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추석은 풍성한 먹거리로 가득한 명절이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잠시, 먹다가 남은 음식이 쌓이게 되면 추석이 끝나도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쉽다.
특히 송편과 같은 떡의 경우는 더 골치가 아프다. 대부분의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다시 조리하거나 데워먹으면 그만이지만, 떡은 쉽게 상하는데다가 냉장고에 보관하면 굳어버려져서 식감이 안 좋아 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이 굳지 않는 떡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떡 제조공정인 물리적 과정을 과학화
굳지 않는 떡은 기존의 떡 제조공정인 물리적인 과정을 과학화하여 인공적인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오래도록 말랑말랑하게 유지하도록 만든 것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떡은 하루만 지나도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지만, 굳지 않는 떡 기술을 적용하면 두 달이 넘도록 쫄깃함을 유지할 수 있다.
떡의 쫄깃함을 유지하기 위한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전통 떡을 만드는 단계인 떡메로 치는 과정을 과학화하여 원천기술을 확립한 것. 이른바 ‘펀칭 기법’과 ‘보습성 유지 기법’ 원리를 적용하여 굳지 않는 떡을 개발했다.
이런 떡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농진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의 한귀정 박사는 “시간과 강도, 그리고 원료를 섞어주는 각도 및 온도 등 네 가지 요소가 최적의 궁합을 이뤄 굳지 않는 떡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굳지 않는 떡 제조 기술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떡에 담겨있던 원리를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굳지 않는 떡 기술은 쌀 뿐만이 아니라 멥쌀과 찹쌀, 그리고 현미, 잡곡, 옥수수, 보리 등 모든 곡류에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효용성면에서 탁월한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어릴 때 보았던 떡메를 치는 강도에 따라 떡의 질감이 틀려지던 기억을 떠올렸고, 거기서 굳지 않는 떡의 힌트를 얻었다”라고 언급하며 “재료와 떡메 강도 등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1만 6000가지가 넘는 실험을 해야 했는데, 1000번 정도 했을 때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 것은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실험은 떡을 제조하고 나서 48시간이 지난 뒤 굳은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1000여 번의 도전 끝에 굳지 않는 떡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재현성을 입증하기 위한 48시간의 추가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굳지 않는 떡의 원천기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박사는 국내외 특허를 획득했고 수백 건의 기술이전을 성사시켰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지면서 관련 기술은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 이전되어 농진청의 특허 중 처음으로 해외에 이전된 사례로 등록됐다.
떡이 빵에 밀리는 이유는 저장성
현재 국내 떡집은 1만 8000여개고, 빵집 개수는 1만 1000여개가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떡 시장은 약 1조 4000억 원 정도인데 반해, 빵 시장은 약 3조 6000억 원 수준으로서 매장 수에 비해 매출 격차가 상당히 큰 편이다.
한 박사는 이처럼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떡이, 불과 60여 년 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빵보다 발전하지 못한 근본 원인을 ‘저장성’에서 찾았다. 빵은 하루부터 한 달까지 유통기간이 다양하지만, 떡의 경우는 하루만 지나도 굳는 특성 때문에 당일 판매로 그칠 수밖에 없어 떡 산업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진청에서 개발한 ‘굳지 않는 떡’ 제조기술로 인해 이러한 국내 떡 산업의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특히 떡 관련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 가공업체까지 기술이전을 요청하여 이를 제품에 반영하고 있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굳지 않는 떡 제조기술이 대기업체에 이전되면서 생계형 떡 생산업체들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한 과장은 “떡 산업의 혁신을 통한 수요 확대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쌀 소비 증대에 따른 식량안보도 가능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문제는 보존성이다. 시간이 지나도 굳지 않는다고 하니까 상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굳지 않는 떡은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는 식품이기 때문에 보관 기간은 실온에서 2~3일 정도다.
또한 냉장 상태에서는 4~7일이고 냉동을 한다 해도 2개월~6개월에 불과하다. 따라서 굳지 않는 떡 생산과 위생 안전성을 고려한 새로운 포장방법이 개발된다면 유통기한을 훨씬 늘릴 수 있게 됨으로써 그만큼 안정적인 수요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한 과장의 설명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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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0-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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