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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11-02-07

극한에서 살아남는 박테리아의 힘은 다른 박테리아 유전자 획득으로 다양성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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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에 어떤 물건이 반드시 필요할 때 주위에서 그 물건을 획득하는 것과 기존 물건에 변형을 가해 사용하는 방법 중 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일까. 얼핏 생각해보면 있는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진화의 관점에서는 후자의 경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전자의 경우를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라고 부르며 후자의 경우를 ‘유전자 중복’이라고 일컫는다. 근 100년 동안 과학계는 유전자 중복이 진화의 핵심이라고 간주했다. 때문에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이나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생물 모두 진화의 원동력은 유전자 중복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굳혀졌다.

유전자 중복 대세 속, 원핵생물 수평적 유전자 이동 반박

하지만 최근 일군의 과학자들은 원핵생물의 경우 기존 이론에 반해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진화의 원동력이며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유전자 중복은 진화에 있어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PLoS Genetics’ 최신호에 보고했다.

박테리아(세균)는 인간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하곤 한다. 이들은 물이 끊을 정도의 높은 온도나 혹한의 날씨, 심지어 인간의 면역체계에서도 살아간다. 박테리아가 이처럼 극한의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재빨리 자신들의 단백질 레퍼토리를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 레퍼토리를 바꾼다는 말은 유전자를 새롭게 얻거나 잃어버리거나 기존의 유전자를 조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극한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단백질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단백질 레퍼토리를 바꾼다. 하나의 방법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이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유전자를 새롭게 획득하는 방법이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이다.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자신이 아닌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획득하면 이른바 ‘슈퍼박테리아’가 된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슈퍼 박테리아 NMD-1이나 MRSA 등은 모두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결과이다.

박테리아는 박테리아 자체의 DNA뿐만 아니라 플라스미드(Plasmid)란 이름의 일종의 여분의 DNA를 가진다. 플라스미드 DNA는 복제가 용이하고 다른 박테리아로 쉽게 옮겨 다닐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항생제 내성 유전자는 대개 플라스미드 DNA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이다. 유전자 중복은 박테리아의 자체 DNA의 특정 유전자가 중복(복제)되는 현상이다. 중복되는 유전자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중복된 유전자에 대한 특별한 선택이 없는 한 이들 중복 유전자들은 곧 사라진다.

하지만 때때로 유전자의 새로운 역할을 위해 중복된 유전자가 DNA상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남는다. 이 기간이 새로운 기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의 기간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중복된 유전자들은 DNA상에 고정되며 이는 돌연변이로 진화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유전자 중복은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생물뿐만 아니라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에서도 발생한다. 세포 내 DNA를 보관하는 핵이 있으면 진핵 없으면 원핵생물이며 생물은 원핵에서 진핵으로 진화했다. 유전자 중복은 단백질 레퍼토리에 깊이 관여하며 생물이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기능을 얻는 첫째 요소로 간주돼왔다.

원핵생물 유전자의 96%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기 연구보고가 있다. 반면 단백질 패밀리의 다양성에 있어 수평적 유전자는 최대치로 잡아도 25%라는 분석도 있다. 두 개의 모순된 연구보고는 별도의 설명을 요구한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토드 트린젠과 에뒤알도 로카 연구팀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유전자 중복 가운데 무엇이 원생생물의 단백질 다양성을 이끄는 중추적 요인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고안했다.

이들은 진화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8종의 원핵생물을 대상으로 각기 크기가 다른 110개의 게놈을 분석했다.

이들 원핵생물은 게놈 크기에 따라 작게는 2Mb이하(Helicobacter, Neisseria, Streptococcus, Sulfolobus),  보통 크기인 4~5Mb(Enterobacteriaceae, bacillus), 가장 큰 크기인 6Mb(Bradyrhizobiaceae, Pseudomonas) 등으로 구성됐다. 이로부터 연구팀은 419,035 가지의 단백질을 포함한 59,541 종의 단백질 패밀리를 추려냈다.

계통 내에서 단백질의 다양성 확장에 관여하지 않는 단백질 패밀리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연구팀은 최종적으로 3천190개의 단백질 패밀리를 집중분석했다. 분설결과 80~90% 의 단백질 패밀리가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비교적 게놈 사이즈가 큰 박테리아의 경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유전자 획득이 서로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쳐 발생한다는 점을 규명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유전자 중복, 진화상 서로 다른 역할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통해 획득한 유전자는 개체에서 보다 오랫동안 존재하는 반면 유전자 중복으로 나타난 유전자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단백질로 발현되며 천천히 진화한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유전자 중복의 이러한 차이점이 생물계가 진화하는 서로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며 유전자 이동이 새로운 기능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중복은 보다 높은 유전자의 사용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중복은 단백질과 단백질 상호작용 또는 단백질의 유전자 조절 작용 등 보다 상위차원의 생물학적 이벤트에 관여하며 반면 유전자 이동은 상대적으로 덜 관여한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원핵생물은 호흡에서부터 광합성까지 생화학적 다양성의 대부분을 발명했다. 논문저자인 토드 트린젠과 에뒤알도 로카 박사는 “이런 점에서 생물계의 진화에 대한 연구는 단백질의 다양성에서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우월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전자 중복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진핵생물의 경우에도 연구팀의 연구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까. 최근 식물을 포함한 진핵생물에서도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 대한 연구가 보고되고 있기는 하지만 원핵생물과 달리 진핵생물은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진화적으로 가까운 진핵생물 종에 대한 샘플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으며 원핵생물보다 게놈 크기가 크며 다루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패트릭 킬링 박사는“진핵생물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성규 객원기자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1-02-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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