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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대공 기자
2007-04-02

나노 : 인류의 축복인가, 잠재된 위험인가 영국 닐 챔프니스 교수 ‘사이언스 카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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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은 우리의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만들 만능 기술일까, 아니면 인류에게 또다른 재앙을 몰고 올 잠재된 위험일까. 최근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나노기술 전문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노기술 강연회에 나섰다.




지난 3월 29일과 30일, 주한영국문화원과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는 영국 노팅엄대 나노사이언스학과의 닐 챔프니스(Niel Champness) 교수를 초청, ‘사이언스 카페’ 행사를 개최했다.


챔프니스 교수는 네이처 등의 유명저널에 1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영국왕립화학학회가 40세 이하의 뛰어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봅 헤이 강좌직’(Bob Hay Lectureship)을 2005년 받았다. 과학강연의 타고난 달인이기도 한 그는 영국 과학대중화를 위해 앞장서 왔으며, 특히 나노기술에 대한 대중강연회를 수십 차례 개최해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청소 필요 없는 나노입자 유리창


챔프니스 교수는 과학강연의 달인답게 자신만의 나노의 정의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세계를 일반인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여간 까다롭지 않은 일이다.


실체도 파악하기 어려운 나노의 세계를 챔프니스 교수는 머리카락에서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8만나노미터(1나노미터=10-9m)에 해당하는 머리카락은 어느새 AIDS 바이러스와 DNA를 설명하고 있었고, 챔프니스 교수는 그의 의도대로 관중의 상상력을 나노세계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어지는 챔프니스 교수의 마지막 설명은 ‘피니싱 블로어’로써 손색이 없었다. “대부분의 분자는 나노미터 크기인데, 나노기술이란 이런 분자를 다루는 기술”이라는 말은 그가 나노의 정의에서 의도한 궁극적 최종목표일 것이다.




이어지는 챔프니스 교수의 설명은 나노기술이 우리와 동떨어진 과학자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예로 들며, 나노기술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특유의 위트로 설명했다.


특히 ‘셀프 클리닝 유리’를 설명할 때는 나노기술 전문가로서의 자부심마저 보이기도 했다. 도심 속 고층건물들은 대부분 번쩍거리는 유리를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리들이 거의 ‘셀프 클리닝 유리’인데, 이름 그대로 청소가 필요 없는 유리다. 유리 속에 ‘티태니움 다이옥사이드’(Titanium Dioxide)라는 화학물질을 첨가하는데, 이 나노물질이 청소를 필요 없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다. 고층 빌딩의 외벽 유리에 포함된 티태니움 다이옥사이드는 햇빛을 받으면 이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한다. 이렇게 태양에너지를 간직한 나노입자는 유리 겉면에 붙은 더러운 물질과 반응해 이를 제거하고, 제거된 외벽의 ‘떼’는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간다.


호주의 한 과학자는 셀프 클리닝 나노입자의 특성을 이용해 최근 ‘스스로 청소하는 욕실’도 개발했다고 소개한 챔프니스 교수는 이렇게 나노입자는 우리 생활을 한결 편하게 해 준다고 강조했다.


실리콘 칩 한계 넘어설 유일한 대안


나노기술은 챔프니스 교수의 설명대로 우리의 생활을 정말 편리하게 해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최근 나노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 타임즈>는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10대 재앙’을 발표하면서 이 중 한 가지로 나노기술을 꼽았다. 나노기술이 기후변화와 유전자변형기술 등과 함께 지구를 파멸로 몰고 갈 기술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챔프니스 교수는 나노기술이 ‘안전하게’ 발전해야 할 전문적인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그가 내세운 첫 번째 이유는 나노 컴퓨팅 기술이었다.


최근 컴퓨터공학, 구체적으로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신 성과를 이루고 있다. 챔프니스 교수는 일례로 ‘무어의 법칙’을 들며, 마이크로칩의 저장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해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텔의 마이크로칩 개발 기술은 이 법칙을 증명했으며, pc산업은 이를 주도해 왔다.


