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박테리아, ‘이이제이’ 로 퇴치한다

천적 관계의 미생물 활용하여 다양한 질병 치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세상에도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 이이제이란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서, 자신의 적을 제압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적을 이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성 가진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이이제이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 ⓒ sciguru.org

이이제이 전략에 활용되고 있는 미생물들로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그리고 바이러스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들은 동존(同種) 간 미생물은 물론, 이종(異種) 간 미생물 퇴치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다.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항생제로 활용

동종 간 미생물들을 대상으로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스페인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조절센터(CRG) 소속의 연구진이다. 이들은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한 이이제이 전략을 통해 신개념 항생제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이 개발 중인 신개념 항생제는 합성약품이 아닌 병원성 박테리아의 천적이 되는 박테리아들이다. 박테리아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테리아를 물리칠 수 있는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오늘날의 항생제는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들의 등장으로 예전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강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속도보다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의 진화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감염에 취약해진 만성 질환자와 노약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고, 감염의 위험이 큰 침습적 의료 시술도 늘어나고 있는 관계로 합성의약품 기반의 항생제는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진단이나 검사를 위해 체내에 삽입하는 각종 카테터(catheter)나 측정기기들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들의 주요 침투 경로가 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테터는 신체 내 여러 장기에서 나오는 체액의 상태를 검사할 때 사용하는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는 관을 가리킨다.

천적 관계 미생물 활용한 이이제이 치료법 개요 ⓒ CRG

연구진의 설명에 의하면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들은 생물막(biofilm)을 형성하여 체내에 삽입된 관이나 기기 표면에서 안전하게 증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관이나 기기에 숨어 들어가 교묘하게 증식하는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로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있다.

연구진은 황색포도상구균이 생물막을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이제이 전략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바로 폐렴을 일으키는 병원성 박테리아의 하나인 마이코플라스마(Mycoplasma pneumoniae)를 투입시킨 것이다.

마이코플라스마가 분비하는 물질은 다른 박테리아의 생물막을 녹여 버려 파괴하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물질은 사람에게도 폐렴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연구진은 마이코플라스마를 투입하기 전에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이렇게 조작된 마이코플라스마의 투입은 성공적이었다.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마이코플라스마는 효과적으로 황색포도상구균의 생물막을 파괴하며 82%에 달하는 예방 효과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유전자를 조작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마이코플라스마가 체내에 들어갔을 때 사람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임상 테스트가 필요하다.

앞으로 까다로운 심사 과정이 남아 있지만, 만약 결과가 양호하게 나온다면 미생물로 또 다른 미생물을 억제하는 이이제이 전략은 항생제 산업에서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연구진은 전망하고 있다.

가축의 중독 및 사람의 암 치료 등에도 응용

천적 관계에 있는 미생물을 활용하여 문제가 되는 미생물을 제거하는 이이제이 전략은 국내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바로 농촌진흥청 소속 연구진이 연구하고 있는 ‘토종황국균’ 곰팡이가 그 주인공이다.

토종황국균 곰팡이가 억제하는 유해 곰팡이는 아플라톡신(Aflatoxin)이라는 독소를 분비하는 ‘아스퍼질러스플라버스(Aspergillus Flavus)’다. 이 곰팡이는 보리나 밀, 또는 옥수수, 콩처럼 다양한 곡물에서 증식하며 독소인 아플라톡신를 내뿜는데, 이 독소가 들어간 사료를 먹은 가축들은 대부분 간 독성을 일으켜 종양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아스퍼질러스플라버스가 독소를 분비하지 못하도록 천적인 곰팡이를 함께 증식시키는 이이제이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천적의 후보로 연구진은 메주에서 분리한 ‘토종황국균 KACC 93295’를 주목했다. 메주에서 분리한 곰팡이인 만큼, 어디에 투입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콩 같은 곡물에서 주로 자라는 아스퍼질러스플라버스 곰팡이 ⓒ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분리한 곰팡이가 실제로 경쟁할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이를 플라버스 곰팡이와 섞어서 배양했다. 그 결과, 플라버스 곰팡이들은 더 이상 아플라톡신을 추가로 생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곰팡이를 걸러낸 배양액에 남아있던 기존의 아플라톡신 양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박테리아로 악명이 높은 ‘살모넬라(Salmonella)’를 암 치료에 적용하는 이종 간 치료법도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진은 암세포에 친화적인 살모넬라의 성질을 역으로 이용하여, 암세포 근처에서 다량의 면역 유발물질을 생산하도록 살모넬라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그 결과, 면역물질은 강력한 항암 면역작용을 일으켜 암이 증식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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