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 유기촉매’에 노벨상…신약개발 혁신 기여

리스트·맥밀런, 2000년 동시에 각자 연구결과 내놓아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두 과학자는 조그만 분자들을 재료로 해서 원하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합성하는 첨단 기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베냐민 리스트(53)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53)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놀라운 속도로 성과가 쏟아진 ‘비대칭 유기촉매반응'(asymmetric organocatalysis) 분야의 선두주자다.

화학의 기본적인 개념 중 하나인 ‘촉매'(catalyst)는 스스로는 변환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물질들끼리 화학 반응이 일어나도록 돕거나 제어하는 물질을 말한다.

리스트와 맥밀런의 연구가 나오기 전까지 촉매라고 하면 화학적으로 활성이 큰 ‘금속’과 생체 촉매인 ‘효소'(enzyme)의 두 가지만 떠올리는 것이 과학계의 통념이었다.

동갑내기인 리스트와 맥밀런은 작은 유기 분자를 기반으로 ‘제3의 촉매반응’인 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을 각자 따로 연구해 그 결과를 사실상 동시에 세상에 내놓았다.

이들의 연구에 나오는 ‘비대칭’이라는 말은 화학 반응에서 동시에 만들어지는 거울상(mirror-image)의 두 가지 물질(거울상 이성질체)중 한 쪽을 선택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촉매반응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거울상 이성질체는 조성과 화학식은 똑같지만 서로 다른 물질로 이뤄진 한 쌍의 화합물 또는 분자를 가리킨다. 마치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처럼, 한 분자를 거울에 비추면 다른 분자와 똑같은 모양이 되는 경우다.

한 쌍의 거울상 이성질체는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서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한 쪽을 다른 쪽으로부터 분리해내기가 까다롭고, 이 중 한 쪽만 원하는 물질인 경우가 흔하다.

리스트와 맥밀런이 시작한 비대칭 유기촉매반응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는 분야는 제약 산업이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거울상 이성질체가 만들어지면 한 쪽 물질은 원하는 약효가 있지만 다른 쪽 물질은 심각한 독성이 있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럴 경우 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을 활용하면 원하는 물질만 생산하는 것이 매우 쉬워진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6일 리스트와 맥밀런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이런 반응(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을 이용해, 관련 연구자들이 신약부터 태양전지의 빛을 포착하는 데 사용되는 분자까지 다양한 물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설명회에서 “우울증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듀록세틴, 프레가발린이라는 의약품도 리스트 교수의 연구실에서 개발된 화합물”이라고 소개했다.

리스트와 맥밀런의 업적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향수 등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의 기반이 되고 있다.

배 교수는 “유기 촉매 반응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천연물, 향수 원료 물질을 합성하는 데도 중요하게 널리 쓰인다”며 “유기 촉매 물질은 실제로 화학 기업들도 쉽게 구할 수가 있어 이미 세트업 된 촉매를 사용해 원하는 물질을 대량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장혜영 아주대 화학과 교수는 “맥밀런 교수는 지금도 미국 제약사 머크와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학자로서 기초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다양한 산업계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 도구를 개발한 게 (맥밀런의) 우수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실용적으로 활용 가능한 유기촉매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게 이들의 공로”라고 리스트와 맥밀런의 업적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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