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흉내로 최적의 면역 효과 노린다

[전승민의 백신 이야기] (10) 자궁경부암 정복 이끈 ‘바이러스 유사입자 백신’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 모습. 현재 상당수의 코로나19 백신은 바이러스 끝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바이러스의 형태는 면역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미국질병관리청

백신 개발자가 ‘A라는 질병의 백신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어떤 방법을 떠올릴까. 병원체와 인체의 생리학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가장 효과가 뛰어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빠르게 결과를 내고자 한다면 대부분은 ‘재조합백신’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상당수의 질병에 대해 큰 문제 없이 백신을 개발할 수 있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면역반응을 얻을 수 있는 일부 단백질 성분만을 만들어 항원으로 사용하므로 안전성도 확실하다.

그러나 이 방법도 단점은 있다. 우선 항원의 형태가 실제 병원체와 차이가 있어 면역반응이 약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충분한 면역을 형성하기 위하여 두 차례 이상의 접종이 필요하며, 면역반응을 끌어 올리기 위해 보조제를 추가로 사용할 필요도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백신의 효율을 한층 더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전자재조합기술로 얻은 단백질이 그 형태 때문에 ‘항원’으로서 효과가 낮다면, 처음부터 바이러스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면 면역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른바 ‘바이러스 유사입자(Virus-like particle, VLP) 백신은 이렇게 태어났다. VLP는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겉보기엔 마치 살아있는 바이러스 같지만, 속에는 DNA가 들어있지 않으므로 인체 속에서 감염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론적으로 대단히 합리적이고 안전한 형태의 백신인 셈이다.

감염위험 없는 ’무늬만 바이러스‘

대표적인 바이러스유사입자(VLP) 백신 ‘가다실’.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다. ⓒMSD

최근 언론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세포를 뚫고 들어갈 때 사용하는 돌기다. 지금까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중 상당수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흉내 내서 만들었다. 백신으로 후천성 면역을 얻은 우리 몸속 항체는, 나중에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그 표면에 돋아나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보고 달려들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바이러스의 겉모습은 면역을 얻을 때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기존의 ‘재조합백신’은 이런 점에서 약점이 있었다. 재조합백신은 대장균 등의 유전자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만든다. 예방하고 싶은 병원체의 DNA 일부를 잘라 대장균 등에 삽입해 배양하는데, 이렇게 만든 대장균은 대사 활동을 하며 백신으로 쓸 수 있는 단백질 입자를 배출하게 된다. 이런 성분을 모아 백신으로 쓰는 것이다.
VLP 백신이란 이런 ‘재조합단백질’의 형태를 바이러스와 유사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려면 극도로 적은 단백질의 구조를 바이러스와 비슷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조립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생명현상을 통해 생겨나는 단백질을 바이러스 형태로 만든다는 것일까.

이 과정에서 이용하는 것이 생명체가 가진 ‘발현 시스템’이다. 세균이나 효모, 곤충세포, 식물세포 등 다양한 생명체는 자신의 세포를 복제하면서 유전자 정보를 복제해 원래 모습과 같은 것을 만들게 되는데, 그 시스템에 ‘이러이러한 바이러스의 형태로 단백질을 복제하라’는 명령을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이때도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한다. 병원체(이 경우 주로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형태를 결정하는 부분까지 포함해 백신을 생산할 세포(숙주세포) 속 유전자에 끼워 넣는 식으로 만들어 배양하는 식이다.

바이러스는 크게 껍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외피형(enveloped)’과 ‘비외피형(non-enveloped)’으로 나뉘는데, 바이러스를 흉내 내 만든 VLP도 당연히 이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외피형이 크기도 더 크고, 더 복잡한 정보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재조합백신을 만들 때는 세균이나 효모 등, 단세포 생명체를 숙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VLP를 만들 때는 잘 어울리지 않은 편이다. 단백질을 조립하는 과정 등이 단순해 복잡한 형태의 단백질, 즉 바이러스의 겉모습을 꼭 빼닮은 항원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균이나 효모를 사용하면 생산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는 이점이 있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비외피형 VLP’를 만들기 위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VLP 백신을 만들 때 자주 쓰이는 것은 곤충의 세포다. 곤충 세포의 경우 단백질을 생산하고 변형하는 과정이 인간과 비슷한 경우가 많아 외피형, 혹은 비외피형 VLP 생산이 모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이용해 후천선면역결핍증(AIDS),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자궁경부암(HPV·인유두종 바이러스), B형간염(HBV)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동물용 백신으로는 돼지 써코 바이러스(PCV2) 예방용이 나와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곤충의 세포 속에 필요한 유전자정 보를 집어넣기 위해 ‘배큘로’란 이름의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크기가 아주 작은 바이러스에 DNA를 실어 곤충세포 속으로 옮겨 넣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만든 백신은 안에 배큘로 바이러스나 혹은 그 성분이 남아있을 수 있다. 감염을 일으킬 우려는 없으나 부작용 등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VLP 백신의 최대 장점은 향후 기술이 더 발전하면 식물에서도 백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식물세포 역시 발현시스템을 갖고 있으므로, 그것을 이용해 백신을 생산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작물을 길러 유효성분을 걸러내는 것만으로도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이를 극복하려는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 몇 해 전 미국 제약회사 노바백스 사가 독감(인플루엔자)용 백신을 식물세포를 이용해 개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밖에 차세대 AIDS 예방백신, 광견병 및 A, C형 간염 등 다양한 난치병 예방을 위한 VLP 백신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용 VLP 백신도 개발 중

효능이 뛰어난 방식이다 보니 코로나19 백신도 VLP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는 곳도 있다. 우선 캐나다 메디카고 사와 일본 다나베미쓰비시 제약사가 공동으로 개발 중인 백신이 있다. 2020년 7월 임상 1상 승인을 받고 현재까지 연구를 계속 중이다. 기존과 달리 식물에서 백신 성분을 얻는 형태로 백신을 개발해 현재 임상을 계속하고 있다. 숙주식물로는 담배, 혹은 알팔파(자주개자리)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인도 세럼연구소도 VLP 방식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VLP 백신은 바이러스의 구조를 그대로 흉내내기 때문에 강력한 면역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DNA는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감염 역시 불가능해 대단히 안전하다. 입자구조를 통해 면역을 얻기 때문에, 개발하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한 번의 접종으로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면역세포 중 B세포, 수지상세포 등과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대단히 높은 면역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론상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의 모습도 흉내내 만들 수 있으며, 바이러스의 내부 DNA에 변이가 일어나도 전체적인 외부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면역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능력 역시 높다는 뜻이다.

VLP 백신은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해 이미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백신제조법으로, 이미 실용화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재조합백신의 단점을 해결하고 강력한 면역반응을 기대할 수 있으며, 점점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연구 결과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보다 미래에,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여 차세대 첨단 백신의 한 형태로 기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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