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뉴욕에서는 낙태 허용에 반대하는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Life)’ 시위가 한창이다.
시위 참여자들은 말 못하는 태아도 살 권리가 있다며 정부 당국에 낙태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과학(science)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23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양측 시위자들은 태아를 생명으로 봐야할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들을 제시하며 ‘태아의 생명권(Pro-life)’과 '여성의 선택권(Pro-science)을 주장하고 있다.
상대방 주장 ‘정크 사이언스’라 비난
그러나 ‘여성의 선택권(Pro-choice)’을 진영에서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정크 사이언스(junk science)’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에서 낙태논쟁이 시작된 것은 46년 전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제인 로(Jane Roe)란 가명을 쓰고 있었던 노마 맥코비(Norma McCorvey)란 여인이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검사장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떠돌이였던 맥코비는 셋째 아기를 임신하자 강간당했다며 합법적으로 낙태수술을 받으려다가 증거불충분으로 거짓말이 탄로나 기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재판이 끝나기 직전 출산했고, 미국 연방 대법원은 여성은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이전까지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낙태를 금하고 있던 대부분의 연방법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당시 판결에 따르면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법률들은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조항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다.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이라 불리는 이 판례는 미국 대법원이 내린 판결 중 역사상 가장 큰 논쟁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례중 하나가 되었다. 이 판례로 인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미국의 모든 주와 연방의 법률들이 폐지됐다.
이 판례에서는 또 출산 전 3개월 동안 낙태가 금지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의학 전문가들이 3개월 동안을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명체로서 존중될 수 있는 기간이라고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과학이 켐페인 주도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대표적인 쟁점이다. 민주당 성향 유권자는 대체로 낙태를 찬성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 성향 유권자 대다수는 낙태 반대자들이다.
그러나 1973년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후 보수 진영은 실패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이때 동원된 것이 과학적 증거들이다.
매년 미국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의료진의 낙태 사례들과 함께 낙태율의 변동 상황을 체크해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태아를 생명으로 봐야 하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대중에 유포하기 시작했다.
양 진영의 격돌은 2000년대 이후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과학 논쟁으로 비화됐다. 그리고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2008년에서 2014년 사이 인디애나, 캔자스,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낙태를 고려하는 여성들에 대한 대기 기간, 필수 초음파, 새로운 제한 조건을 제정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빈곤층에게 부여하는 의료법(Affordable Care Act) 상의 메디케이드(Medicaid)를 확장해 낙태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는 여성에게 더 많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기간 중 미국의 낙태율이 25%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히스패닉을 제외한 백인의 경우 10%로 떨어졌고, 히스패닉을 제외한 흑인의 경우 27.1%로 떨어졌는데 19991년 62%와 비교해 절반을 밑도는 수치였다.
낙태반대 진영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가 정책 변화에 따른 것이고, 정책을 변화하게 한 요인은 과학이라고 보았다.
낙태반대 진영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낙태옹호 진영에서는 최근 미산부인과학회(ACOG)와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낙태반대 진영에서 주장하고 있는 과학적 주장들을 ‘정크 사이언스(junk science)’라고 비난하고 있는 중이다.
2019년 들어 세계는 낙태를 놓고 뜨거운 논쟁에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마다 입법 방향이 엇갈리고 있다.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 하원은 지난해 낙태합법화 법안을 4표차로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31대 38로 부결됐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88%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는 낙태허용을 위한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에서 66.4%의 찬성을 받아 관련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집에서’ 두 번째 낙태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는 낙태 관련 정책 이면에 과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관계자들은 향후 낙태허용과 반대를 놓고 과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가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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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1-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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