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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신기술
조행만 객원기자
2021-04-30

범인을 실시간으로 보고 잡는다 과학치안의 보루 폴리스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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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로 탄생한 로보캅이 무법자를 소탕하고 있다.  ⓒ ScienceTimes

머지않은 미래. 미국의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 거리의 한복판에 괴상망측한 복장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활보한다. 어두운 거리에는 어지럽게 파괴된 자동차들이 불타고 있다. 그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총을 쏜다. 디트로이트는 무법자들이 판치는 범죄 도시가 되어 있었다.

이때 갑자기 의문의 자동차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온다. 정지한 차에서 경찰이 나오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그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무법자들을 가차 없이 소탕한다. 이는 1987년도에 개봉한 할리우드 SF 액션 영화 ‘로보캅(RoboCop)’의 한 장면이다.

영화 로보캅은 큰 재미와 감동을 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도시의 무너진 치안과 무력한 경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거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반면에 이 무법자를 제압하는 로보캅의 활약은 과학기술이 범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오래전부터 과학은 치안의 동반자로 수사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경찰을 돕고 있다. 반면에 복잡한 사회 구조와 날로 흉포화되는 범죄로부터 경찰의 현장 출동은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른바 골든 타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도 경찰의 대처 능력이 이에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골든 타임 과연 대안은 있는 것인가?

골든 타임을 놓친 경찰

지난 2012년 4월 1일 밤 10시 32분, 경기지방경찰청 112센터로 한 통의 휴대폰 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신고자의 다급한 목소리는 매우 떨리고 있었다. 당직 근무자는 신속하게 위치추적 버튼을 눌렀다. 신고 지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놀이터 부근으로 판명됐다.

곧이어 휴대폰에서 범인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후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코드 제로 상황이 분명했다. 당직자가 다시 묻는다.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번만 알려주세요.”

하지만 신고자는 이 직원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곧이어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악- 악- 악- 악 잘못했어요. 악- 악- 악- 악!” 당직 근무자는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이 대화는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의 휴대폰 녹취록 부분이다. (나무위키 참조) 신고자가 구체적인 범행 장소까지 알려줬음에도 경찰의 미흡한 초동대처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국민과 경찰 모두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경찰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고, 이후, 문제의 112신고 대응시스템이 전면 개편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탄탄한 치안 확보에 과학기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과학치안 아이디어 공모전’과 같은 노력이 이어졌다. 이에 탄생한 것이 ‘보이는 112’다.

'보이는 112'는 범죄 현장의 위치와 상황을 경찰이 볼 수 있다.  ⓒ ScienceTimes

골든 타임에 신속한 대처 ​

오원춘 사건은 경찰이 신고 지역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정확한 장소를 몰라서 골든 타임을 놓쳤다. 이것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향후 경찰이 도입할 ‘보이는 112 긴급신고 지원 시스템’은 신고자의 위급한 상황을 112종합상황실에서 영상으로 실시간 볼 수 있는 장비다.

실제로 지난해 5월 28일 서울 관악경찰서 112종합상황실에선 경찰청 주최의 ‘112 긴급신고 지원 시스템’의 시연이 있었다. 이날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신고자로 가장한 경찰관이 112상황실에서 보낸 문자의 인터넷 파일 주소(URL)를 선택하자, 휴대폰에 촬영된 영상이 음성과 함께 초당 30프레임의 고화질(HD)로 보여졌다.

‘보이는 112’는 신고자의 동의만 있으면 별도의 앱 설치 없이 신고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자신의 위급한 실제 상황을 경찰에 전달할 수 있다. 현장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이 함께 전송되며 경찰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땐 채팅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든 타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자의 현재 위치다. 기존의 위치추적 방식은 반드시 신고자가 말로 상황실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오원춘 사건처럼 범인과 신고자가 같은 장소에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범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또 이처럼 화급한 골든 타임의 상황에서도 경찰이 통신사에게 요청하는 방식으로 신고자의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이는 112’ 시스템의 경우, 신고자의 위치가 30초당 한 번 자동으로 바뀌면서 경찰은 대형 모니터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보이는 112’ 시스템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경찰청이 지난 2018년부터 115억 원을 들여 개발해온 치안 현장 맞춤형 연구개발사업(폴리스 랩: Police Lab)의 결과물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연구 결과물이 현장 출동을 위한 채비를 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에는 향후 더욱 본격적인 과학치안의 협력을 위한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여기서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제 우리 경찰은 치안 전반에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스마트한 미래 경찰로 변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최기영 장관은 “첨단 과학기술·정보통신 역량을 경찰 업무 전반에 접목하여 치안 역량을 제고하고, 국민의 안심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과학 치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오원춘 사건과 같은 범죄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경찰에게 범죄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을 모두 알리고 저지를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 우리 곁에는 과학 치안의 보루 ‘폴리스 랩’이 있기 때문이다.

조행만 객원기자
chohang2@empas.com
저작권자 2021-04-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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