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2004년 2월 14일, 전북 부안군의 주민투표장. 바깥에 나붙은 섬뜩한 핵폐기장 유치반대 현수막처럼 굳은 표정으로 부안군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03년 7월 부안군 위도가 방폐장 후보지로 발표된 이후 7개월 동안 부안군에서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반핵단체들이 극렬한 반대운동을 벌였고,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삼보일배를 하며 반대투쟁을 했다. 시민단체들이 부안 방폐장 중재단을 구성하며 주민투표 실시안을 제안했고, 결국 이날 실시된 투표 결과 반대표가 무려 91%를 차지했다. 법적 효력이 없는 투표였지만, 주민의 절대 다수가 반대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부안군의 방폐장 유치신청은 수포로 돌아갔다.
# 장면 2
2005년 11월 2일 경북 경주를 비롯한 영덕, 포항, 전북 군산 등 4개 지역에서 동시에 방폐장 찬반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4개 지역이 경쟁을 벌이는 것도 부안 때와는 달랐지만, 더 큰 차이점은 투표장의 분위기였다. 찬반의 결론이 이미 나 있는 상태에서 누가 더 높은 찬성률을 획득하느냐는 숫자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투표 결과 찬성률이 제일 높은 경주가 방폐장 후보지로 최종 선정되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놀랍다. 포항을 제외한 경주, 군산, 영덕의 투표율이 지난 10ㆍ26 국회의원 재선거 때보다 훨씬 높은 70%를 상회했다. 또 후보지를 선정된 경주의 찬성표는 무려 89.5%였다. 불과 1년여 전의 부안과 비교해볼 때 찬반율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방폐장 후보지의 지역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펼치는 지역 이기주의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원자력산업을 일찍 추진한 선진국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해왔다. 그래서 ‘님비’와 ‘님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란 방폐장 같은 시설이 있어야 하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우리 지역만은 절대 안된다는 뜻이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방폐장이 정말 위험하고 못미더워서만은 아니다.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반대하는 것은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과 집값이 떨어지고, 그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님트(NIMT : Not In My Term)란 이 같은 주민의 입장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그런 시설이 지역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같은 혜택은 부안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제시됐다. 하지만 입으로만 지원 약속을 한 사항을 법적 명문화하여 신뢰성을 높인 것이 이전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낳았다.
또 하나는 절차의 투명성에 있다. 안면도와 굴업도의 경우 주민 몰래 이루어진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부안의 경우에도 군에서 유치신청을 했지만 지방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군수의 자발적 선택이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전히 지자체와 주민에게 의사결정을 맡기며 절차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조했다.
지역 주민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방폐장에 중저준위 폐기물만 유입하기로 한 중저준위 처분시설 분리추진 확정안이었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의 고저에 따라 고준위 및 중저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후 핵연료로서 재처리 여부의 국가정책이 결정될 때까지 중간 저장하고 있다.
이번에 건설되는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했던 부품, 작업복, 휴지, 장갑 등의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영구 처분하게 된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은 세계적으로 천층처분방식과 동굴처분방식이 사용된다. 천층처분방식은 지하 10미터 깊이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폐기물을 묻고 덮는 방식이며, 땅속의 커다란 바위에 동굴을 뚫어 폐기물을 묻는 것이 동굴처분방식이다.
1차 지질조사 결과 경주는 두 가지 방식이 모두 가능한 것으로 나왔는데, 앞으로 경제성과 안전성을 고려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처분방식이 결정될 예정이다.
- 이성규 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5-11-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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