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역설…산불이 건강한 숲을 만든다?

통제 가능한 규모의 산불은 숲 생태계 유지에 기여

최근 들어 미 서부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면적이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하고 있다. 현재까지 집계된 산불 피해 면적은 모두 1만 6187㎢로서, 이는 대한민국 면적인 10만 401㎢의 16%에 해당하는 크기다.

인명과 재산 피해도 엄청나다. 캘리포니아주 소방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산불로 사망한 사람이 현재까지 최소 31명이고, 파손된 가옥과 건물은 모두 9000여 동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산불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산불이 계속 발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산불로 인한 화재가 때로는 숲을 회복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free image

이처럼 산불로 인한 피해는 워낙 크기 때문에 예방과 진화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지만, 일단 산불이 발생하고 난 지역은 어떻게 복구시켜야 할까. 이에 대해 미국의 생태학자들은 숲을 조성하는 방법만 놓고 본다면 산불로 인한 화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Eurekalert는 15일 자 기사를 통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산불이 아니라면, 통제 가능한 규모의 산불은 숲이 다시 복원되는 과정에서 나무들이 보다 건강하게 자라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산불의 역설’이다.

통제 가능한 산불은 건강한 숲 생태계 조성에 기여

산불의 역설이란 산불이 발생했던 숲이 발생하지 않았던 숲보다 나무들의 생장 상태가 좋아지고, 생물학적 다양성도 풍부해져서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약간의 산불은 숲이 건강해지는 데 있어 오히려 좋은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자연의 법칙인 생존경쟁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지역의 숲에서 자라는 나무의 수가 포화상태가 되면, 해당 지역의 토질이나 기후에 적합한 나무들만 자라고 나머지는 대부분 도태된다.

이처럼 특정한 종류의 나무들만이 숲에서 자라게 되면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당 나무를 먹이로 삼는 동물이 아니면 살기 힘들게 되고, 풀 같은 식물도 나무에게 영양분을 빼앗겨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숲의 환경이 이렇게 획일적으로 바뀌게 되면 생태계는 서서히 파괴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숲 바닥에 쌓인 줄기나 잎들이 대형 산불의 연료 역할을 할 수 있다 ⓒ wikipedia

이 같은 상황에서 산불이 일어나게 되면 해당 숲에서 자라는 개체들은 모두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나 호주 같은 산림 분야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산불이 일어나도 일정 단계까지는 그대로 방치하는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이나 호주처럼 철저한 계산 아래 산불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불이 난 곳에서 희귀한 곤충이나 동물, 그리고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식물들이 자란다는 뉴스는 종종 접할 수 있다.

산불을 너무 막으면 향후 대형 산불의 원인 될 수 있어

미 산림청 산하 남서부 연구소에 근무하는 생태학자인 ‘에릭 크냅(Eric Knapp)’ 박사는 산불이 숲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과학자다.

크냅 박사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통해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화재는 숲을 더 다양한 서식지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에 의해 피해를 입더라도 다시 살아나는 복원력이 뛰어난 숲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미 서부의 산불이 꺼지지 않고 맹렬하게 번지고 있는 이유는 해당 지역에 쌓인 죽은 나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극심한 가뭄을 겪었는데, 가뭄 기간 동안 해당 지역에서 개체 수가 늘어난 나무껍질 딱정벌레로 인해 약 1억 5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크냅 박사는 “당시 죽었던 나무들이 올여름에 발생한 산불, 특히 나무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시에라 네바다 지역의 남부와 중부에 장작과 같은 역할을 제공해 화재가 갈수록 강해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산불은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 isa.ulisboa

이 같은 주장은 올해 초 호주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호주 산림당국은 그동안 산불이 났을 때마다 초전에 화재를 진압했던 관계로 숲 바닥이 나무줄기나 잎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불이 나자 그동안 쌓여 있던 이들 줄기나 잎들이 연료 역할을 하여 대형 산불로 번지게 된 것이다.

물론 산불 이후에 모든 숲이 항상 예전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산불 이후 새로운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을 선점하는 종류들이 과거처럼 생존경쟁을 벌여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산불 이후에 반드시 생물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떡갈나무가 대부분이었던 숲이 산불을 겪은 후에는 해당 지역을 재빨리 차지한 갈대류 때문에 울창했던 숲이 갈대만 무성한 평원 지역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처럼 예외 사례는 있지만 크냅 박사는 “숲의 바닥에 쌓이는 죽은 나무나 줄기, 그리고 잎들의 층이 얇으면 얇을수록 산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서 해당 숲은 일정 기간 동안 건강한 생태계를 이룰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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