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임동욱 기자
2011-02-25

기상 이변의 범인은 인간… ‘증거’ 잡았다 네이처지, 폭우·폭설과 지구온난화 관계 밝혀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지난해 여름 러시아가 폭염과 산불로 큰 피해를 입는 동안 남쪽의 파키스탄과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홍수를 겪었다. 여름은 갈수록 더워지는데 지난 겨울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에는 한파와 폭설이 들이닥쳤다. 아이러니한 기후 현상들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온실가스를 지목한다.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의 온실가스 대부분은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으로 방출됐다. 결국 인간 스스로가 극심한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기후변화 회의론자’라 불리는 과학자들은 일부 데이터를 가지고 대중들을 겁주어서 기후변화로 한몫 챙기려는 상술이라고 비난한다. 한켠에서는 거의 모든 국가들과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지지하는 기후변화 이론을 반대하는 태도는 정유사 등 화석연료 업계의 지원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맞대응을 하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책임은 과연 인간에게 있을까. 최근 그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포착되어 화제다. 지난주 네이처(Nature)지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폭우·폭설 등 극심한 기상현상이 생겨났음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한 2편의 논문을 실었다.


북반구의 폭우·폭설 분석하자 ‘온실가스’가 원인

첫 번째 논문은 캐나다 기상청과 빅토리아대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로, 1951년부터 1999년까지 50년 동안 유럽, 미국, 캐나다 등 북반구에서 발생한 폭우와 폭설을 조사했다. ‘극심하게 편중된 폭우 현상에 인간이 기여했다(Human contribution to more-intense precipitation extremes)’는 제목의 이 논문에는 한국인 민승기 박사를 비롯해 장쉬에빈(Xuebin Zhang), 프랜시스 즈위어스(Francis Zwiers), 가브리엘레 헤게를(Gabriele Hegerl) 등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10여개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50년 간의 폭우·폭설 데이터를 입력했다. 그러자 최근의 폭우가 예전보다 강수량이 7퍼센트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뜻 보기에는 적은 양 같지만 증가폭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데워진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하고 운반할 수 있다. 온난화의 원인으로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가 지목됐다. 연구진이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외한 채 시뮬레이션을 가동시키자 기록적인 폭우와 폭설 대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일반적인 자연현상만으로는 최근의 극심한 기상현상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공동저자인 장쉬에빈 박사는 타임(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데이터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생활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논문에는 1999년까지의 데이터가 사용되었으므로 지난해 유럽과 동아시아의 폭설이라든가 미국 테네시주, 아칸소주, 캘리포니아주 등지의 폭우는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기후학자들은 이번 시뮬레이션은 “오히려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인간이 기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마이클 오펜하이머(Michael Oppenheimer) 기상학과 교수는 “우리의 미래는 예상보다 훨씬 더 불안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을 덮친 폭우도 산업혁명 이후의 온실가스 때문

또 다른 논문은 지난 2000년 영국의 홍수를 분석했다. 마일즈 앨런(Myles Allen) 등 8명은 공동연구를 통해 ‘2000년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을 덮친 홍수의 원인에 인간이 방출한 온실가스가 포함됐다(Anthropogenic greenhouse gas contribution to flood risk in Engliand and Wlaes in autumn 2000)’는 논문을 게재했다.

2000년 영국 남부에 쏟아진 폭우는 1766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강수량을 기록했으며, 당시 도심의 대로에서는 거위와 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기도 했다. 연구진은 당시의 기상 데이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입력했고, 이를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시뮬레이션과 비교했다. 그러자 온실가스의 영향력이 드러났다. 산업혁명 이후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없었다면 기록적인 폭우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상기후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역시나 인간이다.

공저자인 앨런 박사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흔히들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부르지만, 극심한 날씨변화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하면서,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는 “앞으로는 기상청이 일기예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밀한 기후 시뮬레이션을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기후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통계자료가 충분하다 해도 그 원인을 분석해내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제야 10년 전의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기후학자들은 최첨단 슈퍼컴퓨터와 고성능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온실가스는 다양한 기후요소에 영향을 끼친다. 논문에 따르면 육지의 기온, 해양의 표면, 심해의 열, 온도 한계치, 해수면 압력, 지표면과 대기의 습도, 평균 강수량, 북극해의 빙하 규모, 미국 서부의 강설량, 대서양의 염도, 산불 피해 규모, 하층대기의 고도한계 등 온실가스의 영향을 받는 요소만 12개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에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시뮬레이션만으로 기후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류 과학자들은 “시뮬레이션이 정답은 아니지만 정확도가 갈수록 높아진다”고 반박한다. 또한 인간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시뮬레이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밀한 기후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최근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저개발국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자 저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바로 우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으로는 실제 기후변화의 피해인지 단순한 기상현상의 피해인지를 밝혀내는 데에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쓰일 예정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극심한 기상이변을 예측하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일으킨 인간의 ‘범행’을 엄격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해 인과관계를 가시적으로 밝혀낸 것은 이번 2개 논문이 처음이다. 또한 많은 자연재해 중에서 폭우와 폭설이 선택된 이유는 큰 피해를 내는 홍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1950년 이래 홍수로 인한 사망자만 230만명에 달한다.

임동욱 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02-25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