 파지의 DNA라는 것이 밝혀졌다. 대장균 속으로 들어간 파지의 DNA는 대장균의 물질대사를 이용하여 새로운 DNA를 복재하고, 또한 파지의 껍질(피막)을 이루는 단백질을 합성하여 새로운 파지가 증식되며, 이 파지가 대장균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따라서 파지의 증식에 필요한 모든 유전 정보는 대장균 속으로 들어간 파지의 DNA가 지니고 있어 파지의 유전 물질이 DNA라는 것이 이 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증명되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치료법에서 유용한 유전자를 운반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유전자치료법은 정상적인 유전자나 치료 효과가 있는 유전자를 환자의 몸에 직접 투입하거나 또는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를 유전자 운반체로 이용하여 정상적인 유전자를 투입한 후 유전자를 발현시킴으로써 치료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다.
1990년 미국에서 선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이와 같은 유전자치료법으로 치료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유전자치료법이 실용화되면 지금까지 치료가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질병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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