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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편집위원
2005-11-03

방폐장, 19년만의 결론 [1탄] 안면도, 부안 사건 등 숱한 내홍 겪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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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미해결 국책사업의 하나였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 후보지가 마침내 결정됐다. 유례가 없는 주민투표 경합 끝에 경북 경주로 결정되기까지는 무려 19년간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보지로 선정되는 곳마다 격렬한 반대로 전 국민의 관심을 끌던 사업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방폐장 선정까지의 추진과정과 이번 선정의 성공요인,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 註]


1990년 11월,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상 초유의 대사건이 발생했다.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반대하는 안면도 주민 1만여 명이 경찰지서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모두 막고 소방차를 탈취하는가 하면 군청직원들이 시위대에 의해 납치되기도 한 안면도 사태는 3일째 되던 날 정부가 핵폐기물 계획이 없다고 해명한 소식이 전해지고서야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1978년 4월 부산의 고리원전 1호기가 첫 상업운전을 개시한 이후, 우리나라의 방폐장 건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84년 제 211차 원자력위원회에서 「방사상폐기물관리 기본원칙」이 확정되면서부터다. 이후 86년부터 88년까지 원자력위원회는 경북의 울진ㆍ영덕ㆍ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후보지에 대한 지질조사를 벌이던 중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조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겪은 정부는 이후 ‘서해 과학연구단지’란 이름으로 주민 몰래 안면도에 방폐장을 건설하려다 안면도 사태와 같은 엄청난 진통을 겪게 된다. 이 사태로 인해 당시 정근모 과기처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92년에는 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주민회유 작업이 노출돼 안면도의 시위가 재발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이후 93년 전남 장흥과 경남 고성, 94년 경북 울진 등에서의 후보지 선정 노력도 주민 반대로 모두 좌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안면도 사태 이후 전국적으로 반핵 기류가 확산되자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안이 94년 말의 ‘굴업도 선정 발표’였다.

인천에서 서남방으로 90km 떨어진 굴업도는 당시 5가구에 9명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는 굴업도를 택한 것 자체가 주민 시위의 부담이 적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없다는 점을 노린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화강암의 단단한 지층구조와 해상 수송이 편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굴업도 계획은 지질이 활성단층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백지화됐다. 활성단층이란 서로 어긋나 있는 지층이 3만5천년 전부터 현재까지 1회 이상 움직인 적이 있는 것을 말한다. 탐사 결과 굴업도 해역은 최소한 1만년 전 사이에 지층 변이를 일으킨 징후가 2곳에서 발견되어 방폐장으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여태껏 국내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던 셈이다.

이런 와중에서 97년 1월 방폐장 사업의 소관부서가 과학기술부에서 산업자원부로 이관되면서 사업주체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공사로 바뀌게 된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라 한전에서 분리된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가 한전으로부터 사업을 자동승계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후보지 신청이 없어 소강 상태를 보이던 방폐장 선정이 다시 뉴스에 오르게 된 건 2003년 7월 부안군이 유치신청서를 접수하면서부터였다. 굴업도 때 500억원대였던 지역지원금을 3천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지자체 스스로 신청하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지만 부안군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지역지원금을 일부 주민들에게 직접 나눠준다는 소문과 함께 주민 의결기구인 군의회가 부결시킨 유치 청원을 군수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누적된 결과였다.

부안군이 유치신청을 낸 이후 7개월 동안 초등학교 등교거부 및 전경버스 방화, 내소사에서의 부안군수 집단폭행 등 숱한 내홍을 겪다가 결국 주민 찬반투표에 의해 반대표 91%로 부지선정은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2004년 1월 서울대 교수 63명이 관악산 지하공동에 방폐장 유치를 검토하자는 입장을 표명해 사회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강창순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황우석 교수, 오연천 행정대학원장 등이 앞장선 서울대 유치 건의는 방폐장의 안전성을 확신시켜주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 걸친 이기주의에 대한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졌다.

부안 사건 이후 2004년 12월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의 분리 방안이 확정되고, 2005년 3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8월 16일 경주시의 유치 신청에 이어 군산, 포항, 영덕이 유치신청을 해 결국 주민투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1월 2일 동시에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 경주시가 찬성률 89.5%로 군산(찬성률 84.4%)을 따돌리고 19년간의 오랜 표류 끝에 마침내 방폐장 선정의 닻을 내렸다.

이성규 편집위원
저작권자 2005-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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