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전기’로 국가발전에 기여하다

[국민 생활 도움 주는 과학기술센터] (38) 한국전기연구원

우리나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예로부터 농업이 중심인 국가였다. 그러나 제조와 기술개발로 돈을 버는 국가가 된 만큼, 이제는 전기가 산업의 중심인 ‘전기천하지대본(電氣天下之大本)’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기가 산업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자리잡는 것을 ‘전기화(electrification)’라고 한다. 냉·난방을 포함한 기계 및 시스템을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원이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 산업의 전기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 전기연구원

점차 심각해져 가고 있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기 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KERI) 역시 ‘전기화’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래를 선도하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 산업의 전기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한국전기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전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기관으로서, 국내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지난 1976년 설립된 이래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전력망 및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배터리 및 전기재료 기술 등 기본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부터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기 분야 R&D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왔다.

또한 전기연구원은 환태평양 1위 전력기기 국제공인 시험 인증기관이다. 따라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와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원의 시험성적서는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고, 이를 통해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기의 중요성은 최근 미 텍사스주에서 벌어진 정전 사태를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텍사스주의 정전 사태는 유례없는 갑작스러운 한파로 난방용 기기 구매 및 사용이 급증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전기공급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했다.

전기연구원은 다양한 전기 분야 R&D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왔다 ⓒ 전기연구원

설상가상으로 주정부에서 운영 중이었던 석탄화력과 풍력 그리고 가스발전 등 다수의 전력생산 설비들이 한파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서 고장이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전력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또한 텍사스 전력망이 다른 지역 전력망과 연계되지 않고 따로 분리되어 운영된 점도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파는 텍사스주에만 몰아닥친 것이 아니라 다른 주에도 몰아닥쳤지만, 이들 주는 연결된 전력망을 통해 긴급히 다른 주에서 생산된 전력을 구입해 공급했던 것에 비해 텍사스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력공급 장애는 한 국가나 지역 산업을 근본적으로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연구원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독창적인 신기술 개발과 지식기반형 신산업 창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급속충전에 따른 화재 문제 해결 등 국민생활에 기여

전기연구원이 수행하는 과제가 워낙 첨단 분야이고 내용도 어렵다보니 국민들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빠른 속도로 충전해도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술인 ‘음극용 촉매 소재 및 코팅 시스템’ 같은 획기적인 개발 성과를 꼽을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전기차의 화재 사고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기차의 단점 중의 하나는 오랜 충전 시간이다. 평상시에는 밤이나 쉬는 시간을 통해 충전을 하므로 별 문제가 없지만, 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충전을 해야 한다면 낭패를 보기 쉽다. 그래서 개발된 방법이 급속충전 시스템이다.

하지만 급속충전 시스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빠르게 충전하다 보니 화재가 발생할 수 있고, 배터리의 충전 기능이 저하 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전 세계 기업들이 앞다투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만큼 미래 배터리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고 가면서 전기 에너지를 저장 및 방전하는 원리다. 충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리튬이온이 빠르게 이동해야만 한다.

기존 소재(좌)와 음극용 촉매 소재 및 코팅 시스템 비교(우) ⓒ 전기연구원

흑연은 이 과정에서 결정 구조의 변화가 작다는 장점으로, 전극 내에서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인 산화와 환원 반응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급속충전 시에는 흑연 음극 표면에 리튬 금속이 응집되어 배터리의 성능과 안정성을 낮추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흑연 음극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금속인화물 촉매 코팅 기술’을 최근 전기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촉매 소재가 배터리 전해액 내 리튬이온의 탈용매화 반응을 돕고, 전하 전달 반응을 촉진해 급속충전 시에도 배터리의 수명이나 안전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동안 급속충전 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전 방식을 변경한다든지, 안정성 향상을 위해 배터리 전극 밀도를 낮추려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고에너지 밀도 유지와 급속충전 성능 개선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소재 기술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전기연구원이 개발한 촉매 소재 및 코팅 기술은 배터리 내 리튬 석출의 가능성을 현저히 감소시켜 발열 위험을 낮춰주기 때문에, 급속충전 시에도 성능과 안전성을 모두 보장해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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