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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4-04-30

랩온어칩, 어디서든 분석 OK [인터뷰]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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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칩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임신진단용 키트처럼 물 등의 액체가 종이를 타고 올라감으로써 일정한 진단을 내려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집에서 간편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진단해 주기 때문에 연구자들에 의해 상당부분 연구되고 있다.

작은 소자에 화학․물리․생물학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확인하는 랩온어칩(Lab-on-a chip)은 대부분 미세한 통로를 통해 유체를 연속적으로 흐르게 한다. 이는 미세 유체칩(microfluidic chip)으로도 불리며 연속적인 유체의 흐름을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미세유체칩은 유체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속적인 액체 공급을 위한 부가 장비가 많이 필요했고 신속한 분석이 필요한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칩 제작에 필요한 공정장비가 있어야 유체칩을 생산할 수 있고 제작비 또한 많이 들어가므로 이러한 랩온어칩이 필요한 현장에서는 실제 적용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 신관우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 ⓒ 신관우

전기로 구동되는 능동형 종이칩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전기로 구동되는 능동형 종이칩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신관우 서강대 화학과 교수팀과 권오선 교수, 충남대학교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향후 가정용 잉크젯 프린팅으로 종이에 병원균이나 오염물질을 탐지할 수 있는 키트를 인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최근 병원균의 신속한 탐지가 필요한 경우 피나 타액 혹은 오염수 등의 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랩온어칩 구현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종이전기칩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평범한 종이로 다양한 센싱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정기술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종이칩 연구에 있어 해외에서는 종이의 흡수성을 이용해 다양한 바이오센서들을 구현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종이나 플라스틱처럼 쉽게 제작하고 폐기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 칩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아프리카의 질병 검진이나 환경 오염원 분석에 활용되고자 다양한 ‘적정기술’ 차원에서 고려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러한 원천기술이 구현된 바 없다.

“기존의 유체칩은 시료가 정해진 방향과 트랙을 적시면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수동형이었다면 이번에 저희가 개발한 능동형 종이칩은 전기를 인가해 한 방울 한 방울씩 원하는 위치와 방향으로 실험자가 원하는 반응시간과 반응조건을 충족하면서 이동하도록 제어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유체칩은 수동적으로 이동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반응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신관우 교수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능동적인 방법을 연구했다.

“기존에는 어느 누구도 종이에 전기적인 기능을 부여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종이는 자체가 부드럽고 휘어지며 물을 흡수할 수 있는 기능과 쉽게 프린트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많이 강조됐어요. 하지만 전기배선을 하면 훌륭한 전도성 기질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됐어요. 때문에 그동안 대부분의 잉크젯용 전도성 잉크들은 투명전극이나 플라스틱표면에 코팅이 가능한 금속성 잉크 혹은 유기용매 잉크에 집중했지 종이에 출력하는 수용성 잉크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 않았죠.

작년, 종이에 손쉽게 프린팅 할 수 있는 전도성 잉크를 만들었을 때만해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몰랐습니다. 지금은 해당 잉크를 이용해 유체칩 뿐 아니라 간단한 전기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배선, 종이 배터리, 종이 태양 전지 등 아무도 종이로 하지 못했던 분야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종이 전자 디바이스 분야를 우리가 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죠.”

신관우 교수팀은 전도성 잉크를 이용해 혈액 같은 미량의 물방울을 일반 인쇄용지 같은 종이 위에서 전기로 구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물방울의 이동시간과 이동방향 및 반응시간 등을 제어한 종이칩(Paper Electronic Chip)을 시연했다.

“저희 연구팀은 전도성 잉크로 카본나노튜브를 선택했습니다. 상업화된 모든 잉크젯 잉크는 금속잉크입니다. 금속은 자연계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전도체지만 나노 단위의 금속입자를 물에 분산시키기 어렵고 표면에 도포한 후에는 반드시 고온 열처리를 해야 전도도가 부가되죠.

