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로봇과 사이버네틱스의 원조(2)

[과학기술 넘나들기] (217) 인간과의 체스 대결

컴퓨터 및 인공지능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나 수단 중에서, 인간을 상대로 체스 등의 보드게임을 해 보는 것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적인 컴퓨터가 선보이며 발전하던 무렵에, 선구적인 연구자들은 서양 장기인 체스(Chess)를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도 함께 개발하곤 하였다. 앨런 튜링(Alan Turing) 역시 컴퓨터를 통한 지능형 체스게임을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

또한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인간과 기계에서 제어와 통신 등을 통합적으로 정립하는 새로운 학문으로서 사이버네틱스를 창시한 기념비적 저서인 ‘사이버네틱스 Cybernetics: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Animal and Machine (1948)’에서 체스 프로그램의 지능적 구현 등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

고전적인 SF 명작 영화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에서도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9000이 우주선의 승무원과 체스를 두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1997년에 이르러 드디어 인간의 체스 실력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IBM이 8년에 걸쳐서 제작했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10여 년 간 체스 세계챔피언으로 군림해왔던 러시아 체스 명인과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2016년에는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예상과 달리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체스에 이어 인간을 능가하기 극히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었던 바둑에서마저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게 되었다.

아지브(Ajeeb the Wonderful)라고 불린 체스 자동인형 ⓒ 위키미디어

그런데 현대적인 컴퓨터가 선보이기 오래전부터, 체스를 스스로 둘 줄 아는 자동인형, 즉 오토마톤(Automaton)이 사람과 체스 대결을 벌이고 심지어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이들의 정체는 대부분 속임수나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치 외부에서 에너지나 동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장치인 영구기관(永久機關; Perpetual Mobile)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유럽 각국의 왕과 귀족, 부자 등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돈을 뜯어냈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1770년대의 ’터키인(The Turk)‘이라 불린 체스 자동인형은 이런 속임수의 첫 번째 사례일 듯한데, 기계 안의 공간에 사람이 숨어서 상대방과 체스를 두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유명했던 체스 자동인형으로는 1868년에 영국 왕립 폴리테크닉 연구소(Royal Polytechnical Institute)에서 발표한 ’아지브(Ajeeb the Wonderful)‘가 있다. 페르시아인 또는 아랍인의 복장을 한 자동인형이 체스판에서 손을 움직이면서 체스를 두는 듯한 아지브(Ajeeb)는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멋지고 경이롭다‘는 뜻이라고 한다.

체스 오토마톤 아지브는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유명 소설가였던 오 헨리(O. Henry) 등과도 체스 대결을 벌여서 수많은 관중을 불러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에 인간을 능가하거나 대등하게 체스를 둘 만한 딥블루(Deep blue)같은 자동인형이 존재했을 리는 전혀 없고, 이 역시 체스 최고수가 인형의 내부나 뒤에 숨어서 조종하면서 체스를 두는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인간을 상대로 체스를 자동으로 두기는커녕, 상대방의 체스 말이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퀘베도가 발명한 자동 체스 기계 엘 아헤드레시스타(El Ajedrecista) ⓒ Olea

그러나 현대적인 컴퓨터보다 앞서서 선보였던 체스 기계들이 모두 다 속임수였던 것은 아니다. 1912년에 제작된 엘 아헤드레시스타(El Ajedrecista)는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체스를 어느 정도 둘 수 있는 최초의 체스 기계로 꼽힌다. El Ajedrecista는 스페인어로 ’체스 두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영어로 하면 ’The Chess Player‘인 셈이다.

엘 아헤드레시스타를 발명한 사람은 스페인의 공학자이자 수학자인 레오나르도 토레스 퀘베도(Leonardo Torres y Quevedo)이다. 그는 무선 리모컨의 원조 격인 텔레키노(Telekine)를 발명하여 항구에 정박한 배를 움직이는 시연에 성공하였고, 비행선에 대해서도 선구적으로 연구한 바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개발하여 스페인 과학기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퀘베도는 1914년에 체스 기계 엘 아헤드레시스타를 프랑스의 파리 대학교에서 공개하였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기로 평가된다. 물론 이 기계는 체스게임 전체를 사람과 온전하게 둘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몇 개의 체스 말로 상대방의 킹을 잡는, 즉 체크메이트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튼 사람을 상대하여 자동으로 체스를 두는 기계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체크메이트 등의 상태를 전구로 표시할 수 있었으며, 상대방이 불법적인 행위나 반칙을 하면 경고의 신호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꼽히는 에니악(ENIAC)이 완성된 것이 1946년이고, 그보다 더 앞선 원조로 언급되는 앨런 튜링의 콜로서스나 콘라트 추제(Konrad Zuse)의 발명품 역시 1940년대 초반인 것을 고려한다면, 훨씬 앞선 시대에 나름의 알고리듬을 지닌 컴퓨터 게임기와 유사한 체스 기계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우측)에게 체스 기계를 선보이는 곤살로(1951년) ⓒ 위키미디어

퀘베도의 아들인 곤살로(Gonzalo)는 1920년에 부친의 발명품을 개선하여 보드 아래의 전자석에 의해 체스 말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한 체스 기계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훗날인 1951년 파리 사이버네틱스 회의에서 노버트 위너에게 개선된 엘 아헤드레시스타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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