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도 하루의 시간을 알고 있다

비광합성 박테리아에서 일주기 리듬 최초 발견

생체시계와 일주기 리듬은 지구의 생물체에 널리 퍼져 있는 정교한 내부 시계 메커니즘으로서, 살아 있는 유기체가 계절에 상관없이 낮부터 밤까지 발생하는 주요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이러한 분자 리듬은 빛이나 온도 같은 외부 신호를 사용해 생물학적 시계를 동기화한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시차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새로운 환경 요소와 내부의 시계가 일시적으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행해진 수많은 연구들은 인간의 수면 및 인지 기능, 식물의 수분 조절 및 광합성 등과 같은 필수 과정에서 이러한 분자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했다.

비광합성 박테리아인 고초균이 일주기 리듬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Professor Ákos Kovács(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박테리아도 인간을 비롯해 다른 동식물들과 일치하는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 생물량의 12%를 차지하는 박테리아는 건강, 생태학,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전 연구에서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의 경우 생체시계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엽록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의 생체시계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생체시계를 작동시키는 세 종류의 단백질과 함께 그 작동 원리까지 밝혀졌다.

하지만 기생이나 공생을 하지 않고 독립생활을 하는 비광합성 박테리아의 생체시계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빛과 어둠 조건 뒤집으면 일주기 리듬도 반전

이번 연구를 진행한 독일, 영국, 덴마크 등의 국제 공동 연구진은 광합성을 하지 않는 토양 박테리아인 ‘고초균(Bacillus subtilis)’에서 일주기 리듬을 발견했다. 고초균은 토양, 공기, 하수 등의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는 호기성 세균으로서 병을 일으키지 않는 유익한 미생물이다.

연구진은 생물 발광을 만드는 효소를 첨가해 유전자가 유기체 내에서 얼마나 활동적인지를 시각화화는 ‘루시페라아제 리포팅(luciferase reporting)’ 기술을 적용해 푸른색의 광수용체를 암호화하는 ytvA 유전자와 박테리아에서 생물막과 포자의 형성을 유도하는 KinC 유전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빛 12시간, 어둠 12시간의 주기와 더불어 지속적인 어둠 속에서 유전자의 수준을 관찰한 것. 그 결과 ytvA 유전자 수치의 패턴이 어두울 때는 증가하고 밝을 때는 감소하면서 빛과 어둠의 주기에 맞춰 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지속적인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같은 순환이 관찰되었다.

연구진은 빛과 어둠의 조건을 뒤집으면 유전자의 패턴 역시 반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같은 특징은 일주기 리듬의 일반적인 특징이자 환경 신호에 대해 적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또한 연구진은 온도의 주기 길이나 강도 등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ytvA와 KinC 유전자의 리듬이 온도에 반응해 켜지고 꺼질 뿐만 아니라 일주기 리듬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자 작용을 하루의 시간에 맞게 조정

이번 연구를 주도한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마사 메로우(Martha Merrow) 교수는 “비광합성 박테리아가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며 “이 박테리아들은 빛이나 온도 환경에서 주기를 읽음으로써 분자 작용을 하루의 시간에 맞게 조정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마사 메로우(Martha Merrow) 교수. ⓒLudwig Maximilians University

생체시계를 이해하면 생체의 시간을 멈추거나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는 생물학의 오랜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약물 전달 시기, 생명공학, 농작물 보호를 위한 해결책 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한 영국 존인스센터의 안토니 도드(Antony Dodd) 박사는 “박테리아 전체에 대한 일주기 리듬을 조사할 수 있는 포문을 열었다”며 “이제 박테리아가 이러한 일주기 리듬을 발생시키는 과정을 알아내고 생체시계를 갖는 것이 박테리아에게 왜 유리한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덴마크 공과대학의 아코스 코바흐스(Ákos Kovács) 교수는 “고초균은 최근에 프로바이오틱스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세탁 세제부터 농작물 보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므로 이 박테리아의 생체시계 역시 생명공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사 메로우 교수는 “의학적·생태학적 문제 외에도 박테리아를 모델로 삼아 생체시계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월 8일 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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