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는 걸림돌 아닌 준수의 대상”

바이오 기술과 전통적 가치관의 공존 방안 모색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때 새로 등장한 과학기술은 기존의 가치관과 충돌하다가 조화를 찾는 형태로 진화했다. 모든 과학기술이 이런 과정을 거쳤고 지금도 거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이오 기술은 기존 가치관과의 충돌에 따른 파급력이 훨씬 강한 분야다.

그 이유는 바이오 기술이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여서 그런 것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이오 기술이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자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개인정보보호나 생명윤리 같은 전통적 가치관과의 조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바이오기술과 가치관과의 조화로운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 김준래/ScienceTimes

지난 3일 과학기술회관에서는 이 같은 바이오 기술과 전통적 가치관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행사인 ‘2020 바이오경제포럼’이 개최되어 주목을 끌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바이오 기술과 가치관이 비전을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문제에는 도덕적 딜레마 발생

‘바이오 산업에서 생명윤리의 함의’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권복규 이화여대 의과대 교수는 ‘생명윤리(bioethics)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생명윤리란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과학과 종교, 그리고 법률과 철학 등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바라보려는 학문이다. 예를 들면 ‘안락사가 옳은가? 그른가?’ 같은 질문에서 생명윤리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환자가 겪는 고통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경제적인 부담 또한 가중된다고 보고 이를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종교적인 시각 외에도 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인위적으로 죽이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생명윤리는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해 왔다. 인류 문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기존의 윤리학으로는 도저히 해석하기 어려운 윤리적 문제들이 등장한 데 따른 결과물이었다.

권 교수는 “최근 들어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생명윤리의 좋은 사례”라고 소개하며 “국민의 건강을 위해 중국인들의 입국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지, 아니면 국내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타협을 해야 하는지를 과연 윤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생명윤리란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종교와 철학 등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바라보는 학문이다 ⓒ colbio.org.mx

문제는 이 같은 생명윤리를 둘러싼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딜레마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바이오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생명윤리의 3가지 측면을 제시했다.

권 교수가 제시한 생명윤리의 3가지 측면은 연구를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인간배아를 생성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는 ‘존재론적(ontological) 측면’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엄격히 관리하는 ‘연구규제(research regulation) 측면’, 그리고 인체조직이나 개인의 건강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적 수용성(social acceptance) 측면’이다.

이처럼 3가지 측면을 제시한 권 교수는 “과연 생명윤리가 이 3가지 측면에 대해 일치된 답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존재론적 측면은 종교나 가치관에 따라 서로 답이 다를 수 있고, 연구 규제에 대한 측면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수용성 측면은 윤리가 아닌 홍보와 설득, 그리고 교육의 문제라는 것이 권 교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명윤리는 산업 발전 걸림돌 아닌 준수의 대상

권 교수는 과거에 보도된 바 있는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생명윤리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사례로 든 생명윤리기본법과 관련된 보도 내용은 ‘유전자 가위 기술의 발전을 생명윤리법이 가로 막는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생명윤리기본법은 지난 2001년에 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인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인간배아 복제 금지 및 엄격한 관리 아래 제한적으로만 배아 연구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발표한 규정이다.

이 생명윤리기본법 규정에는 ‘배아의 경우 인간과 동일한 지위를 갖지는 않지만 생명체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특히 불임치료를 하다 남은 배아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배아 연구를 허용한다는 예외규정만 언급되어 있어서, 생명의 존엄성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실제로 생명윤리기본법은 발표 이후, 배아 연구의 원칙적 금지와 함께 체세포 핵이식 연구를 원천적으로 막음으로써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짓밟았다는 원성을 들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내 배아복제기술의 경쟁력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명공학계 및 과학자들의 반발이 잇따르기도 했다.

생명윤리와 산업 발전은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 amsamoodle.org.au

이 같은 이슈에 대해 권 교수는 “생명윤리기본법이 바이오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그는 “생명윤리 때문에 바이오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발전을 원하지 않거나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는 여러 세력들이 생명윤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생명윤리학자들은 예민한 쟁점에 대해 정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기껏해봤자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거나 비합리적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정도로 생명윤리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권 교수는 “바이오 분야는 생명윤리를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며 “생명윤리를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산업의 목적이 바로 생명 보호와 가치의 증진 임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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