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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2004-05-24

몸안의 자명종 ‘생체시계’…“몸이 먼저 안다” [국민일보 공동] 신희섭 KIST 학습기억현상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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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봄에 새 순이 돋고 가을에 낙엽을 흩날린다. 또 동면하는 동물들은 정확하게 봄이 되면 깨어난다. 이처럼 생명체에는 자연의 주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데,그 역할을 하는 것이 생체 시계이다. 사람의 몸 안에도 생체 시계가 있다. 어떤 생체시계이며,무슨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자.


◇생체 시계의 재조정으로 시차 적응

창 밖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이 활짝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이상하게 몸의 컨디션은 영 말이 아니다. 밤새 푹 잤는데도 졸음이 쏟아지는가 하면,식욕도 없고 온몸이 나른하다. 봄만 되면 찾아오는 춘곤증은 급격한 계절의 변화로 생체 리듬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밤이 짧아지면서 일조량이 변하고,기온이 올라가 사람 피부의 온도도 상승하게 된다. 이런 변화가 몸 안에 있는 생체 리듬을 교란시켜 춘곤증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를 생체 리듬과 다시 조정하고 튜닝하는 인체내 장치를 우리는 ‘생체 시계’라고 한다.


여자의 경우 달마다 나타나는 생리현상도 생체 시계가 담당한다. 또한 태아가 태어나는 과정도 난자라는 정지된 상황에서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체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인체의 생체 시계 중 가장 일반적이고 명확한 것이 ‘일주기(日周期) 시계’이다. 즉,하루 24시간을 주기로 해서 우리의 육체는 똑같은 현상을 반복하게 되는데,호르몬 분비, 체온, 수면,감성,인지 기능 등이 일주기 리듬을 보인다. 흔히 해외여행을 갔을 때 겪게 되는 시차 문제도 바로 일주기 생체 시계의 관성 때문이다. 여행지의 낮과 밤에 상관없이 우리 몸의 생체 시계는 출발지의 사이클을 그대로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시차에 적응하게 된다. 그것은 생체 시계가 차츰 그곳의 밤낮 사이클에 ‘시간 맞추기’를 해가기 때문이다. 봄이 지나면서 춘곤증이 점차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생체 시계는 시간을 다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일주기 시계의 조정은 햇빛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달 유전자 없애면 밤낮 구분 못해

눈이 햇빛이라는 정보를 읽으면,뇌에서 이를 받아들여 생체 시계를 관장하는 곳으로 보낸다. 그곳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교차상부핵(SCN ;Suprachiasmatic Nucleus)이다. SCN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들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면서 시계를 작동시킨다.


그러면 SCN에서 작동하는 생체 시계의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기에 우리 몸도 거기에 맞추어 같이 행동하게 되는 걸까? 그 비밀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PLCβ-4란 유전자이다. 지난해 필자를 포함한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밝혀진 실험 결과에 의하면,PLCβ-4를 없앤 쥐는 밤낮의 구분을 하지 못했다.


쥐는 야행성 동물이므로,정상적인 쥐는 햇빛이 전혀 들지않는 캄캄한 실험 조건에서도 밤에 높은 행동성을 보이고 낮에는 잠잠했다. 이는 쥐의 생체 시계가 밤과 낮의 구분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PLCβ-4를 없앤 쥐의 무리는 밤이건 낮이건 비슷한 행동성을 나타냈다. 조사 결과,PLCβ-4를 없앤 쥐에서도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정상적인 쥐처럼 SCN의 시스템은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곧 시계는 있는데 몸이 시계의 정보를 읽지 못하고 있는 현상으로서,PLCβ-4가 시계의 정보를 몸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아침형과 저녁형은 다양성의 차이

이처럼 생체 시계는 한번 저장되면 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정확하게 작동한다. 그러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처럼 사람마다 생체 리듬이 다른 것은 어째서일까?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된 사실은 없지만,저녁형 인간이라고 해서 완전히 야행성은 아니다.


즉,아침형과 저녁형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낮과 밤의 주기 안에 있는 다양성의 차이일 뿐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성장해도 사람마다 키가 다른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아침형과 저녁형은 타고난 유전적 차이와 자라온 성장 환경이 종합돼 나타나는 정신적인 기질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SCN 이외에도 거의 모든 장기와 조직,세포에 고유한 생체 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일주기 외에도 1년 주기,월주기,세포분열주기 등 주기도 다양하다.


세포 분열은 핵 안에 있는 염색체가 DNA 합성을 해서 두 개체로 나누어지는 과정을 밟는다. 각각의 장기와 조직 세포들은 성장이 멈추면 세포 분열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억제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세포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암세포이다. 즉,생체 시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암도 결국 세포의 주기 조절이 깨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처럼 생체 시계는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어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한 부분이 많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과정도 긴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생체시계이다. 따라서 노화에 이르는 생체 시계를 천천히 가게 하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즐거운 과학적 상상도 할 수 있다.


<과학기술연구원 학습기억현상연구단장>

약력-서울대 의대 졸업·미국 코넬대 유전학 박사·미국 MIT 생물학과 조교수·포항공대 생명공학연구소장


[정리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생체시계의 응용



인간의 생체시계는 수면 패턴, 체온 조절, 혈압 변화의 직접적인 조절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호르몬 분비량 조절에 관련된 내분비계와 면역 관련, 순환기계, 배설계 등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생체시계가 고장 나거나 혼란이 오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경우 수명, 계절적 우울증, 암, 간질환, 불면증, 치매 등의 노년질환 등 많은 의료 건강 관련 현상이 생체시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또한 생체시계의 혼란은 항공사고, 교통사고, 작업능률 저하 등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이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간의 수명에 관련된 생체시계 자체의 속도를 늦추거나 노화에 따른 생체시계 시스템의 고장을 늦춤으로써 노화를 지연할 수 있는 신물질이 출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식물의 경우에는 식물의 생산성 및 수확 시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개화기, 광합성, 기공 개폐 등이 생체시계의 조절을 받는다. 특히 식물의 개화 시기는 생체시계와 직접 연계되어 있어 생체시계의 고장이 곧바로 개화 시기의 이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생체시계를 조정하면, 인위적인 개화 시기의 조절도 가능해진다.



저작권자 2004-05-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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