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표면에 물방울이 놓이면 그 자리는 미세한 주름이 잡히게 된다. 이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젖음현상’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지금까지는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년 동안 젖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영의 법칙(Young's law)과 뉴만의 법칙(Neumann's law)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들은 젖음주름 현상을 설명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오직 수평 방향의 평형만을 고려한 채 수직 방향에서의 힘의 평형은 무시된 것이다. 이처럼 영의 법칙과 뉴만의 법칙은 딱딱한 고체 혹은 액체 표면에서만 법칙이 성립되기 때문에 고분자 젤과 고무, 생체 연조직 등 탄성(elastic) 또는 점탄성(viscoelastic)을 보이는 무른 물질의 젖음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미세한 젖음주름의 비밀
국내 연구진이 고체표면에 놓인 물방울에 발생하는 미세한 젖음주름의 원리를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원리 규명이 어려웠던 현상에 대한 발견인 만큼 비밀이 풀린 것에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정호 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물방울에 의해 탄성을 지닌 물질표면이 당겨 올라가 발생하는 젖음주름을 규명, 이는 앞으로 세포조작이나 프린팅 기기, 물질의 표면처리 등 각종 나노기술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젖음주름 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물방울이 놓인 자리에 주름이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체바닥 위에 액체가 놓일 때 액체와 기체의 계면에는 장력이 발생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수직방향의 힘에 의해 액체, 기체, 고체 경계면 영역의 고체가 뾰족하게 융기하는데 이를 일컬어 젖음주름이라고 이야기 한다. 주로 무른 고체 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나뭇잎 위의 이슬과 손등에 떨어뜨린 에센스 방울, 눈에 떨어뜨림 점안액 등에서 일어나곤 한다.
“고체표면 위에 액체방울이 놓이게 되면 삼상(고체-액체-기체(공기))의 계면이 존재하게 됩니다. 삼상계면 주위의 젖음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세 가지, 즉 고체-액체, 액체-기체, 기체-고체의 계면장력입니다. 그 중에서 기체-액체의 계면장력(액체의 표면장력)의 수직 성분(수직의 힘)이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이 수직의 힘은 단단한 고체의 경우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강도가 약한 무른 고체표면의 경우 이 수직의 힘은 고체표면을 변형시킬 만큼 충분히 크기가 됩니다.
그래서 이 수직의 힘이 고체표면을 위쪽으로 융기시키게 되고 그 결과 삼각형 모양(고체표면의 융기 부분)의 미세한 주름이 형성되게 되죠. 이 미세주름을 젖음주름이라 부릅니다. 젖음주름이 형성되면 지금까지 이해하는 젖음현상과 다른 거동을 보이기 때문에 젖음현상의 응용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젖음주름의 형성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번 연구로 그 형성원리를 밝혀낸 것입니다.”
고체 위에 액체방울이 놓이면 물리적, 화학적 반응에 의해 액체 방울이 고체표면에 젖는 정도가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젖는 정도는 일반적으로 접히는 각도, 즉 젖음각으로 수치화 되곤 하는데 젖음 현상은 손이 물에 젖거나 옷이 땀으로 젖을 때 등 우리 생활에서 흔히 관찰된다. 더불어 나노과학기술의 응용에서 젖음현상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인자이기도 하다.
제정호 교수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젖음현상은 단단한 고체 위에서의 현상을 기본적으로 가정한 채 오랫동안 연구돼 왔다. 최근 들어 주목을 받은 것은 무른 고체 위에서의 젖음현상이 단단한 고체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액체표면장력의 수직방향의 힘에 의해 고체표면이 수직방향으로 솟아 올라 젖음주름이 형성되는 현상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젖은주름을 직접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접적인 관찰에 의존해 왔고 이로 인해 정확한 원리를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무른 물질의 젖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관건은 수직의 힘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수직힘에 의해 물방울 둘레에서 고체표면의 특정한 변형, 즉 젖음 주름이 발생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젖음 현상을 완전히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법칙에 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됐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선형탄성이론을 이용해 주름형성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응력-변형 접근법은 삼상(액체-고체-기체) 접촉선 근처에서 발산하기 때문에 삼상영역의 변형을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종전의 광학현미경에 기초한 영상화기법은 삼상계면에서의 심한 굴절 및 반사 현상으로 계면의 미시적 변화를 직접 관찰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간접적인 관찰에 의존해 왔어요. 이로 인해 정확한 원리가 규명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저희 연구에서는 X선나노현미경을 이용해 젖음주름을 처음으로 직접 관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젖음주름의 꼭지점 모양을 정확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꼭지점의 미세접촉각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젖음주름의 형성원리를 규명해 낼 수 있었어요.”
거듭된 연구 실패… 마지막 날 극적으로 성공
많은 실험을 거쳐 제정호 교수팀은 물방울 표면에 생긴 젖음주름의 꼭지점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비대칭삼각형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물질이 무를수록 젖음주름은 높게 생성되고 수직 방향의 힘에도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젖음주름의 형태는 꼭지점에 작용하는 세 가지 계면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사실 그동안 공초점 현미경을 이용해 현상을 관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염색물질 등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정확도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제정호 교수팀의 이번 관측은 정확도를 높이 끌어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젖음주름을 직접 관찰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통상의 광학현미경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광학현미경은 가시광원을 이용하는데, 가시광은 액체속으로 들어가면 굴절과 산란이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액체내부의 상을 정확하게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가시광 대신 광원으로 X선을 이용했습니다. X선은 액체내부에서 굴절이나 산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액체내부의 젖음주름 형태를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저희 연구실은 오랫동안 X선 현미경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에 논문을 제출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저희가 X선 현미경으로 관찰한 젖음주름의 정확한 형태를 보고 매우 놀라워 하더군요.”
제정호 교수팀은 이번 성과를 내기 까지 3년의 시간을 들였다. 생각보다 짧은 기간인데, 이렇게 진행할 수 있던 것은 제 교수팀이 오랫동안 X선 현미경 연구를 해 왔기에 가능했다. 제정호 교수는 “저희 연구실이 기본적으로 융합연구를 진행한다”며 “때문에 X선현미경을 물리의 중요한 문제에 응용하는데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축적된 역량으로 단 기간 내에 좋은 성과를 얻었지만 과정 중에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주어진 시간 내에 실험을 완료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실험은 미국알곤국립연구소의 방사광가속기에서 진행됐습니다. 빔타임(방사광가속기에서 승인받은 실험기간)이 결정되면 연구원들이 미국으로 가서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 승인이 날 때마다 4일이 주어지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실험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시차를 고려할 여유도 없이 밤을 새우며 실험을 해야 하죠. 실험 자체도 매우 어려운데 시간도 짦으니 연구원들이 받은 중압감이 매우 컸습니다. 계속 관찰에 실패 하다가 마지막 날 밤을 새며 실험할 때 비로소 관찰에 성공하기도 했어요.”
제정호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젖음현상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규명한 사례다. 때문에 그는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앞으로 많은 기초 및 응용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이미 이론 분야에서는 제정호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모델 연구가 시작돼 발표되고 있는 상태다.
“저희 팀의 연구는 외국 과학자의 도움없이 중요한 물리적 원리를 규명했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수 국내 인재들이 주도한 연구로 ‘네이처’ 자매지에 논문을 낼 수 있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의 과학자들이 저희 연구결과를 토대로 젖음현상 연구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죠. 자연의 숨겨진 원리를 규명하는 것 만큼 커다란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리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젖음주름의 동역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향후에는 젖음주름의 공학적 응용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8-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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