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인근 행성서 생명체 살 수 있다?

항성 없이도 빛과 열 발생시켜…이론적으로는 가능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초거대 블랙홀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들이 자세히 묘사되었다. 이 영화를 본 과학자 중에 실제로 그러한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다. 최근 그 의문에 해답이 될지도 모를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일 사이언스지는 ‘블랙홀 주위에 거주 가능한 행성이 존재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지난달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발표된 체코 연구팀의 논문을 인용한 것으로, 인터스텔라처럼 초거대 블랙홀 근처의 행성에 생명체가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제약 조건이 따르지만,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연구팀은 초거대 블랙홀 주위에서 행성이 생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 Kagoshima University

블랙홀 주위에서 행성이 생성될 수 있어

태양 질량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거대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은 각 은하의 중심부에 적어도 한 개 이상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블랙홀 근처에 생명체 거주가 가능한 행성이 존재하려면 먼저 자연적으로 행성이 생성되거나, 지나가던 떠돌이 행성을 파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궤도에 묶어둬야만 한다.

지난해 11월 일본 국립천문대 연구팀은 초거대 블랙홀 주위의 성간 물질로 이루어진 디스크 속에서 행성이 생성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블랙홀에서 약 10광년 떨어진 거리에 수만 개의 행성이 항성 없이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행성 자체의 존재 여부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설령 행성이 만들어졌더라도 그다음 문제는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이다. 블랙홀은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면서 막대한 양의 X선과 감마선을 분출한다. 이러한 방사선은 주변 행성의 대기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가짜 태양으로 빛나는 초거대 블랙홀

체코 실레지안 대학(Silesian Universitya)의 천체물리학자인 파벨 바칼라(Pavel Bakala) 박사 연구팀은 초거대 블랙홀 주변에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Habitable Zone)’이 있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블랙홀에서 나오는 열과 빛이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 문제에 접근하면서 열역학을 고려했다. 일반적으로 행성에서 생명체가 생존하려면 뜨거운 모항성과 차가운 우주 공간 사이의 열 교환이 필요하다. 생명은 이러한 온도 차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용해 진화한다.

반면에 성간 우주에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멀리 떨어진 항성은 오히려 차갑고, 절대 영도에 가까운 우주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블랙홀 자체는 이상적인 열 제거원이라서 주변 열기를 흡수한다. 남은 것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에서 나오는 미약한 복사에너지다.

빅뱅의 잔재인 CMB는 절대 영도보다 고작 몇도 따뜻하지만, 초거대 블랙홀의 극한 중력은 CMB 방사선을 광학 파장 단위로 잘게 쪼갠 다음, 좁은 광선으로 응축시킨다.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블랙홀이 증폭된 CMB 광선으로 인해 마치 밝은 별처럼 보이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2017년에 처음 발표하면서 ‘가짜 태양(pseudosun)’이라고 불렀다. 이번 연구는 그 효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계산한 것이다.

초거대 블랙홀은 CMB 복사에너지를 모아 빛과 열을 주변 행성에 전달할 수 있다. © Lujo0707, Support Space Engine

시간 팽창이 미약한 CMB 복사에너지를 증폭시켜

행성이 충분한 빛을 받기 위해선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매우 근접한 궤도를 돌아야 한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물체는 곧 빨려 들거나, 조석력으로 분해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보다 1억 6300만 배 이상 크면 사건의 지평선 바깥쪽은 조력으로부터 안전하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블랙홀은 현재까지 60여 개 발견되었다.

또한, 치명적인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선 은하 중심부가 평온해야 한다.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흡수하면서 방출되는 방사선은 가까운 행성의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칼라 박사는 “주변 공간이 거의 텅 비어 있는 블랙홀은 방사선을 내뿜지 않아 안전하다. 그곳은 아마도 오래된 은하일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이런 환경에서 어떤 종류의 생명 활동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매우 희박하지만, 여러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행성이 있다면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른 시간적 팽창 효과 때문에 그곳의 1년은 주변 우주 공간의 수천, 수만 년에 해당할 것이다. 그 덕분에 절대 영도에 가까운 CMB의 복사에너지는 시간 팽창과 함께 증폭되어 따뜻한 열기가 될 수 있다.

블랙홀 행성은 발견하기 어려워

하지만 블랙홀 주변에 행성이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블랙홀 앞을 지나가는 행성은 빛이 차단되어 검은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칼라 박사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처녀자리 은하단의 초거대 블랙홀을 촬영했던 것처럼 광범위한 전파 망원경을 이용하면 트랜짓 관측법(미세한 광도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블랙홀 행성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100조 년 뒤에 모든 항성이 사멸하면 생명체는 아마도 블랙홀 주위에서만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은 분명히 우리가 아는 지구상에서의 평온한 삶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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