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바이오 분야에서 바람직한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는 가운데 암, 당뇨병 등 전통적인 치료방법에 한계가 있는 난치성 질환들에 희망의 등불이 켜지고 있다. 인류 최대의 적으로 꼽히는 암은 그동안 항암제, 방사선요법 등 강력한 치료기술이 개발됐으나 정상세포도 공격을 받는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암 세포만을 공격하는 표적치료기술이 크게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세균과 바이러스이용한 유전자 조작 기술이 글로벌 생명공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지난 6일 전남대의대 민정준 교수팀은 세균인 약독성 살모넬라 균주를 이용, 암 세포를 탐지하고, 암 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치료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공개했다.
민 교수팀은 “우리가 개발한 살모넬라균은 독성이 야생형 살모넬라보다 백만 배 이상 약화된 세균”이라며 “이 바이러스는 세포를 녹일 수 있는 단백질인 사이톨리신A(cytolysinA)를 암조직에서만 특이적으로 원할 때에만 만들 수 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재조합됐다”고 밝혔다.
세균 또는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스스로 복제하지 못하는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을 숙주 세포로 삼는다면 무한증식이 가능하며, 이 생명체를 완전히 감염시켜 독성을 전파하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런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세균과 바이러스는 전염병의 주범이자 보이지 않는 적이란 오명을 갖게 됐다.
그러나 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에 이은 21세기 첨단 유전체 공학의 발전은 이제 이 미생물들의 오명을 새로운 사명으로 바꾸고 있다. 유전체 공학에 의해 특정 유전자를 재조합시킨 세균과 바이러스를 벡터(운반체유전자)로의 둔갑시킬 수 있는 것. 암 환자의 몸에 이 바이러스 벡터가 주입되면, 암 세포를 찾아간 벡터는 암 세포에만 독성을 갖는 특정유전자를 발현, 암 세포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
암 세포를 찾아가 죽이는 바이러스 식중독의 대명사로 인간에게 매우 해로운 독성을 갖고 있는 살모넬라균은 원래는 무해한 세균이었다. 그런데 이 살모넬라균이 어떻게 강력한 독성을 갖게 됐을까?
지난 2009년 4월 미국 농업연구청(ARS)은 무해한 세균이었던 ‘살모넬라(Salmonella enteritidis) 균이 어떠한 진화적 경로를 통해 강한 독성을 갖는 병원균으로 바뀌게 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적 증거를 찾아냈다.
이 연구소의 '진 가드(Jean Gaurd)' 박사는 “살모넬라균은 다른 세균들과 마찬가지로 적정 조건이 주어질 때, 매 20분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번식을 한다”며 “이처럼 빠른 번식 속도로 인해 여러 가지 유전적 변종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즉, 이렇게 빠른 증식 상태에서 강한 세균들만이 살아남고, 여러 균주들 간의 대규모 DNA 교환을 통해 살모넬라 잡종 균주가 탄생하면서 독성이 강해졌다는 설명.
만약에 살모넬라균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실험쥐가 죽을 정도로 살모넬라균의 독성은 강력하다. 따라서 전남대의대 민 교수팀은 야생 살모넬라균으로부터 ‘spoT’와 ‘relA’ 유전자를 제거, 독성을 백만 배 이상 약화시킨 약독성 살모넬라 균주를 사용했다.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살모넬라균은 그람음성 막대 균으로 편모가 발달해 운동성이 활발하다. 이 편모 운동에 의해 세균은 좌우로 움직이면서 방향도 바꿀 수 있다. 이런 운동성에 의해 살모넬라균은 장내에 침투해 활발히 움직이면서 위장관 벽을 통과한 후, 장간 막 림프절(MLNs)과 비장을 포함하는 림프 조직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반면에 콜레라 균, 병원성 대장균 등과 같은 감염성 세균들은 독성은 강력하지만 장(腸) 세포에 침투할 수 있을 뿐, 간이나 비장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간과 비장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기관이다.
세균 또는 바이러스가 벡터가 되려면 인체의 면역반응을 자극, 항체를 생성한 다음에 벡터의 공격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살모넬라균은 림프 절을 통해 비장과 간에 침투, 전신 면역반응을 자극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렇게 벡터가 된 살모넬라균은 암 세포를 찾아가서 ‘세포용해 단백질(Cytolysin A)’을 분비 세포막을 녹여 암 세포를 죽인다. 지난 2003년 스웨덴 ‘우미아 대학(Umea University)’의 와이(Wai) 박사팀은 그람 음성 균에서 소포체를 이용, 단백질을 분비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 그해 10월 3일 세계적인 생명공학저널 ‘셀(Cell)’지에 실었다. 이 연구팀은 일부 그람 음성 균이 만드는 단백질의 분비과정을 연구한 결과, 이 단백질이 세포막에 구멍을 만들어 세포를 파괴하는 용혈성 단백질이란 사실을 알아낸 것. 그람 음성 균의 경우 두 개의 막을 가지고 있는데 바깥쪽 막의 외부는 동물에게 독성을 나타내는 당지질 또는 지질 다당류로 돼있다. 살모넬라균도 그람 음성 막대 균의 일종이다.
이 막으로부터 사이톨리신A(ClyA)가 들어있는 소포체가 떨어져 나와 직접 목표로 한 동물세포의 막과 융합, 독성 단백질을 동물 세포로 전달한다. 바이러스가 공생 및 기생관계에 있는 동식물과 상호작용을 하려면 숙주 세포나 조직으로 다양한 활성을 지닌 단백질을 분비, 감염시켜야 한다. 이러한 발견은 유전체 공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세균 바이러스는 표적치료제의 특효
세균 또는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은 인류에게 죽음의 전염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게놈 지도의 완성, 유전자 기술의 발전 등으로 21세기 들어 인간의 관심밖에 머물렀던 미생물들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생명공학계의 최대 연구과제중의 하나가 바로 미생물유전체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이다. 현재 유전체 염기서열분석자들은 인간에게 해로운 살모넬라 또는 비브리오균 등과 같은 혐기성 병원체와 같은 미생물들의 DNA 분석을 활발하게 시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경우, 56가지 박테리아와 시원세균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과학계에 새롭게 알려진 1,768개의 단백질 군을 찾아냈으며, 바이오치료에 쓰일 수 있는 새로운 효소를 발견하는 것을 미생물 유전체 연구의 핵심목표로 하고 있다.
이 지구상의 생물 중에는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들이 있다. 그중에 제일 숫자가 많은 미생물은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단세포 진핵생물 등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 미생물의 특성은 그 숫자만큼 다양하다.
섭씨 350∼400도나 되고 황화수소로 가득한 해저 열수분출공에 사는 미생물이 있는가 하면, 방사선에 쪼여도 살아나는 미생물도 있다. 인류보다 먼저 이 지구상에 출현한 미생물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아직 인간에겐 위협적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이제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밝혀내고 있다.
우리 옛말에 “독(毒)도 잘 쓰면 훌륭한 약이 된다.”란 말이 있다. 유전체공학의 발전으로 미생물을 완전히 다룰 수 있을 때, 그들은 오히려 인류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무서운 살모넬라 티피 균을 유전체공학으로 다시 디자인하면 훌륭한 암 표적치료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과거의 적을 미래의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10-0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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