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기술인(STL) 클럽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구본국 삼성전자 고문(59)이 그 대표적인 인물. 구 씨의 최근 일과는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외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세계 90여개 사가 참여하고 있는 기록형 DVD회의(RDVDC: Recordable DVD Council) 회장으로서 향후 기록형 DVD 표준화의 성과가 구 씨의 어깨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생형 DVD와는 달리 레코딩 기능을 부가한 차세대 DVD 개발은 세계 전자업체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DVD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세계 표준화 작업인데 이 작업 중심에 구 씨가 서 있는 것이다.
구 씨가 세계 전자업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야말로 국내외에서 전자업계와 일생을 같이한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표준화 작업이라는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길 만큼 그의 능력에 거는 기대도 크다고 할 수 있다.
30여 년간 일본 전자업계 사람들과 밀접한 교류
경제발전 과정 중 한일 기술협력에 결정적 기여
지난 시절을 볼 때 기술경영인으로서 구 씨의 화려한 경력은 삼성전자에서 일본 근무를 명받으면서 시작됐다. 70년대 국내 전자산업이 낙후를 면치 못하던 시절 일본에 근무하면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한 일본 전자산업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과의 큰 기술격차를 인식한 구 씨는 한국에서 하루빨리 선진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 전자업계 사람들과 가까운 인적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일본인들도 당시 한국 산업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구 씨를 정중하게 대해 주었다. 이런 관계는 무려 30년 이상 구 씨로 하여금 일본을 오가게 하며 일본통으로서 평가하게 하는 계기가 됐는데 실제 구 씨와 일본인들과의 관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자업계 경영진에서부터 일선 기술자, 전자상가 상인에 이르기까지 손이 안 닫는 곳이 없을 만큼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원로기술인(STL) 클럽을 통해 자문활동을 원하는 기업이 있으면 자신을 통하라는 것이 구 씨의 자신있는 답변이다.
지난 2001년 4월 구 씨가 RDVDC 회장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일본통으로서의 그의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日立제작소, 松下전기산업 등 세계 전자업계 선두권에 있는 일본 업체들이 구 씨를 지원하면서 회장 직에 오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세계 표준화작업을 리드하면서 한국 전자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삼성전자에서는 기술총괄부사장 맡아 첨단기술 혁신주도
1996년에는 최고 품질 경영철학으로 '명품' 성공 이끌어
일본서 시작된 구 씨의 기술경력은 한국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세계 전자업계 기술동향에 대해 눈을 뜬 구 씨는 1994년 12월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사장의 직책을 맡게 된다. 삼성전자 내에 수천 가지의 기술을 관리하고 운영해나가는 미래가 달린 중요한 임무였다.
그리고 그 첫 성과로 ‘명품’이라는 삼성전자 역사상 가장 큰 성공사례가 이어진다. 1996년 시작된 ‘명품’ 브랜드의 성공 이면에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보여주겠다는 구 씨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TV를 비롯 각종 전자제품들이 마케팅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삼성이 새천년 들어 국내 최대 전자업체에서 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급부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실제로 2003년 한국의 삼성이 소니를 누르고 전자분야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초 구 씨가 일본에 가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할 당시를 기억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놀라운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기술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구 씨등 기술인들의 사명감이 있었던 것이다.
기술경영이 미래 기업 성공의 관건
마케팅보다 기술과 품질이 우선돼야
구 공동대표는 “기업이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어떻게 10년 후를 내다보고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전략을 짤 수 있겠습니까. 마케팅만으로 성공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장기간의 성공을 이루기위해서는 기술경영전략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첨단 품질을 내세운 고도의 마케팅전략이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 대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들의 부족한 원천기술이다. 한국 기업들이 단 기간의 성공으로 판매 규모가 커진 것이 사실이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원천기술이 크게 부족해 기술과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해 재생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더 걱정스러운 것은 원천 기술 없이 한국 산업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업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당연히 외국에서 기술과 부품 공급을 중단할 것이고 그럴 경우 한국 산업 전체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구 공동대표의 전망이다.
“지금이라도 기업들이 분골쇄신해 기술경영을 해야 합니다. 기술경영을 통해 우선 능력 있는 기술자를 확보하고 원천 기술과 제품 관련 응용 기술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후에 선진국 기업들과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 대표는 “지금이 우리에게 IMF의 실패이후 다시 주어진 선진국을 향한 재도약의 기회”라고 설명하고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경영 풍토를 위해 국가적인 금융, 제도 지원책이 검토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원로기술인(STL) 클럽 자문활동과 관련해서는 DVD 및 일본 전자업계 관련 자문에 적극 응하겠다며 많은 기업들과의 교류를 기대했다.
1945년 대구서 출생한 구 씨는 경북고(1964년), 서울대 전자공학과(1969년)을 졸업하고 196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동경지점장, 기술총괄부사장, 그리고 현재 상근고문직을 맡고 있다. 1996년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한국공학한림원 감사, 일본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기록형DVD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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