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박물관으로서의 스미소니언은 다수의 테마별 박물관에서 1억4천만 점의 다양한 유물과 표본을 전시함으로써 과학, 역사 및 예술을 총망라하는 교육과 계몽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 테마의 목록에는 우주 개발과 항공의 역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 발명품, 인디언의 삶과 문화, 직물과 퀼트, 동식물학 및 광물표본, 화석, 만국기, 조각품, 장난감 등 귀중한 역사의 자산들이 담겨 있어, 매년 7천3백만 여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스미소니언은 전시의 연장선상에서 미국 전역의 수집물 보존과 관리, 그리고 교육의 다양한 임무는 물론 학술적인 전문과학연구를 수행하고 지원하는, 말하자면 문화와 과학의 융합처라 할 수 있다. 스미소니언의 6개 연구센터는 자체적으로 또는 국제적인 협력체제 하에 인류학, 열대생물학, 해양생물학, 광물학, 분류학, 고생물학, 천체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연구 프로그램을 가동함으로써 21세기 세계 최대의 기초연구소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설립은 영국의 화학자인 스미슨(James Smithson)이 1829년 사망하면서 약 55만 달러의 상속기부금을 미국 정부에 위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스미슨은 ‘인간계몽과 보편교육을 통한 민주주의의 구현에 필요한 지식을 추구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시설을 워싱턴에 세우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스미슨의 이러한 설립 의도는 바로 과학을 일반대중의 교육과 계몽의 도구로 삼아 문명개화와 사회개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램을 담은 것이었다.
스미슨이 남긴 기금의 규모는 엄청난 것이었기에 스미슨이 의도한 시설의 형태와 내용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미국 의회에서 전개되었다. 국립도서관, 국립대학, 천문대, 과학연구소, 박물관 등의 다양한 설립안들이 제시되었으며, 현재의 스미소니언은 결국 이러한 시설들을 대부분 망라하는 종합박물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스미소니언이 오늘날과 같은 종합박물관의 위용과 역할을 갖추게 된 것은 ‘지식의 추구와 확산’이라는 스미슨의 대명제에 의욕적인 과학진흥 전략이 투영된 결과이다. 초대관장으로 선임된 물리학자 헨리(J. Henry)는 미국의 과학진흥을 주창한 선각자의 일원으로 스미소니언이 기초과학연구소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한 몫 했다.
또한 2대 박물관장인 박물학자 겸 조류학자 베어드(S. Baird)는 전시활동을 도구 삼아 관람객들에게 민주주의 시민의 정체성을 교육하고 미국의 업적과 성취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연사 분야 분류학의 체계적인 기초연구에 요람처를 제공할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 설립을 추진하였다.
3대 박물관장으로 물리학자 겸 천문학자였던 랭글리(S. Langley)는 스미소니언에 천문물리 연구센터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국 천문학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자 했다. 그 결과 탄생한 스미소니언 천문대는 현재까지 주류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천체관측위성실험, 운석·혜성연구, 이론천체물리학 분야와 고에너지 천체물리학, 행성과학, 적외선 천문학, 전파천문학, 태양·항성물리학 분야를 포함한 천문학 연구프로그램을 확대시켜 왔다.
랭글리를 비롯하여 스미소니언 박물관장들의 업적과 관련하여 더욱 주목할 것은, 전시를 통한 볼거리와 영감의 제공이라는 박물관 본연의 대중적·문화적 임무에 그치지 않고 학술연구라는 전문적·과학적 기능까지 스미소니언의 역할 영역으로 편입시켜 간 점이다.
예를 들어 랭글리는 스미소니언 부설 국립동물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를 동물학 연구진흥의 계기로 삼았다. 현재 스미소니언의 국립동물원은 버팔로, 흑곰, 표범, 독수리, 칠면조수리, 먹구렁이, 악어, 바다사자, 야크 등 살아있는 동물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는 동시에, 일반대중의 교육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은 물론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종의 보호에도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식과학, 보존생물학, 영양학, 수의학 및 병리학과 동물행동학의 연구와 우수전문인력 양성에 있어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른바 스미소니언 패턴의 기초과학은 최근 들어 확장일로에 있으며 특히, 스미소니언 산하 환경연구센터(Smithonian Environmental Research Center)는 전지구적 환경 변화와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상호작용에 대한 데이터 측정, 생물다양성 및 보존에 대한 장기적 기초연구 프로젝트를 국내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스미소니언은 그 전시 시스템과 수행 프로젝트의 면면이 보여주는 거대성과 국제성과는 묘하게 대조적으로, 박물관의 운영은 자발적이고 참여적인 풀뿌리 과학의 원리에 의해 지탱되는 특징 역시 보여주고 있다. 스미슨이라는 한 과학자의 사적기금에서 출발한 스미소니언은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적, 정신적, 실천적 교육과 계몽의 수행이라는 취지를 인정받아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누릴 수 있었으면서도, 연방정부의 개입으로부터는 자유로운 비정부기구의 독립조직체의 속성이 강했다.
이러한 스미소니언의 태생적 특징은 오늘날 스미소니언의 최대 자산인 회원제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스미소니언의 회원들은 은퇴한 사서에서 대학원생, 은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회원제, 기업회원제, 여성회원제, 자원봉사단 서클을 포함한 회원제의 인적자원은, 오늘날 스미소니언이 정부 지원금 이외에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기업, 재단, 단체 및 개인으로부터의 사적 후원(증여, 기부, 보조금, 기증)을 끌어오는 소중한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도처에 뿌리내린 이러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오늘날 스미소니언은 청소년층과 교사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정보자료 제공 및 교육 프로그램 개발(박물학 교육과정 운영), 출간물 배포, 지역순회강연, 체험형(Hands-on) 관람 프로그램 개발, 어린이용 관람 프로그램 운영 등을 수행하는, 과학문화 실천운동의 총본산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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