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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3-03-04

기존 분광기의 한계를 넘다 [인터뷰] 이흥노 GIST 정보통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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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에 기름이 유출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마약 성분의 검출 여부를 알아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광기다. 이는 단백질이나 광원 분석, 행성의 광물 분포 확인과 음식성분 조사에도 이용될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이다.

하지만 그 쓰임새에 비해 대중들에게 분광기는 매우 생소한 기구다. 분광기란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의 파장의 세기를 측정해 그 정보를 그래프 형태로 나타내는 기구를 말한다. 측정하고자 하는 파장 영역에 따라서 UV(자외선), VIS(가시광선), NIR(근적외선) 분광기로 나눠지는데, 직접적으로 광학분야에서 광원의 특징을 알아내는 일부터 화합물의 성분과 특성을 알아내는 것까지 활용도가 매우 높다.

분광기에서 중요한 것은 해상도다. 인접한 두 파장에 대한 스펙트럼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를 분광기 해상도(resolution)라고 하는데, 이것에 의해 분광기 성능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분광기 산업에서는 해상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저가 랜덤 필터가 더 정교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기존에 비해 해상도가 최대 일곱 배나 높은 분광기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이하 GIST) 정보통신학과 이흥노 교수 연구팀의 나노해상도 소형분광기 개발 가능성 관련 연구결과가 광학분야 권위지인 '옵틱스 익스프레스(Optics Express)' 2월 12일자에 게재된 것.

▲ 이흥노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이흥노 교수팀은 ‘불규칙․저가의 랜덤 필터가 오히려 더 정교할 수 있다’는 비상식적 결과를 제시, 이로 인해 기존 분광기에 쓰이는 고가의 필터를 연구팀이 생산한 저비용 랜덤필터로 대체할 경우 분광기 소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연구는 불규칙하고 가격이 저렴한 분광기 제작 방법을 수학적으로 보전해줄 경우, 기존의 필터제작 방법을 그대로 적용할지라도 더욱 정교하고 세심하게 분광결과를 측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연구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랜덤(Random)’ 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랜덤이란 ‘무작위의’ 또는 ‘마구잡이의’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fluke’ 등의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생각지도 않은 우연한 경우에 성공을 거둔 것’을 의미하는데, 이처럼 불규칙한 분광기 제작방법으로 섬세한 분광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의 필터배열 기반 분광기의 경우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필터를 더욱 정교하게 제작하거나 필터의 개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배열필터 기반의 분광기의 해상도 한계는 필터의 개수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 가능한 소형 분광기 제작에 있어서는 필터의 개수를 무작정 늘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에는 기술적 문제에 봉착하곤 했다.

“분광기 소형화를 위해서 정해진 개수의 필터를 가지고 기존의 분광기는 각각의 필터가 정해진 투과율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큰 비용과 노력이 발생하고 분광기 소형화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기존의 방법대로 작위적으로, 정성들여서 만들어지는 배열필터는 랜덤배열필터가 갖는 두 가지 특성, 모든 파장의 빛을 파장별로 투과율이 서로 다르게 감지한다는 점과 각각의 랜덤필터들의 상관관계가 낮다는 점을 동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상도를 한계치 이상으로 높일 수 없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담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분광기가 개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필터제작 공정의 단순화와 분광기 소형화라는 숙제는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측정대역 안의 모든 파장의 빛을 랜덤한 투과율로 감지하는 배열필터 방식을 개발했다. 이를 소형분광기에 적용한 결과 반도체팹 공정 방식으로 생산하고 특정 파장의 빛만 감지하도록 제작된 고가의 기존 배열필터보다 해상도가 최대 7배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도체팹 공정 방식이란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웨이퍼 표면에 막을 형성시키고 선택적으로 깎아서 설계된 투과율을 갖는 필터를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이 교수 연구팀은 이를 이용, 인접한 두 파장의 최소 거리가 2.106nm인 수은 등의 스펙트럼을 정확히 측정해 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랜덤’의 개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연구팀은 필터의 투과율을 파장별․필터별로 랜덤하게 분포하도록 랜덤배열 필터를 만들어냈다.

