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가 빠진 자리를 인공 치아인 임플란트가 대신하듯, 손상된 뇌의 뉴런(neuron) 일부를 대체하는 ‘뇌 임플란트’가 등장할 전망이다. 최근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잃어버린 기억을 복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신경장치인 뇌 임플란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를 보도한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맥(Sciencemag)은 DARPA가 전쟁에서 뇌손상을 입은 참전용사들의 기억손실을 복구해 주기 위한 뇌 임플란트 제작에 총 4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 링크)
그러면서 이 매체는 뇌 임플란트 개발 프로젝트가 현재 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브레인 이니셔티브 사업은 오바마 행정부가 뇌와 관련된 각종 질병 및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1억 달러를 지원하는 국책 사업을 말한다.
외상성 뇌손상으로 27만명의 군인이 기억을 잃어
뇌 임플란트 개발을 위해 DARPA는 최근 두 연구팀을 선정했다. 선정된 연구팀은 UCLA대와 UPenn(University of Pennsylvania)대의 신경과학 팀이다. UCLA대 연구팀은 기억 형성을 관장하는 핵심영역인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과 해마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억복구용 보철을 개발할 예정이다.
반면에 UPenn대 연구팀은 뇌의 여러 영역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절하는 기구를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기억 형성과 저장에 관여하는 영역들에서 발생하는 전기 패턴을 맵핑(mapping)하여, 뇌의 기억에 대한 메커니즘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연구계획에 대해 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MIT대의 로저 레돈도(Roger Redondo)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외상성 뇌손상’ 환자들이 실제로 어떤 종류의 기억력을 상실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기억을 파괴하는 외상성 뇌손상(TBI, Traumatic Brain Injury)은 DARPA가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다. DARPA는 TBI로 인해 2000년 이후 27만 명의 군인들이 기억을 잃었다고 밝힌바 있다. 이들의 발병 원인은 전쟁 중에 발생한 뇌 부상이나 트라우마(trauma)로 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레돈도 교수는 “기억이 손실되는 문제는 기억이 저장될 때나 떠올릴 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정의하며 “저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기억을 형성하는 시냅스가 아예 형성되지 않거나 파괴된다. 그런 경우는 아무리 훌륭한 장치를 이식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외상성 뇌손상이 기억의 인출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저장된 기억은 그대로 살아 있으므로 그곳에 접근하여 자극을 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하지만 기억이 저장돼 있는 세포를 찾아내 정확하게 전기 자극을 가해야 하는 만큼, 이 역시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레돈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DARPA의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레돈도 교수는 이 같은 특징에 대해 “그런 위험부담이 있는 일을 하라고 DARPA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참전용사들 중 27만 명이 TBI라는 진단을 받았던 점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와 같은 획기적으로 과학적 도약을 이룩할 수 있는 연구”라고 강조했다.
생각을 감지하는 용도로도 사용
뇌 임플란트 기술을 DARPA가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목적은 아니지만 유사한 개념의 뇌 임플란트 연구 사례들이 이미 발표된 바 있다. 미 웨이크포레스트대의 로버트 햄프슨(Robert Hampson) 부교수가 실험을 통해 뇌 임플란트 효과를 입증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는 원숭이에게 서로 다른 색상의 음식 사진과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기억하는지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해마를 자극하도록 설계된 뇌 임플란트를 부착했을 때 단기적인 ‘작동 기억’을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햄프슨 교수는 “인간의 특정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억에 관한 정확한 패턴을 알아야 하므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뇌 임플란트 기술을 통해 기억상실 환자들이 단순한 일상적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여겨진다”고 기대했다.
기억을 회복시키는 용도는 아니지만 뇌 임플란트가 사람의 생각을 감지하는 용도로 활용된 연구사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메디컬 센터와 바텔연구소의 공동 연구진이 개발 중인 신경치료 방법인 ‘뉴로브릿지(Neurobridge)’를 적용한 경우다.
이 기술은 환자 뇌의 특정 부위에 넣은 칩 모양의 뇌 임플란트가 몸을 움직이려는 뇌의 생각을 감지한 뒤, 이를 컴퓨터 신호로 변환하여 환자의 팔에 부착된 전극 장치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실험에 사용될 뇌 임플란트는 환자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96개의 전극으로 구성되어 졌다. 연구진은 팔의 근육이 전기 자극을 받고 반응하면 환자 생각대로 마비된 손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뉴로브릿지를 시험해 볼 첫 번째 환자로는 오하이오주에 거주하는 23세의 사지마비 환자인 이안 버크하트(Ian Burkhart)가 선정됐다. 그는 19세 때 물속으로 다이빙하다가 얕은 모래톱에 부딪혀 척수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가슴 아랫부분이 마비됐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이자 환자의 주치의이기도 한 알리 레자이(Ali Rezai) 박사는 버크하트의 뇌 내부 운동 피질에 작은 칩을 임플란트했다. 이 칩은 뇌 신호를 해석하여 10분의 1초 이내에, 버크하트의 생각을 행동으로 변환시키는 용도로 사용됐다.
버크하트는 뇌 임플란트를 이용한 첫 실험에서 주먹을 쥐었다 펴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당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연구진은 “공상 과학이 현실이 되는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임상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레자이 박사는 “사지 마비나 뇌졸중, 그리고 뇌손상 환자들도 조만간 생각만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날이 분명히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4-07-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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