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이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다

흑색종 환자 유전자 실험…돌연변이 아닌 정상 유전자도 암 전이 촉진

암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이 보여도 종종 전이돼 신체 다른 부위로 퍼지곤 한다.

의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종양 세포 안에서 발생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이같이 치명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런 돌연변이가 아닌 기존의 유전자도 암 전이를 촉진할 수 있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미국 록펠러대 연구팀은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25일 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출생 시 타고 나는 유전체 안의 단일 유전자 차이가 피부암의 하나인 흑색종의 진행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이런 유전적 변이가 다른 유형의 암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구팀은 종양에 있는 면역세포를 분석하고 유형별로 그룹화해서 ApoE4 유전자를 가진 쥐들에게 더 많은 항암(cancer-fighting) 세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Elizabeth and Vincent Meyer Laboratory of Systems Cancer Biology at The Rockefeller University

연구를 이끈 소하일 타바조이(Sohail Tavazoie) 부교수(암 생물학)는 “환자들은 종종 ‘나는 왜 이렇게 운이 나쁠까?’ ‘왜 암이 퍼졌을까’ 자문하곤 한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타바조이 교수는 이번 발견이 암 전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환자가 직면한 위험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치료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 전이의 미스터리

암 전이는 암세포가 원래의 조직에서 빠져나와 다른 부위에 새로운 종양을 생성할 때 발생한다. 암에 의한 사망은 대부분 이런 전이로 인해 초래된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정상 세포 내부의 돌연변이에 따라 처음 나타난 암세포들이, 추가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이동 능력을 얻는 것으로 의심해 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전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유전적 변화를 아직 찾지 못했다.

‘네이처 메디신’ 25일 자에 발표된 논문. ⓒ SPRINGER NATURE

타바조이 교수팀은 이전 연구에서 APOE라 불리는 유전자를 식별해 낸 적이 있다. 암이 발생하기 전 모든 신체 세포의 DNA에 존재하는 이 유전자는 흑색종(melanoma)의 확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유전자는 암세포가 전이를 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많은 과정들, 즉 혈관 생성, 건강한 조직으로의 침투, 면역세포 공격에 대한 방어 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그러나 인체는 ApoE의 세 가지 버전인 ApoE2, ApoE3, ApoE4 가운데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다. 타바조이 연구실의 벤자민 오스텐도르프(Benjamin Ostendorf) 박사는 이 변이체들이 왜 사람마다 흑색종이 다르게 진행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오스텐도르프 박사팀은 각 버전의 유전자 중 하나를 보유한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poE4를 가진 쥐들의 종양 크기가 가장 작고, 적게 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ApoE4가 종양 세포에 대한 면역반응 향상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ApoE 버전으로 밝혀졌다.

다른 변이체를 가진 쥐들과 비교했을 때 ApoE4를 보유한 쥐들은 종양 세포의 혈관을 축소시키고 흑색종과 싸우는데 동원되는 T세포도 더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스텐도르프 박사는 “ApoE 변이체의 영향력에 차이가 나는 것은 변이체들이 면역시스템의 공격을 조절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활용된 흑색종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내는 멜라닌 세포가 악성화돼 생기는 피부암의 일종이다. ⓒ Wikimedia / Weiss, Sarah 외

더 나은 치료를 향해

이번 연구에서는 300명 이상의 흑색종 환자 유전 데이터를 쥐 실험에 반영했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ApoE4 유전자를 가진 환자들이 가장 오래 생존한 반면, ApoE2를 가진 사람들의 생존기간이 가장 짧았다.

이 같은 연관성은 치료 의사들이 환자들의 유전자를 살펴보고 암 진행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또한 치료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흑색종 환자들은 종종 암과 싸우는 자신의 면역 시스템을 북돋는 치료를 받는다. 이번 연구에서는 ApoE4를 가진 사람들이 면역 강화요법에 가장 잘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ApoE 생성을 증가시키는 실험 화합물인 RGX-104가 종양과의 싸움을 돕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RGX-104는 현재 임상 시험 중이다.

APOE 단백질 구조. 이번 연구에서는 ApoE4가 암 진행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과 대조적으로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위험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어, ApoE4의 임상적 활용을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Wikimedia / Rupp, B., Peters-Libeu, C.A.

타바조이 교수는 다른 ApoE 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를 최적화하기 위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ApoE2는 암 전이 증가 위험과 관련이 있다. 또 ApoE3의 전이 억제 능력은 다른 두 변형체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바조이 교수는 “유전학적으로 생존율이 낮은 환자를 찾아 어떤 치료법이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한편 암과는 다른 측면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ApoE 변이체는 알츠하이머병 발병에도 관여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ApoE4가 암 진행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과 대조적으로, 신경퇴행성 질환 위험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타바조이 교수는 “ApoE가 알츠하이머병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직 명확지 않으나, 암에 대한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이해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을 주로 연구하는 타바조이 교수 연구실에서도 ApoE와 신경퇴행성 질환과의 관련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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