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발전의 성과에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0년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했다. 본지에서는 이번 70선에 대한 시대별 선정결과를 연대별로 7회에 걸쳐 소개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310억2000만 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한 수치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35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반도체가 이처럼 한국 수출의 대표 주자로서 국가 경제를 짊어지고 있지만 1980년대 초 상황은 정반대였다.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를 반대하는 소리가 매우 높았다.
당시 삼성에 입사해 반도체 개발 책임자로서 기술자립기반 구축에 혼신을 기울였던 김광교 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75)은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에 한국 돈이 다 들어가고 있다며 신규 투자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메모리 ‘4메가 DRAM’ 개발로 일본 따라잡아
특히 기술제휴선인 일본 측 반대가 매우 심했다. 도요타 등 일본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성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전자 관계자들에게 “반도체를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잘못하면 망할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의 반도체산업 참여를 극구 만류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1년 정부가 ‘전자공업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1982년부터는 저리의 자금 대출 등 포괄적 지원을 시작한다.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기술력으로 ‘10년 안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반도체산업 종합육성대책’을 수립할 당시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 일본은 이미 메모리 반도체인 4M DRAM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에서 1M DRAM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단계였다.
정부는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삼성전자 단독으로 추진하던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정부와 기업 공동 개발 체제로 전환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와 삼성, 금성, 현재 등의 업체가 협력해 1M DRAM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4M DRAM 개발해나가기 시작했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이 공동개발 전략이 적중했다. 1986년 1메가 DRAM을 개발한데 이어 1988년 마침내 4메가 DRAM 개발에 성공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미국,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4메가 DRAM 개발로 한국은 16메가 DRAM(1990년), 64메가 DRAM(1992년), 256메가 DRAM(1994년)에 이어 1996년 1기가 DRAM을 개발함으로써 1994년을 기점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을 따돌릴 수 있었다.
TDX-1 상용화로 ‘1가구 1전화 시대’ 열어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던 1986년 3월 전북 무주, 경북 고령, 경기도 전곡과 가평 등 4개 지역에서는 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TDX-1 2만4000회선이 동시에 개통된 것이다.
TDX(Time Division Exchange)란 기존 자동식 교환기(MFC)에 컴퓨터 기술을 결합시킨 전자식 자동전화기다. 이전의 다이얼 식의 전화기가 아닌 전자식 버튼이 달려 있었다. 일반전화 기능 외에 음성 · 비음성(FAX · DATA) 등 정보교환도 가능한 최첨단 교환기였다.

ⓒETRI
정부가 TDX 개발에 힘을 기울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만성적인 전화 적체 때문이었다. 1960~70년대 경제발전은 전화 수요량을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당시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하던 기계식 전화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1976년 2월 기계식 대신 전자교환기 TDX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81년 초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1982년부터 5년간 연인원 1300명과 총240억 원의 연구비’를 골자로 하는 TDX 개발 계획안을 제출했다.
정부에서는 전자산업육성은 물론 장기적인 국가 발전까지 고려해 정부는 TDX 개발 계획안을 받아들이고 1981년 10월 20일, TDX 개발 계획을 정부 정책으로 최종 확정했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난 1986년 3월 TDX가 전국에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TDX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의 걸림돌이었던 만성 전화적체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21세기를 주도할 기술체계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계식 교환기와 아날로그 교환기의 제작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디지털 교환기를 개발해 생산한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 또 세계 10번째 전자교환기 생산국이면서 6번째 수출국 대열에 올라섰다.
휴대폰에서 광섬유까지 상용화에 성공
1980년대는 우리나라 IT 산업에 있어 핵심 기술들이 탄생한 시기였다. 4메가 DRAM, TDX-1이 그랬고, 휴대폰이 그랬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이동통신 시대를 예견하고, 자체적으로 휴대폰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동통신 기술을 적용해 1986년 국내 최초로 핸드폰의 효시가 되는 이동통신용 단말기 ‘SC-2000’을 개발해 자동차용으로 판매한다. 이어 1987년에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초의 핸드폰 ‘SCH-100’ 개발에 성공한다.
통신 분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개발 성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광통신용 광섬유를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광섬유는 지금의 인터넷 사회를 연결하는 기반 기술이다.
우리나라 광섬유 연구의 시작은 1978년부터다. KIST와 LG그룹 전신인 금성전선, 대한전선이 손을 맞잡고 광섬유 공동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의 광섬유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1980년, 미국 AT&T사의 '밸랩(Bell Lab)'에서 광섬유 기술을 한국에 판매하러 왔다가 오히려 밸랩 연구원들을 한국으로 불러 배워갔다는 일화는 당시 한국 기술력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이 같은 공동 연구를 통해 KIST는 1981년 변형 화학 증착 공법(MCVD)법을 사용해 극미량의 손실을 가진 광섬유를 국내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실제 통신 현장에 광섬유통신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통해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초고속 인터넷 망을 갖출 수 있었다. 또 한국산 제품의 품질을 인정받아 세계 시장을 석권해온 미국, 일본 다음으로 많은 세계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중이다.
녹십자, 세계 세 번째로 간염백신 개발해
1980년대는 또한 신소재, BT, 플랜트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알리는 성과들이 연이어 등장한 시기였다. 특히 기업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녹십자에서는 B형 간염백신을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녹십자는 1971년부터 간염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12년 연구 끝에 1983년 ‘헤파박스B’란 브랜드로 신약을 선보인다. 미국의 MSD, 프랑스의 파스퇴르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B형간염 백신이었다.
당시 국내 간 질환 환자 중 약 70%가 B형간염 바이러스 감염자였지만 B형간염 백신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녹십자에서는 ‘헤파박스B’를 염가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13% 대에 이르던 국내 B형간염 보균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놓는 계기가 됐다.
두산중공업의 해수 담수화 기술도 당시 상황에서 획기적인 발상으로 성공을 거둔 기술 중의 하나다. 두산에 인수된 당시 한국중공업은 환경오염에 따른 물 부족으로 이 분야가 유망산업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1978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
바닷물을 증류시켜 식수와 농업 생활용수 등을 만들어내는 설비로 가격이 수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기술이었다. 이후 한국중공업은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던 담수화 기술을 개발해 일본 미쓰미시가 독점하던 설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입지를 다져 중동지역 해수담수화 플랜트 30개 가운데 27개를 건설하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1980년대 생소했던 담수화 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두산중공업은 영국의 배크콕(Babcock), 체코의 스코다 파워(Skoda Power), 독일의 렌체스(Lentjes) 등 글로벌 기업을 인수해 발전설비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이밖에 메디슨의 초음파진단 기술,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 개발,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스, 정부의 남극세종기지 건설, 농촌진흥청의 비닐하우스 온실 기술, 대한유화의 고밀도 폴리에틸렌 생산 기술, KIST의 고밀도 아라미드 섬유 등도 1990년대 이후 한국 과학기술의 도약을 알린 중요한 기술들이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 저작권자 2015-07-15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