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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0-06-17

멀티태스킹은 ‘환상’… 그만한 대가 치러 IT기기 못 내려놓는 ‘정보 중독’의 피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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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낸 이래, IT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생활 곳곳에 파고들었다. 이제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내려받고, 전국 어디서나 휴대폰을 이용해 검색을 하고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휴대용 게임기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유행이다. 책상 위에 2대의 모니터를 띄우는 것은 기본이고,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2대씩 가지고 다니며 인터넷에 24시간 접속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게임에 빠진 남자친구 때문에 PC방에서 데이트를 하는 학생 커플이 생기고, 잠시라도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해 하는 ‘정보 중독자(infomania)’가 늘어나고 있다.

최신 기술에 대한 남녀의 시각차도 크다. 남자들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모습이 ‘섹시’할 거라 생각하지만 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 7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 응답자들의 74.5%가 ‘데이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남자는 별로’라고 답했다. ‘세련돼 보인다’고 대답한 여성은 15.1%에 불과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NYT)는 지난 6일 특집기사 ‘IT기기에 빠지면 정신적 대가 치른다(Hooked on Gadgets, and Paying a Mental Price)’를 통해 동시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다루는 ‘멀티태스킹’이 겉으로는 효율적이지만 실제로는 뇌신경에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을 지적했다.

멀티태스킹? 사실은 일종의 '정보 중독' 증세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코드 캠벨(Kord Campbell) 씨의 책상은 갖가지 IT기기가 가득하다. 왼편의 모니터에는 트위터와 채팅 창이, 중간 모니터에는 프로그래밍 창과 메신저가, 오른편 모니터에는 이메일, 일정, 웹브라우저 등이 켜져 있다. 한켠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놓여 있다.

남편의 영향으로 아내 브렌다(Brenda)와 아들 코너(Connor), 딸 릴리(Lilly)도 노트북, 아이패드, MP3 플레이어, 휴대용 DVD 플레이어 등 각자 여러 대의 기기를 들고 하루를 보낸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도 정겨운 대화 대신에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멀티태스킹에 빠진 캠벨 가족은 정말로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 많은 양의 정보를 계속 다루다 보면 사고체계와 행동방식이 바뀔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매 순간 정보를 확인하는 버릇은 원초적인 수준의 기회와 위협을 처리하는 데 관계된 도파민 호르몬의 분비를 유도해 ‘중독’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으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으면 이번에는 지루함이 밀려들며 금단증세가 나타난다. 때문에 정보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지게 된다. 산만함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다. 운전 중의 휴대폰 사용이 사고를 유발하듯, 멀티태스킹이라는 ‘환상’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저하시키고 인간적인 생활을 파괴한다.

멀티태스킹 하지 않을 때도 악영향 남아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이른바 ‘멀티태스커(multitasker)’들은 쓸데없는 정보를 차단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느꼈으며 그로 인해 스트레스 지수도 높게 나타났다.

멀티태스킹이 끝나도 집중력은 향상되지 않았으며, 생각이 지속되지 못하고 짧게 끊기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컴퓨터와 뇌의 연결을 끊어도 피해가 고스란히 남는 셈이다.

세계적인 뇌과학자이며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 National Institute of Drug Abuse) 소장인 노라 볼코우(Nora Volkow) 박사는 “최신 IT기술로 인해 뇌 신경의 연결망이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이 변화하면서 뇌의 기능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의 뇌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게 신경망이 재구성되고,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시각적 통찰력이 발달하는 식이다.

핸드폰과 컴퓨터는 사람들의 활동 범위를 넓혀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켰고, 좋든 싫든 전자기기와 미디어의 사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2008년에 사람들이 처리한 정보의 양은 50년 전인 1960년에 비해 3배나 늘어났으며, 최근 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이 1시간 동안 이메일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윈도 창을 전환한 횟수가 37번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애덤 개절리(Adam Gazzaley) 교수는 “역사상 가장 현저한 환경변화는 최근 시작된 인간과 기기 간의 ‘끝없는 상호작용’”이라며, “자신과 큰 관련도 없는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험에 따라 재구성되는 뇌의 신경망

캠벨 씨는 오클라호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농구, 데이트를 병행하며 어느 정도는 균형 잡힌 생활을 했다. 이메일에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아내 브렌다는 그 시절을 “대화를 많이 했다”고 회상한다.

1996년 인터넷 벤처회사를 차린 후 130만 달러를 받고 검색엔진 룩스마트(LookSmart)에 매각하기까지, 캠벨 씨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모든 정보를 머리 속에 넣으려 하면서 정보 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외계인이 착륙한다면 그 소식을 제일 먼저 접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최신 뉴스에 매달린다.

정보 중독 증세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에 하루 평균 5시간에 불과하던 정보 이용시간이 지금은 12시간에 달한다. 시간관리 프로그램 제작사인 레스큐타임즈(RescuTimes)는 “컴퓨터 이용자가 하루에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평균 40개”라고 밝힌 바 있다.

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변화한다. 어떠한 경험을 하고 어떠한 버릇을 가지느냐에 따라 뇌 신경망이 연결과 단절, 재연결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멀티태스킹을 연구 중인 에얄 오피르(Eyal Ophir)는 ‘과도한 멀티태스킹이 뇌의 기능을 변화시킨다’는 가정 하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정보부에서 멀티태스킹의 ‘달인’들과 7년동안 근무하며, 자신도 연습이나 치료를 통해 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멀티태스킹은 판단 속도 저하시켜

오피르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과도한 멀티태스커’와 ‘일반인’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 앞에 앉혔다. 화면에 빨간 사각형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 다시 나타나면, 자리가 바뀌었는지를 대답하는 단순한 실험이었다.

두 번째 실험이 시작되면서 차이가 나타났다. ‘파란 사각형은 무시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빨간 사각형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 느려진 것이다. 쓸데 없는 정보에 속하는 파란 사각형을 걸러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커들은 자음과 모음을 구별한다든가 홀수와 짝수를 나누는 것처럼 ‘여러 작업을 전환해가며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이 길었다. “멀티태스킹은 여러 정보를 적절히 배분해 처리하므로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팀은 색다른 결과를 발표했다. “멀티태스커들은 ‘오래됐지만 귀중한 정보’보다는 무조건 ‘새로운 정보’만을 찾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뇌에는 사령탑 역할을 하며 ‘집중 여부’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부위와, 시각과 청각 등 ‘감각적인 자극에 민감한’ 부위가 구분되어 있다. 하위 뇌(lower brain)라 불리는 민감한 부위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그 자극은 사령부에 전달되어 의사결정을 돕는다.

하위 뇌가 전달하는 자극이 강렬할수록 인간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린다. 주변에 사자가 있다면 다른 모든 기능을 멈추고 사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인다. 위험요소를 회피하려는 진화의 결과다.

클리포드 내스(Clifford Nass) 스탠포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고양이가 개박하풀 냄새에 흥분하는 것처럼 인간의 흥미를 끄는 특정 요소들이 존재한다”면서, “그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멀티태스킹 실험에서 판단 속도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난 ‘지체 효과(lingering effect)’가 평소에도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라고 경고했다.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지면 일상생활에서도 산만하고 불안한 증세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처럼 추앙받는 시대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연구는 멀티태스킹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계속)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6-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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