반면 카본나노튜브는 열처리가 필요 없고 바로 전도도를 나타낼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물에서 분산도가 떨어져 뭉치게 되고 결국 잉크젯의 노즐을 막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새로운 분산기술을 찾아내게 됐고 현 카본나노튜브 잉크젯출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도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몇 달 동안의 안정성테스트에서도 전혀 노즐을 막는 경우가 없는, 즉시 상업화할 수 있는 잉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타임> 지 종이 뜯어서 실험… 성공적 결과

잉크젯프린팅을 이용한 종이칩 제작방법과 재활용된 잡지표면에 제작된 종이칩 ⓒ 한국연구재단
잉크젯프린팅을 이용한 종이칩 제작방법과 재활용된 잡지표면에 제작된 종이칩 ⓒ 한국연구재단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화학반응들은 1:1 혹은 1:2 등의 정량적인 비례 비율로 반응이 진행된다. 기존의 연속적인 유체 흐름으로 제어되는 반응은 이러한 정량적 비율로 진행되는 반응들, 예를 들면 나노 입자의 합성과 항원항체반응, 물질의 정량 분석 등에 활용되기 어렵다.

“물론 기존의 실리콘이나 유리기판에 이러한 디지털 유체칩은 그 개념이 이미 만들어져 있어요. 반도체공정을 통해 이러한 디지털 유체칩이 만들어져 있는 거죠. 문제는 이러한 유체칩은 제작이 쉬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실용화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전기적 패턴을 실험실이나 가정에서 제작할 수 있도록 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범용기술로 확산시키고자 가정용 잉크젯에 프린팅이 가능한 전도성 잉크의 개발에 먼저 착수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액체 방울을 전기로 제어할 수 있는 종이칩을 개발하게 됐죠.”

이번 연구는 가정 등에서 다양한 종이를 갖고 간편한 진단용 키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신관우 교수팀은 실험 도중 오래된 <타임(TIME)> 지를 뜯어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매우 성공적인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전도성 잉크를 확보하게 된 후 실험 진행은 생각보다 빠른 편이었어요. 이번 연구결과가 가정용 프린터를 이용해 재활용 종이 위에 고도의 정밀한 종이 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연하려고 오래된 <타임(TIME)> 지의 한두 페이지를 뜯어서 실험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결과가 생각보다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 <타임(TIME)>지 위의 결과를 논문의 그림으로 제출했어요. 많은 호평을 받아 최종 게재 승인을 받았죠.

재미있는 일은 저희가 <타임(TIME)> 지 로고에 대산 사용허가를 받지 않았던 거예요. 그것을 받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연구가 <타임(TIME)>지의 내용을 전제한 게 아님에도, 로고 사용권을 확보해야 했죠. 당시에는 이러한 규정이 좀 아이러니 했지만 결국 저희 연구의 범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 계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해외 사이트에서 저희 연구를 관심 있게 주목하고 있죠.”

신관우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기존 마이크로유체 소자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신관우 교수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도약연구과제의 핵심내용은 ‘인공세포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비눗방울처럼 생긴 인공세포막 구조가 기존의 마이크로유체칩에서 그 유속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자꾸 터졌고 이러한 압력을 사용하지 않고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에서 전기구동 디지털 유체칩을 고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종이에 성공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실용화 단계로 바로 들어가게 됐다.

신 교수는 해당 연구가 앞으로 아프리카 등지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부터 매년 서강대학교의 자연과학부교수님들과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강의봉사를 합니다. 자원이 부족한 개도국에 자주 전염병과 물로 인한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질병 확산을 막으려면 질병을 손쉽게 진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늘 절감해요.

선진국에서 개발된 대부분의 현장측정용 유체칩들이 기존의 기술보다 획기적으로 장치를 단순화시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작할 현지 기술이나 소자를 운영할 기술이 부족해 현장에서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종이칩은 현장에서 간단히 출력하는 것만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인터넷으로 패턴을 전송해주면 그것을 출력해 활용할 수 있죠.”

이번 연구는 누구나 출력하고 제작할 수 있는 전기구동 종이칩을 구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가장 친숙한 소재로 첨단 분야의 기술을 접목했고 관련분야를 이끌어 나갈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연히 기술을 찾아냈다면 이제는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목적지향적인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전도성 잉크를 상업화하거나 기술이전을 할 수 있도록 직접 회사를 설립할 계획도 있어요. 특허로 확보된 진단키트를 올해 중에 논문으로 선보이고 적정기술로 확보해 생활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공익기술로 일조하고 싶습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4-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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