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신뢰, 둘째도 신뢰, 셋째도 신뢰.”
조호용 스마트테크놀로지 대표는 지금 하고 있는 자동차부품개발이 세번째 사업이다. 첫번째 시작했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집도 땅도 논도 밭도 다 팔았다. 그래도 수억원의 빚이 남았다.
가정은 붕괴되었다. 직원들은 밀린 임금을 지불하라며 아우성이었다. 급한 김에 사채를 끌어다 썼다. 빚쟁이들이 떼로 찾아와 방에 가두고 협박을 했다.

더 이상 살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힘들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신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뿌려놓았던 ‘신뢰’가 다시 살아갈 의미를 부여하다
사업 실패의 생활고는 극심했다. 한여름 섭씨 34도가 넘는 골방에 누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주머니에는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이 나왔다. “이렇게 살면 죽겠다” 싶어 휘적휘적 산을 다녀오마 하고 방문을 나섰다. 8시간 뒤 눈을 뜬 곳은 서울 어느 재래시장 바닥이었다. 산을 가겠다고 나온 것은 기억이 나는데 시장에 어떻게 온 것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기 퓨즈가 끊긴 듯 살아가는 제 자신이 무서웠어요. 혼자서 도저히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다 팔고 돌아서니 내 몸 하나 누울 방 한 칸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지인은 방을 얻어주었다. 아무 대가도 없는 선물이었다. 또 다른 지인은 직업을 소개시켜주었다. 같이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학창시절, 직장 시절, 사업을 할 때 쌓아두었던 신뢰 관계가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 멋지게 돌아와 그를 도왔다. 그런 이들과의 관계는 조 대표에게 ‘다시 한번’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고 무서운 우울증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었다.
구미 떠나 서울에서 성공의 경험을 쌓다
사업 전 그는 엔지니어로 시작해 기술 영업으로 분야를 확대해 왔었다. 공업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전자공학만 16년 파고 들었다. 나름 ‘전문가’라 자부했다.
LG전자 TV 개발 연구원을 첫 사회 생활로 시작했다. 구미사업소에 있을 때는 행복했다. 조직 내 사람들은 ‘형’같이 따스하고 정이 넘쳤다. 믿고 맡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왠지 구미를 떠나 서울이라는 큰 물에 나가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지인이 서울에 자리가 있다며 손을 내밀었다.
당시 정보통신업체 '한창텔레콤'에 지인의 권유로 입사한 후 6년 간 영업에 마케팅, 생산 총괄까지 안해 본 분야가 없었다. 기술 엔지니어에서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결국 산요, 소니 등 일본 유수의 대기업과의 계약을 성사시켜냈다.
당시 주력 상품이 홈 오토메이션 기기였는데 92년도 신도시 주택 2백만호 건설 현장에 한창텔레콤의 제품이 채택이 되면서 ‘대박’ 신화를 만들었다. 새로운 성공의 경험이었다.

내 사업의 시작, 그리고 밑 바닥까지 떨어지는 실패
회사가 문어발식 경영으로 워크아웃 되면서 조 대표는 휴대폰 매장을 차리고 휴대폰 리페어(불량품 재생) 사업에 뛰어들었다. 단순히 핸드폰을 수리해주는 수준에서 기술을 인정받아 한화정보통신과 계약을 맺고 자체적으로 공장까지 건립하게 되었다.
비록 임대공장이었지만 초기 투자 비용 3억원, 직원 20여명을 뽑아 교육을 시키는 등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와주었다. 한 해 매출이 최고 5억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렸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이동통신사업을 매각하고 포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른 건 없었어요. 그저 제가 들은 건 사업 안 한다는 ‘세마디’ 뿐이었죠.”
가만히 앉아서 공장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LG전자, 삼성전자, 텔슨전자 등 관련 기업은 다 찾아갔다. 설득하고 호소했지만 기존 업체들 사이에 끼어들 방법이 없었다. 팬택전자에서 주는 일로 조금씩 연명을 해나갔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집 팔고 논팔고 차 팔고 다 팔아서 운영했지만 한계가 왔다.
가족은 생이별을 해야 했다. 부인과 아이들은 지방에 있는 처가로 들어갔다. 채권자들이 밤마다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너무 급한 나머지 사용한 사채로 인해 깡패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신체포기 각서’를 쓰라고 협박했다.
악몽과 같은 시간이 계속 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견디어 나갔다. 회사에 취업해 열심히 빚을 갚고 재기를 위한 충전을 했다. 그리고는 2010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할 수 있었다.
돈이 배신해도 가족 절대로 놓지 말아라
조 대표가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건 ‘가족’과의 관계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서로에게 앙금과 상처의 골이 깊어졌다. 고통이 심했다.
조 대표는 “사업에 실패했을 때 괴로워서 가족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과의 신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가족’은 다시 도약을 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된다.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가족의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후배 창업자들에게 주문했다.
조 대표는 스마트 카(Smart Car) 서비스 분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세계적인 글로벌 자동차 회사인 벤츠에 들어갈 만 한 ‘명품’ 자동차 부품 신기술을 준비 중이다.
언젠가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전해주고 싶다. 철인 5종 경기에도 나가고 싶다. 노인이 되면 대학 밴드 시절 치던 전자기타를 다시 잡고 싶다.
하지만 조 대표는 무엇보다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며 오늘을 내일처럼 뚜벅뚜벅 걸어나가려 한다.
- 김은영 객원기자
- binny98@naver.com
- 저작권자 2016-0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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