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기초과학 진흥 –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 네트워크 구축 –

[물리학과 첨단기술] 과학의 창

부상돈 전북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

우리나라는 현재 전국대학의 기초과학 학과들의 숫자가 급속히 줄고 있다. 대학들이 비인기학과라는 이유로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 등을 위해 이들 학과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기초과학의 기본인 이들 학과의 축소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실 지역의 경우 국공립대를 제외하면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존에 기초과학 학과를 운영하던 대학 중 상당수는 학과 명칭을 변경하고 교육 방향을 바꿨다. 물리학의 경우 응용물리학, 전자물리학, 나노물리학, 신소재물리학, 방사선물리학 등 실용 학문과 결합했고 화학 역시 응용화학, 나노화학, 소재화학, 공업화학 등으로 바뀐 사례가 많다. 문제는 기초과학 학과의 축소 분위기는 현재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대학들이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폐과나 학과 통폐합을 시행할 때 기초과학 학과는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학생들의 지원이 적은 비인기학과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과학 홀대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절반에 가까운 국내 4년제 대학교에 물리학, 화학, 수학, 생물학 등 자연계열 기초 학과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은 생태계 붕괴 위기에 처한 국내 기초과학계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인, 자연과학을 포함한 기초학문 전공자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이 분야 학과의 정원을 줄이거나 폐과를 하는 현상은 이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전국대학 자연과학대학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종로학원하늘교육의 ‘2019년 전국 4년제대 이공계 기초학문분야 설치 대학현황’에 따르면 전국 4년제 180개 대학 중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수학 등 자연과학계열 기초과학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92개에 불과하다(그림 참조). 서울권 32개 대학의 미설치율은 25%(8개), 수도권 및 지방권 148개 대학의 미설치율은 54.1%로 이미 절반을 넘었다. 반면, 첨단학과인 AI 관련 학과는 48개 대학, 빅데이터 관련 학과는 46개 대학이 신설·통합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요약하면, 국가 지원도 첨단 유행 학문에 집중되면서 기초과학 학문의 국가 경쟁력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이다. 특정 사업 위주로 지원하는 정부의 과학계 지원 정책도 재정에 목마른 대학들이 유행 학과 설치에만 열을 올리게 되며 기초학문의 시스템 붕괴에 사실상 일조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기초과학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기초과학에 투자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또 오랜 시간이 걸려야 상업화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초과학 투자를 꺼리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국민의 기초과학에 관한 관심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와 같은 기초학문에 대한 무관심은 학령인구 감소 등과 맞물려 과학기술 경쟁력을 저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업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쳐 결국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것이 분명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는 한국 과학의 붕괴의 조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생각해 본다. 한 가지로는, 국가 주도의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소(가칭, K-Science 국민과학연구소) 육성이 필요해 보인다. 현대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개인 연구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사실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이 개인별로 교수 1인 연구실을 만들고, 과제를 받아오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형태로는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특히, 최근 감염병 관련 국가적인 이슈는 세부 전공 간의 긴밀한 협동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맞는 본인의 전공분야만 연구하는 것이 아닌 연구 관련 분야의 공동연구시스템을 운영하는 연구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다른 대안으로는, 요즘 많은 얘기가 되고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경희대 김종영 교수 등이 이 담론을 시작했다. 기존 서울대를 포함한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을 한국1대학, 한국2대학, …, 한국10대학으로 재편해서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방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만큼 예산을 투입해 수준 높은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벤치마킹 대상은 4년제 공립 연구중심대학 10개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대학 체제이다. 여기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샌타바버라, 어바인, 데이비스, 샌타크루즈, 리버사이드, 머세드 캘리포니아대학이 포함되며, 이 중 7개가 전 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도 지역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중심대학·과학거점대학으로 육성·지원함으로써, 입학정원 미달·연구인력 및 연구경쟁력 약화·기초과학 기피 문제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시대에 대응하는 인재를 육성·배출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낸다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 네트워크를 단 시간 안에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학을 포함하는 기초학문 전공자를 산업계에서 채용하는 것을 강제하거나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기초학문 전공자들에 대한 산업계의 수요 창출, 그들을 지렛대로 하는 다양성을 통한 선도자 배출을 도모하는 처방이다. 이제까지 주도적인 패러다임인 빠른 추격자의 커다란 관성을 생각하면 이런 처방은 실천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기초학문 전공자를 산업계에서 고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활력을 줄 것이다. 기초학문 연구자들을 폭넓게 활용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고 획기적인 방안들이 널리 시행되어 한국 경제의 돌파구들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흔히들 기초과학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기초과학에 투자되는 비용이 너무 크고, 또 오랜 시간이 걸려야 상업화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초과학 투자를 꺼려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MPI 연구소, 일본 이화학연구소,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적당한 시스템을 통해서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면 기초과학을 통해서 발전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 전문성과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지속적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기초과학 지식 축적과 양질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전국 자연과학대학 분포 현황(2020)

 

* 이 글은 한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웹진 ‘물리학과 첨단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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