“랜덤배열필터란 다수의 랜덤필터들의 집합체다. 각각의 랜덤필터는 측정대역안의 모든 파장의 빛을 고루 감지하면서도 파장별로 투과율이 서로 상이한, 즉 독립적인 스펙트럼 정보를 얻는다. 이러한 랜덤필터를 모아 놓은 랜덤배열필터는 각각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투과율을 갖는 필터들을 이용하므로, 각각의 필터가 채취한 분광정보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면 독립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여러 개의 분광정보를 합치면 랜덤필터의 개수만큼 독립된 정보를 가진 연립방정식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연립방정식에서 계수는 랜덤필터의 투과율을 나타내고, 미지수는 분광정보를 나타낸다. 따라서 연립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풀어 각각의 파장별로 매우 세분화 된 분광정보를 추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무작위로 불규칙적으로 만든 배열필터로 높은 해상도의 분광정보를 추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비교적 간단한 박막기술을 이용해 동일한 두께로 층층이 쌓여있는 막의 두께를 임의로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전체 파장 대역의 빛을 감지하면서도 투과율을 랜덤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개념 전환으로 연구 시작해

▲ 배열필터 기반의 분광기 시스템 ⓒ한국연구재단

이흥노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기존의 배열필터 기반의 분광기에 비해 필터 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개발된 분광기의 해상도는 기존 필터 개수에 의해 결정되는 해상도의 한계치를 넘어 더 세밀한 분광정보를 가져다준다.

이 교수가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동안 그가 진행한 연구와도 관련이 있다. 지난 14년 여 간 신호처리이론과 정보이론 등 통신수학을 무선통신 시스템이나 통신 네트워크 및 유무선 통신 시스템에 적용하는 연구를 주로 한 이흥노 교수는 특히 지난 5년 간 새로운 신호처리 및 정보이론에 근거해 많은 수의 센서와 이메징 디바이스들로부터 정보 및 신호를 빠르고 간결하게 습득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연구팀의 목적은 새로운 통신수학이론에 근거해 분광기와 카메라, 이메징 디바이스(Ultrasound, fMRI등) 등 일차적으로 신호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 통신시스템 및 디지털기기가 주요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었다.

“이러한 신호취득방법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혁명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신호취득기는 디지털기기의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다. 자연신호인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로 바꾸는 신호취득기는 디지털기기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앞으로 모든 디지털기기의 작동방식을 바꾸게 되는 혁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 2011년 GIST 대학원에 새로운 학과목을 개설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재를 개발했다. 그때 우리가 얻은 연구결과를 6년 전 풀던 문제에 적용하면 아주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소형분광기 문제다.”

소형분광기는 근접거리에 작은 센서들이 여러 개 있을 경우 간섭이 생겨서 소형 분광기의 성능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때 이흥노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통신시스템에서 쓰는 등화기 신호처리 이론을 그 문제에 적용해서 간섭으로 인한 성능저하를 막는 방법을 연구, 2008년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다 풀지 못한 숙제를 하나 남겨 놓았다. 즉, 신호처리 이론으로 분광기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은 있었지만, 그 목표를 이룰만한 구체적인 알고리즘을 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알고리즘은 2011년, 연구팀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역방향으로 응용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1년에 푼 문제는 많은 수의 센서에서, 신호 재생 시 감내할 만큼의 질적 저하를 피할 수 없지만 신호를 빠르고 간결하게 얻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2008년 문제에 역방향으로 적용했다. 즉 목표를 바꾸는 것이었다.

“신호를 빠르고 간결하게 얻고자 하는 목표를 버리고 정해진 숫자의 센서에서 샘플을 충실히 얻도록 하고 또 신호 재생 시에도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이자고 생각했다. 즉, 신호처리 알고리즘의 연산량을 충분히 하도록 허락하자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재생된 신호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이처럼 새로운 발상으로 전환해 이번 연구 결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결과는 앞으로 휴대용 분광기 시장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Ocean Optics, Axsun, Agilent 등 해외 유명 분광기 관련 업체들이 휴대 가능한 분광기를 생산하고 있고 앞으로 그 시장성은 더욱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흥노 교수는 상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번 기술 개발을 통해서 휴대용 분광기 생산과정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마지막으로 이흥노 교수는 과학 꿈나무들에 대한 조언과 바람도 있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가 엔지니어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한 사례인 만큼, 청소년들이 이에 고무되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에 보다 많이 도전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많은 대중들이 STEM에 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 나아가서는 학부모들이 자녀는 STEM에 보내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고 덧붙였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3-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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