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쌓인 붉은 눈의 정체

기후 변화 가속시키는 녹조류 때문

유난히 따듯했던 겨울, 남극 역시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지난달 7일 남극 반도 끝 아르헨티나 에스페란자 연구 기지의 기온은 18.3도를 기록했고, 같은 달 10일 남극 북단 시모어 섬의 마림비오 연구 기지에서 측정한 기온은 20.75도였다.

남극에서 최초로 20도가 넘어가는 기록이 경신됨에 따라 빙하 역시 빠르게 녹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남극 최북단 반도 해안의 갈린데스 섬의 우크라이나 연구 기지에서 하얀 눈 대신 붉게 물든 눈, 일명 ‘수박 눈(Watermelon snow)’도 관측됐다.

우크라이나 남극기지에서 찍은 ‘수박 눈’으로 뒤덮인 남극의 풍경 ⓒAndriy Zotov

붉은빛의 수박 눈, 녹조류가 붉게 변한 현상

핏빛으로 물든 듯 섬뜩한 광경을 연상시키는 ‘수박 눈’은 사실 미세 조류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약간의 ‘단’ 냄새와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수박 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박 눈은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도 발견해 기록한 바 있다. 이후 1818년 5월 북극을 탐험하던 영국의 탐험가 존 로스(John Ross)가 샘플을 채취해 가져왔다. 당시 사람들은 이 붉은색이 철 성분의 퇴적물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수박 눈의 정체를 밝힌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이다. 그는 눈 속의 조류의 색깔 때문에 붉은색을 띤다고 주장했고, 실제 이는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Chlamydomonas nivalis)라 불리는 녹조류가 만든 현상으로 밝혀졌다.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는 전 세계 고산지대의 만년설이나 극지방 해안에도 널리 퍼져있는 조류이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는 눈 속 깊은 곳에서 휴면기를 가지지만, 눈이 녹으면 표면 위로 올라와 활동을 시작한다.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는 본래 녹색 조류이나 태양빛을 받으면 붉게 변한다. 붉은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자외선 차단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붉은빛으로 색을 바꾼 덕분에 유전적 변형 없이 태양을 견딜 수 있다.

눈에서 사는 녹조류의 한 종류인 클라미도모나스 니발리스가 붉게 변해서 생긴 ‘수박 눈’ ⓒAndriy Zotov

우크라이나 남극 기지에서 연구팀이 공개한 사진 중에는 붉게 물든 눈 주변이 움푹 들어가 웅덩이가 생긴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녹조류의 붉은색이 햇빛을 흡수해 주변의 얼음을 더 빨리 녹게 하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을수록 녹조류는 더 많이 퍼져나가 붉은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구덩이는 점차 깊어진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이는 알베도와 관련이 있다. 알베도는 입사한 빛에 대한 반사된 빛의 비율로 흰색의 눈은 알베도가 높아 빛을 대부분 반사하지만, 유색이 진할수록 열을 흡수해 알베도는 낮아진다.

한편 2016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수박 눈이 평균적으로 알베도를 13% 정도 감소시킨다. 이 논문 ‘붉은 눈의 미생물 생태계의 생물 지형과 극지방 빙하가 녹는 데 끼치는 영향’의 저자 스테파니 루츠(Stefanie Lutz)는 “빙하의 녹는 속도는 조류 다양성과 색소화 패턴에 따라 가속화된다. 향후 기후 변화 모델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생물이 빙하에 주는 알베도 효과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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