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대개 둘 중 하나이다. 노래를 굉장히 잘 부르는 사람이거나 노래를 아주 못 부르는 사람.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은 아주 열심히 노래를 부르지만, 다른 사람의 귀에는 음정과 박자에 모두 어긋난 영락없는 음치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음치와 사람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얼굴인식장애가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묘한 유사성을 보인다는 연구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음치, 얼굴인식장애 유사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최신호에 따르면 이들 증상은 모두 ‘감각은 인지한지만 인지된 감각을 상위 감각지식으로 연결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뇌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에게 말해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곡조에 맞춰 노래를 부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상 음치라고 부른다.
음치의 특징은 본인이 음정,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음치는 멜로디의 특정한 음이 음조나 키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지할 수 없다. 방금 음악을 들었다 해도 그 음조를 머릿속에 각인시켜놓지 않으면 그 멜로디를 인식하지 못한다.
재미있는 점은 음치들도 분리된 음조 사이의 차이를 들을 수는 있다는 점이다. 즉 음치의 원인은 음악소리라는 감각신호와 음악인지라는 전체 그림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망의 이상에 기인한다. 이렇게 보면 음치는 인지불능의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인지불능은 어떤 객체에 대한 지식의 결핍을 특징으로 한다. 즉 음치란 음악신호라는 감각신호는 인지하면서도 이 음악신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음악지식이 결여됐다는 얘기다.
인지불능의 또 다른 예로 얼굴인식장애가 있다. 얼굴인식장애는 말 그대로 얼굴에 대한 지식의 결핍이다. 심각한 얼굴인식장애자는 본인의 얼굴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음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얼굴인식장애도 기본적인 감각인지능력은 갖고 있다. 이들도 정상적인 시각을 가지며 특정한 얼굴 형태, 남녀의 성, 얼굴감정의 변화 등을 구별할 수 있다.
때문에 음치와 얼굴인식장애는 받아들인 감각신호와 이를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로 해석하는 뇌의 인지영역 사이 연결고리의 결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음치나 얼굴인식장애가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음치나 얼굴인식장애증상은 외관상으로 음악이나 얼굴인지를 담당하는 뇌의 특정 영역에서 정상적이며 매우 선택적인 반응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과학계는 이미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연구결과는 이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음치나 얼굴인식불능의 결함이 특정한 뇌 영역의 반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반응들이 어떻게 상위차원의 뇌 영역과 소통하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음치, 불협화음 인지하지만 뇌의 상위영역 전달 실패
음치를 대상으로 한 일군의 뇌파검사실험에서 음치가 아닌 정상인들은 음조나 화음에서 벗어난 불협화음에 대해서 대략 200ms 후에 반응을 보였다. 음치를 대상으로 한 똑같은 실험에서 음치들 역시 정확히 똑같은 반응했다. 음치들의 뇌 역시 정상인이 불협화음을 인지하는 것처럼 불협화음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문제는 대략 600ms 근처에서 나타나는 후반응이 음치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후반응이 불협화음의 인지를 뇌의 상위영역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뇌의 상위영역은 불협화음의 지각을 인지하는 부위이다.
뇌파실험 결과는 기능적, 구조적 뇌 영상 실험결과와 맥을 같이 했다. 선천성 음치들은 얼굴 구조적으로 안면 전반부위가 후반부의 청각 부위와 상대적으로 덜 겹쳐져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특징은 음치의 뇌가 불협화음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그 불협화음을 인식하지는 못한다는 뇌파검사 연구결과를 지지한다. 노래나 멜로디에 대해 뇌는 알고는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얼굴인식장애자를 대상으로 한 뇌 영상 실험에서도 음치를 대상으로 한 뇌파실험과 매우 유사한 결과가 도출됐다. 인간의 뇌는 정상적인 경우 사람의 얼굴과 같은 특별한 자극에 반응하지만 그 활동성은 노출이 반복적으로 지속될 경우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전혀 다른 얼굴과 같은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감소된 활동성은 다시 증가한다.
얼굴인식장애자, 음치처럼 상위 영역 소통 결핍
만약 얼굴인식장애자의 뇌가 각기 다른 사람의 얼굴 차이를 전혀 구별할 수 없다면 새로운 얼굴에 대한 반응의 증가는 나타나지 않아야 옳다. 하지만 얼굴인식장애자가 얼굴을 인식하는 뇌의 영역은 각각의 각기 다른 얼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얼굴인식장애자와 정상인의 차이는 얼굴에 대한 반응이 사람의 외형을 인지하는 뇌의 상위 영역과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굴인식장애자는 애인의 얼굴과 낯선 사람의 얼굴을 전혀 구별하지 못했지만 애인의 얼굴을 보여줬을 경우 특별히 자율신경계가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얼굴인식장애자가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원인이 뇌의 하위영역과 상위영역 간 소통의 실패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음치와 얼굴인식장애는 모두 대뇌 피질의 특정 부위 손상으로 야기된다. 뇌의 다른 영역 손상은 음색, 멜로디, 리듬 인지 등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이 밝혀졌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뇌의 손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 음치 또는 얼굴인식장애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선천성의 경우에는 뇌의 손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선천성 얼굴인식장애는 대략 인구의 2.5% 수준에서 선천성 음치는 4%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들 장애는 매우 가족력이 높으며 1촌 관계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음치나 얼굴인식장애를 야기하는 돌연변이는 대부분 뇌의 다양한 부위의 연결고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이에 관련된 유전자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들 유전자의 정상적인 기능이 무엇이든지 돌연변이로 인한 정상 기능의 붕괴는 뇌의 감각 처리 영역과 감각 인지 영역 사이의 신경신호 소통을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적 변이는 이런 관점에서 어떤 객체에 대한 다양한 인지 방식에서부터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그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등 복잡한 뇌의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 저작권자 2011-0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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