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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2-11-22

머리 쓰지 않아도 수학문제 풀린다 무의식만으로도 독서·계산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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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독서나 수학 같은 다단계 추론 작업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ScienceTimes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주목하라”,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훈계가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학생은 누구보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무의식의 힘만으로도 독서와 계산 등의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연구진은 학생 270명을 대상으로 반복적인 실험을 거친 결과 “의식을 집중하지 않아도 무의식만으로 문장을 읽거나 수학문제를 푸는 일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다단계 추론 작업에 성공함으로써 뇌에 관한 기존 이론을 재정비해야 할 정도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미국 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무의식에 의한 독서와 계산(Reading and doing arithmetic nonconsciously)’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무의식은 위험, 부정, 비정상 요소를 더 빨리 감지해

인간의 정신은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이성이나 논리 등 우리가 집중을 통해 수행하는 능력은 의식에 속해 있다. 여러 단어가 만나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문장이나 표현을 이해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숫자를 더하거나 빼고 곱하고 나누는 계산도 의식을 통한 단계적인 추론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히브리대 심리학과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의식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독서나 수학과 같은 다단계 추론 과정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무의식이 의식을 대신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란 하신(Ran Hassin)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대학생 270명을 모집하고, 정신물리학 분야의 최첨단 기법인 ‘연속영상 인식 억제(CFS, Continuous Flash Suppression)’를 이용해 실험을 실시했다.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의 역할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오른쪽 눈에는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은 색색의 이미지가 1초에 10번씩 빠르게 바뀌며 연속적으로 노출시킨다. 동시에 왼쪽 눈에는 여러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표현이나 숫자로 된 계산식을 보여주되 0.7초에 걸쳐 천천히 등장시킨다. 피실험자가 문장과 계산식을 발견하고 읽어내면 화면에서 사라지게 설정해 놓았다.

이 방식은 오른쪽 눈에 비친 이미지가 계속 바뀌면 우리의 의식은 변화에 집중하게 되고, 왼쪽 눈에 비친 문장이나 계산식은 감지해내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오른쪽 눈은 의식의 영역, 왼쪽 눈은 무의식의 영역에 연결된 셈이다.

▲ 오른쪽 눈에는 추상화 같은 이미지를 1초에 10번씩 바뀌게 보여주고 왼쪽 눈에는 문장이나 계산식을 보여주면, 이미지에 집중하느라 글자를 의식할 수 없어 왼쪽 눈은 무의식에 연결된다. ⓒPNAS

우선 단어를 인지하는 실험을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했다. 1번 그룹은 왼쪽 눈에 ‘커피를 다리미로 다렸다’처럼 의미상 관련이 없는 단어들로 이뤄진 문장을, 2번 그룹은 ‘옷을 다리미로 다렸다’처럼 의미상 관련이 있는 단어로 이뤄진 문장을 보여줬다. 3번의 a와 b 그룹은 대조군으로서 ‘커피를 내렸다’, ‘옷을 다렸다’처럼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문장을 보여줬다. 4번의 a와 b 그룹은 ‘인신매매’ 등 부정적인 표현들을 위주로 보여줬다.

그러자 ‘옷을 다리미로 다렸다’ 같은 비정상적인 문장이나 ‘인신매매’ 같은 부정적인 표현을 보여준 2번과 4번 그룹이 정상적인 문장을 보여준 3번 그룹보다 왼쪽 눈에 나타난 표현을 더 빨리 인지했다.

이 실험에서 왼쪽 눈은 무의식이 담당하므로,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새로운 의미를 띠는 문장 표현을 의식적인 집중 없이도 감지하고 추론한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인간의 무의식은 부정적인 표현이 풍기는 위험요소나 비정상적인 상황을 더 빨리 감지한다는 결과를 보여준 셈이다.

문장뿐만 아니라 숫자 계산식도 무의식으로 가능해

이어진 실험에서는 변화하는 이미지가 오른쪽 눈에 보여지는 동안 숫자를 이용한 계산식을 왼쪽 눈에 노출시켰다. 한쪽 그룹은 ‘8+7=?’이나 ‘9+3+4=?’처럼 2~3개의 숫자로 이뤄진 계산식을 1.7에서 2초에 걸쳐서 서서히 등장하거나 곧바로게 했다. 피실험자들은 언제든지 문제를 읽고 답까지 이어서 말할 수 있었다.

화면에 서서히 등장시키든 지연시키든 상관 없이 정답인 ‘2’와 ‘16’을 대답하는 속도는 비슷했다. 계산식이 너무 쉬운가 싶어 지연시간을 1초에서 1.3초 정도로 줄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무 숫자나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을 피하기 위해 정답만을 엄격하게 골라내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숫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순간에도 무의식은 이미 계산을 끝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히브리대 발표자료에서 “이번 실험은 인간이 무의식만으로도 복잡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며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기존 이론과는 맞지 않는 결과”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하신 박사는 “인간의 정신을 다룬 현재의 인지신경과학 이론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세기에 풀어야 할 가장 큰 과학적 숙제인 ‘인간의 의식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라는 의문을 풀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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