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미국 육군의 차기 분대 소총 사업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육군은 조준 안정 증강기를 뜻하는 ACE(Aim Control Enhancer) 장치를 개발했으며, 이를 차기 소총 사업에 채택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ACE에는 소형 관성센서가 들어 있어 총구의 흔들림을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제어를 하여 흔들림을 최소화한다는 설계자는 설명했다. 그 개념은 항공기나 드론 제어와 비슷하다.
2014년 MIT 박사과정 재학 중 ACE를 설계 제작한 전기 엔지니어인 매튜 앵글은 군복무을 한 적은 없지만 사격을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서 ACE 같은 장치가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기사에서 짧게 언급된 그의 경력을 보니 대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날 드론의 대명사처럼 유명해진 DJI를 만들고 키워낸 사람인 '왕타오'다.
2006년에 설립된 DJI의 현재 기업 가치는 16조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며 왕타오의 재산도 5조 원에 이른다. 왕타오는 1980년생으로 26세에 DJI를 만들었고, 그로부터 7년 뒤인 2013년에 지금 성공의 초석이 된 팬텀이 나왔다.

매튜 앵글의 ACE가 스타트업으로서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국 육군이 아직은 고려 중인 것이지 채택을 확정한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 중 눈에 띈 것은 ACE가 미국 차기 분대 소총 사업의 평가 대상으로 선정되는 과정이었다.
ACE는 첫 고안된지 2년 만인 2016년 미국 국방 혁신 위원회에 소개되었고 이를 눈여겨본 한 관계자에 의해 2017년 중소기업 혁신 연구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관련 상위 과제가 2년 만에 취소되면서 ACE는 사장될 뻔했지만 이번에는 차기 분대 소총 사업을 만나면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 것이다.
ACE는 비록 미국 육군의 총기와 관련된 얘기지만, 처음부터 완성형의 제품을 요구하지 않고, 과정 동안의 실패는 있어도 유효할 것으로 ‘전망’된다면 기회를 더 주는 그러한 제도나 환경이 참 부럽다.
DJI는 이제 아무도 스타트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설립된 지 15년을 막 넘어서는 지금, DJI는 세계 드론 시장을 호령하는 최강자가 되었다. DJI의 단기간 성공 요인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외부 변수들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요인은 여느 스타트업의 성공이 다 그렇듯이 창업자인 왕타오 CEO의 혜안이다.
비행기 기술은 미국, 카메라 기술은 독일 아니면 일본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중국의 어느 한 청년이 아주 잘 나는 소형 무인 항공기에 꽤 괜찮은 카메라가 달린 작품을 들고 고가의 군수 시장이 아닌 일반 소비자에 등장했다. 아니,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창출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왕타오 본인의 전공이 전자공학과 로봇이니 드론의 핵심 기술에 해당하는 비행제어에 대한 이해도나 기술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DJI 자체가 기업 스스로 늘 소개하듯이 기술 중심의 회사이니 새로운 기술 습득이나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DJI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이미 세부 기술 분야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을 모조리 다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핵심 기술 기업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필요하면 특정 기술 분야에 강점을 가진 기업과 공동 연구도 하는 유연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항공우주라 하면 전통적으로는 진입장벽이 높고 소위 엄청난 자본을 가진 회사들과 거대한 정부 지원금이 쓰여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없애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항공 및 우주 분야에서 이미 여러 젊고 유능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는 앞서 말한 ACE나 DJI처럼, 제품을 보고 나서 생각하면 이해가 가고 그럴만한데, 막상 보기 전까지는 그런 것을 생각조차 못했거나 겨우 상상만 했을 뿐 미처 만들어볼 생각은 못했다는 그런 감탄이 나오는 기술이나 제품들도 이미 여럿 있다.
카메라는 이미 있었다. 모터도, 재충전 리튬 전지도 이미 있었다. 프로펠러는 아주 오래된 발명품이며, 자세 제어는 모형 항공기에서 이미 많이 쓰이던 기술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아주 비싼 특수 목적의 무인 항공기가 되며 이 시장은 미국이 아주 강력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의 수평선 너머에서 DJI가 등장하였다.
ACE가 처음 고안된 2014년은 이미 가정용 드론이 많이 팔리고 있던 때다. 값싸고 성능 좋은 관성 센서도 구할 수 있었다. 일부 고급형 드론에는 짐벌이라는 카메라 안정화 장치도 달리기 시작한 때다.
ACE가 스타트업으로서 대단한 점은 드론 아래 달린 짐벌을 제어하는 것이 아닌 손 위에 놓인 총구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임과 동시에,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릴 때 손바닥 위에 막대기나 빗자루를 세워 놀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먼저 만든 사람이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 김상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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