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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강봉 객원기자
2018-08-06

대형 농장이 바나나 생태계 파괴 대량생산으로 ‘바나나겟돈’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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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병 혹은 시드름병(fusarium wilt)이라 불리는 농작물 병이 있다. 곰팡이가 채소나 곡식에 기생하면서 독을 생산해 내는 무서운 병이다. 농작물이 병에 걸리면 녹색이 황색으로 변하면서 시들어버린다.

1960년대 푸사리움이라는 곰팡이가 파나마 병(panama disease)을 일으켜 ‘그로 미셸(Gros Michel)’ 품종 바나나를 멸종시킨 바 있다.

이 푸사리움의 변종인 TR4(Tropical Race 4)가 시드름 병을 통해 바나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작물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캐번디시(Cavendish)’ 종 바나나다.

문제는 캐번디시 바나나의 유전자가 모두 같아 한 나무에서 병에 걸리면 인근 나무들도 순식간에 같은 병에 걸린다는 것.  관계자들은 이 병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 호주로 확산되면서 캐번디시 바나나가 멸종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바나나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한 품종을 대형 농장에 대량 생육하면서 TR4 곰팡이로 인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가앙 밚이 소비되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 ⓒamazon.com
바나나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한 품종을 대형 농장에 대량 생육하면서 TR4 곰팡이로 인한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 ⓒamazon.com

“캐번디시 바나나 멸종은 시간 문제”

이 바나나가 사라질 경우 바나나를 주식으로 하고 있거나 농장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이로 인해 바나나를 생산하고 있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바나나겟돈(Bananageddon)’이란 용어까지 생겨났다.

6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이런 ‘바나나겟돈’ 소동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아직까지 캐번디시 바나나가 전 세계에서 값싸게 팔리고 있으며, 생산량 역시 지난 30년간 계속 상승곡선을 그려왔다며 강한 의심을 표명하고 있다.

현재 캐번디시 바나나의 약 80%를 공급하고 있는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다. 이들은 아직까지 시드름병이 라틴 해안지역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태를 정확히 직시해 관련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방역 일선에 있는 과학자들은 TR4가 중남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상태가 이어질 경우 시드름병 확산이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다.

병을 퍼뜨리는 곰팡이 포자는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작물, 신발, 농기구, 차량, 물, 공기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남미 지역에서 생육 중인 캐번디시 바나나 전체가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농업연구소(Embrapa)의 병리학자인 미구엘 디타(Miguel Dita) 박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캐번디시 멸종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생물다양성연구소(Bioversity International)의 농업 과학자 찰스 스테이버(Cgarkes Staver) 박사는 “곰팡이가 관상식물이나 사람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며 방역 당국이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한 품종을 한 농장에서 키우면서 재난 초래

2000년 기준, 채소처럼 요리해먹는 플레테인을 포함한 전체 바나나 생산량은 6820만 톤이었다. 이후 15년이 지난 2015년 생산량은 1억1790만 톤으로 72.9%가 늘어났다. 이는 15년 동안 TR4 곰팡이가 비교적 느린 속도로 확산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무좀균이 끈질기게 살아있는 것처럼 TR4 역시 근절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바나나겟돈’을 막기 위해 TR4 곰팡이가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등으로 유입되는 것을 가능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나나 위기를 막을 한 가지 방법은 바나나 나무에 TR4 곰팡이에 대항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s)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미생물 혹은 곰팡이 군집을 인체에 투입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식물 내부에도 건강한 생육을 돕는  ‘내생균(endophyte)’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디타 박사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통해 TR4를 근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과학자들은 TR4 곰팡이에 대한 내성을 높이기 위해 2종의 곰팡이와 3종의 박테리아를 개발해 현장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디타 박사는 “이들 마이크로바이옴이 TR4를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하지만 시드름 병에 대한 내성을 높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렇게 TR4 곰팡이가 확산된 것은 단일 품종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농업 패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바나나를 생산하기 위해 같은 품종을 한 농장에서 함께 키우다 보니 모든 바나나의 유전자가 같아지기 시작한 것.

이는 결과적으로 TR4와 같은 곰팡이가 번성하기 쉬운 생물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원인이 됐다. 카디프 대학의 생태학자 안젤리나 벨라미(Angelina S. Bellamy) 교수는 “대형 농장을 선호하는 농업 추세가 지금의 ‘바나나겟돈’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벨라미 교수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대형 농장을 줄이고 바나나의 다양성 있는 생육환경을 회복하는 것이 바나나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2014년 호주 과학자들은 바나나 생육환경에 따라 TR4 곰팡이 감염률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병의 원인은 결국 대형 농장에 있었다.

잘 자라고 값이 싼 바나나는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4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중요한 식량이다. 그러나 대형 농장이 재난을 초래하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8-08-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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