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 물고기, 박테리아는 종종 그룹을 이루거나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이런 집단행동(collective behaviour)이 가능하려면 모든 그룹 구성원들이 지속적이며 상호보완적으로 무리의 움직임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이 이루어지려면 환경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이 따라야 한다. 그룹 안에서 각 구성원들에게 주어지는 특정한 환경 자극은 눈과 귀로 들리는 광학 및 음향정보를 비롯해 공기나 물의 유동 저항이나 화학 메신저 같은 여러 요소가 있다.
그런데 독일 콘스탄츠대 물리학자들은 안정된 그룹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복잡한 환경 자극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몇 가지 간단한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먼 거리에 대한 전방 시각 인지력과, 인지된 그룹 개체 수에 따른 속도 조절 등이 그것이다.
연구팀은 인공 미세유영자(microswimmers)를 만들어 실험을 실시한 뒤 이같은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근 호에 발표했다. [관련 동영상1][관련 동영상2]
이 발견은 집단 현상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자율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단 행동의 방향성과 끌림
소규모로 무리를 짓거나 그룹으로 모이는 능력은 개체들이 포식자를 피하거나 먹이 찾기 혹은 먼 거리를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이다.
그러면 이런 무리 짓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먼저 개체가 자신의 환경 안에서 어떤 정보를 인지하는가, 그리고 이런 환경 자극에 반응해 자신의 움직임을 어떻게 적응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움직이는 물질을 기술하는데 사용되는 수학 모델로 비체크 모델(Vicsek model)이란 게 있다. 이 비체크 모델은 개개의 집단 구성원이 주변 개체들의 운동 방향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 방향을 조정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그룹 구성원 간에 끌림(attraction)이 있어야 한다는 것. 방향성과 끌림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지 않으면 무리는 불안정해져서 흩어져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간단하지만 강력한 규칙
콘스탄츠대 물리학과 클레멘스 베힝거(Clemens Bechinger) 교수팀은 이번 실험에서 개체들이 자발적으로 안정된 그룹을 형성하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규칙을 발견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무리를 이루는 개체들은 많은 생물체의 기본 능력인 전방 원거리 시각 인지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각 개체들은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동료들의 숫자를 판단해, 이 숫자가 특정 임곗값에 도달하면 개체는 앞으로 유영하기 시작하고, 수가 못 미치면 움직임은 완전히 무작위가 된다. 여기서 개체는 이웃 동료의 정확한 위치를 식별할 필요가 없고 단순히 시야 안에서 지각만 하면 된다.
인공 생물체로 무리 형성 관찰
연구팀은 실제 살아있는 생물체를 이용해 실험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신 액체에서 떠다닐 수 있는 인공 미세유영자를 제작해 실험에 활용했다. 이 미세유영자들은 한 면에 얇은 탄소층이 입혀진 직경 수 마이크로미터짜리 유리 입자로 만들어졌다.
집속된 레이저 빛을 비추면 탄소가 빛을 흡수해 유리 입자가 불균등하게 가열된다. 여기서 생긴 온도 구배가 유리구슬 표면에서 유체 흐름을 생성하게 되고, 이 구슬들은 박테리아처럼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이 상황은 물을 밀어내 배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선박의 회전 프로펠러와 유사하다.
연구팀은 미세유영자가 시야를 가진 것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로 모든 유리입자의 위치와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이를 통해 유리구슬의 시야와 상응하는 고정된 각도 안에 있는 이웃 유리구슬 수를 판단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유리구슬 수가 일정 임곗값을 넘어가면 레이저 집속 빔을 각각의 구슬에 잠깐 비추어 유영 운동을 지속하게 했다. 그러나 구슬 수가 임곗값 아래로 유지되면 해당 구슬에는 빛을 비추지 않고, 그에 따라 구슬들은 방향 없이 무작위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 과정은 1초에 여러 차례 수행되기 때문에 각각의 미세유영자들은 무리 안에 있는 물고기처럼 아주 작은 환경 변화에도 역동적이며 지속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통해 유리구슬들이 자발적으로 인공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관찰했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집단 행동 유추
연구팀은 이런 ‘인공 생명체(artificial organisms)’를 활용해 개별 그룹 구성원들이 자신의 환경 안에서 지각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각의 변화가 이들 집단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시야 혹은 지각의 임곗값을 변경하면 각각의 그룹 형성도와 응집도가 바뀌게 된다. 연구팀은 유리 입자가 초식동물처럼 넓은 시야를 갖도록 만들었고, 반응의 한계를 낮출 때만 이들이 함께 머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초식동물들은 보호그룹 안에서 머물 필요가 있을 때 서로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자신들의 간단한 모델을 이용해 포식자들이 좁은 시야를 통해서 어떻게 먼 거리에 있는 먹이의 존재를 탐지할 수 있는가도 설명했다.
대규모 제어시스템에 활용 가능
또 다른 중요한 연구 결과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개체들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속도 방향을 조정하거나 인접 동료의 속도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제어시스템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엄청나게 유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에는 소형 센서와 인지를 위한 자원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또한 미래의 응용분야, 예를 들면 계산능력이 제한된 수백만개의 마이크로 자율 로봇이 동시에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임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동을 조직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들은 물고기 떼가 포식자들을 성공적으로 회피하는 것과 같이, 그룹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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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4-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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