최근 발표된 마이크로칩 기술의 최전선은 선폭이 45나노미터 정도라고 설명한 챔프니스 교수는 “이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기술 수준으로 계속 발전한다면 2015년 20나노미터 선폭의 마이크로칩이 출현하리라 예상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이크로칩은 실리콘이라는 물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선폭을 20나노미터까지 줄이면 실리콘은 물질의 특성이 바뀌면서 더 이상 반도체칩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실리콘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칩 기반의 모든 기술ㆍ경제 체제가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는 큰 위기에 봉착하는 셈이다.


대안은 없을까. 챔프니스 교수는 바로 나노기술이 실리콘 칩의 한계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나노 컴퓨팅 기술은 실리콘 칩처럼 기왕에 있는 물질을 깎아 나노 수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노 단위의 물질을 쌓아 반도체칩 기능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그는 0.1나노미터의 입방체를 만들 수 있다면 여기에 pc의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챔프니스 교수는 파인만 교수의 '거친' 예견을 오늘날 많은 나노과학자들이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예로 그는 DNA를 들었다. 세포 속의 DNA는 약 4GB에 해당하는 유전정보를 2-5나노미터 크기에 저장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 대해 챔프니스 교수는 “DNA는 4가지 염기의 배열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0과 1로 표현되는 실리콘 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라고 말했다.


챔프니스 교수의 말처럼 분자단위의 칩이 완성되려면 분자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배열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바로 이것이 나노기술이 추구하는 바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혁명이 일어날 것은 명백하다. 실리콘 칩의 한계를 넘어 엄청난 비약을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기술, 이것이 바로 나노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챔프니스 교수의 첫 번째 이유이다.


그레이 구 극복할 ‘why not’의 정신


챔프니스 교수의 두 번째 ‘나노 사랑’은 나노로봇이었다. 혈액 속을 헤엄쳐 다니며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로봇, 발 모양에 맞춰 자동 변형되는 신발, 공기에서 마실 물을 만들어 내는 휴대용 농축기, 고무처럼 탄력 있는 수퍼 강철…. 이 모든 것이 나노 크기의 로봇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래의 물건들이다.


특히 챔프니스 교수는 치료용 나노로봇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영화 <이너 스페이스>를 보면 적혈구만 한 작은 잠수함이 사람 몸에 투입돼 인체 구석구석을 항해하며 암세포를 발견하고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 같은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나노로봇이다. 세포보다 더 작은 의학용 나노 로봇이 등장해 우리 몸속의 질병세포를 격퇴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외과 수술은 없을 것이며, 없애야 하는 질병만 정확히 골라서 공격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노기술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챔프니스 교수는 자신의 모국인 영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나노기술에 대한 우려에 대해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나노기술이 ‘환영 받지 못하는’ 곳이다.


얼마 전 영국 황태자인 찰스는 “나노기술이 지구를 파멸케 할 것”이라며 매우 강한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찰스 황태자는 특히 ‘그레이 구’(grey goo)를 언급하며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기 전에 나노기술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레이 구란 자기복제 기능을 가진 나노머신들이 무분별한 자기복제를 통해 지구 전체를 장악하는 암울한 미래를 말한다. 주로 나노머신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원인이며, 이론적으로는 1초에 한 번씩 자기복제하는 한 개체의 나노머신이 48시간 내로 지구 전체를 잠식할 수도 있다. 나노 기계가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학상의 육체를 살상한다는 생각은, <창조의 엔진>이란 저서 한 권으로 일약 ‘나노 공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 박사가 최초로 제안했다.


그레이 구가 암시하는 암울한 미래상은 미국 소설가 마이클 클라이튼의 <프레이>에 잘 묘사돼 있다. 그레이 구에 대해 챔프니스 교수는 “이런 암울한 미래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 그것도 아주 나쁜 상상”일 뿐이라며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나노기술은 과학자와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강연의 마지막으로 챔프니스 교수는, 영국인답게,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했다.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부딪치면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에 맞서 ‘왜 안 되지(why not)?'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김대공 기자
scigong@ksf.or.kr
저작권자 2007-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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