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맘때쯤이면 보릿고개를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했다. 춘궁기라고도 불렸던 보릿고개는 지난가을 추수한 쌀은 이미 바닥이 났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말한다.
‘진지 잡수셨어요’ ‘식사하셨나요’ 등도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던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비롯된 인사말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보릿고개를 넘기는 요령이 기재되어 있을 정도이다.
제9권의 잡방(雜方) 속에 들어 있는 ‘구황벽공방’이 바로 그것으로서, 거기에는 보릿고개 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대체음식과 약재를 사용하는 40여 가지 방법이 세세히 적혀 있다.그런데 보릿고개 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구황식품들이 요즘은 건강을 지켜주는 웰빙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보릿고개 때 배고픈 우리 민족의 속을 채워준 가장 소중한 식용자원은 봄이 되면 산 여기저기마다 돋아나는 산나물이었다. 고사리, 취나물, 참나물, 두릅, 누리대, 얼레지 등 우리나라엔 조상들이 산나물로 이름 붙여 놓은 것들이 480여 가지나 된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보더라도 훨씬 많은 산나물을 더 다양한 조립법으로 먹어온 민족이 바로 우리인 셈. 특히 나물처럼 살짝 데치는 우리의 조리법은 생야채 속에 들어 있는 불순물이나 독소를 제거하는 안전한 조리법임이 증명되었다.
또 채소를 푹 삶을 경우 수용성 비타민 등 영양소가 파괴되지만 살짝 데칠 경우 몸에 좋은 영양 성분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 깻잎, 부추, 미나리 등을 살짝 데친 뒤 베타카로틴의 양을 측정하면 데치기 전보다 오히려 그 함유량이 높아진다는 실험결과가 그 좋은 예. 녹황색 채소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항암 효과를 지닌 물질이다.
봄철에 나는 수많은 산나물 중에서도 최근 들어 특히 별미 웰빙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대표적인 음식이 ‘곤드레나물밥’이다. 곰취처럼 달콤 쌉싸래한 맛을 내는 곤드레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구황식품이었는데, 요즘엔 고랭지에만 서식하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국구 음식으로 떠올랐다.
칼슘을 비롯해 무기질과 비타민A가 풍부한 곤드레나물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 예방은 물론 부인병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흉년이면 풍년 든 메밀
춘궁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음식은 죽이다. ‘죽을 쑤다’ ‘죽도 밥도 아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등 죽과 관련된 속담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밥을 짓는 데 필요한 곡식 양의 1/3만으로도 죽 한 그릇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보릿고개 때만 되면 산나물이나 시래기 등을 넣은 희멀건 죽이 밥상의 단골 메뉴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죽은 더 이상 변변찮은 음식이 아니다. 위장이 좋지 않은 직장인들을 비롯해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식으로 각광 받으며 번화가마다 죽 전문점이 들어서는 등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탄수화물이 많은 곡물을 넣고 죽을 끓이면 생녹말의 치밀한 미셀 구조가 물과 열에 의해 바깥층으로부터 차례로 깨진다. 이런 현상을 호화(糊化)라고 하는데, 탄수화물이 호화되면 분해가 쉬워져 소화가 잘 된다.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이 죽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숨어 있다.
하늘의 도움만으로 농사를 짓던 천수답(天水畓) 시절에는 모내기철이 끝나도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벼농사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땅까지 놀릴 수는 없는 형편. 대신 쩍쩍 갈라진 논에는 가뭄에도 잘 자라는 메밀이 심어졌다.
따라서 쌀 흉년이 들 때마다 풍년이 드는 구황식물이 바로 메밀이었다. 특히 그 옛날 척박했던 강원도에서 메밀국수, 메밀묵 같은 음식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지겨웠던 메밀이 강원도의 향토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에는 비타민 B1, B2가 많고 비타민 P의 일종인 루틴도 함유하고 있어서 고혈압 강하제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다른 곡물에 비해 우수한 단백질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혈당을 낮추고 변비 예방에 효과가 있다.
최고의 항암식품, 고구마
구황 식품 중 오늘날 웰빙 슈퍼푸드로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고구마이다. 고구마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식품으로 선정될 만큼 완벽한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끼 식사로 훌륭할 뿐 아니라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하고 잎과 줄기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고구마는 베타카로틴과 폴리페놀계 화합물인 클로로겐산, 프로테아제 억제물질 등을 함유하고 있어서 최고의 항암 식품으로 꼽힌다. 또 고구마의 보라색 껍질에는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그밖에 콜레스테롤 포획력이 큰 식물섬유가 많고 수지 배당체인 하얀 수지 성분이 있어서 장에 좋으며 비장과 위를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또 철분이 풍부하여 여성들에게 흔한 철 결핍성 빈혈에도 도움이 된다.
고구마의 효능 중 가장 주목할 것은 혈압을 낮추어주는 기능이다. 고구마는 칼륨이 많은 대표적인 식품인데, 칼륨은 고혈압의 주원인인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해 혈압을 내리게 한다.
그럼 고구마의 혈압 강하 효과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혈압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쥐에게 자색 고구마 추출물을 투여한 뒤 혈압의 변화를 체크한 결과, 불과 6시간 만에 혈압이 정상 수치로 떨어지는 게 관찰됐다.
이런 효과는 사람에게서도 관찰된 바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 매일 2회씩 자색 고구마 즙을 마시게 한 결과 4주 후 실험자 모두 혈압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릿고개를 넘던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던 간식거리이자 또 하나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던 게 바로 칡이다. 옛날 시골아이들은 봄이면 산에서 칡을 캐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배가 고플 때마다 질겅질겅 씹곤 했다.
달고 쌉쌀한 맛이 구미를 돋우는 봄철의 칡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영양식으로도 괜찮다. 숙취 해소에 뛰어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칡은 에스트로겐 함유량이 석류보다 훨씬 많아 여성들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또 성장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주고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C 등 각종 영양소를 다량 함유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금속을 배출시켜주는 기능이 있어 요즘처럼 황사가 심할 때 먹으면 더욱 좋다.
‘진지 잡수셨어요’ ‘식사하셨나요’ 등도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던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비롯된 인사말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보릿고개를 넘기는 요령이 기재되어 있을 정도이다.
제9권의 잡방(雜方) 속에 들어 있는 ‘구황벽공방’이 바로 그것으로서, 거기에는 보릿고개 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대체음식과 약재를 사용하는 40여 가지 방법이 세세히 적혀 있다.그런데 보릿고개 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구황식품들이 요즘은 건강을 지켜주는 웰빙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보더라도 훨씬 많은 산나물을 더 다양한 조립법으로 먹어온 민족이 바로 우리인 셈. 특히 나물처럼 살짝 데치는 우리의 조리법은 생야채 속에 들어 있는 불순물이나 독소를 제거하는 안전한 조리법임이 증명되었다.
또 채소를 푹 삶을 경우 수용성 비타민 등 영양소가 파괴되지만 살짝 데칠 경우 몸에 좋은 영양 성분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 깻잎, 부추, 미나리 등을 살짝 데친 뒤 베타카로틴의 양을 측정하면 데치기 전보다 오히려 그 함유량이 높아진다는 실험결과가 그 좋은 예. 녹황색 채소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항암 효과를 지닌 물질이다.
봄철에 나는 수많은 산나물 중에서도 최근 들어 특히 별미 웰빙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대표적인 음식이 ‘곤드레나물밥’이다. 곰취처럼 달콤 쌉싸래한 맛을 내는 곤드레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구황식품이었는데, 요즘엔 고랭지에만 서식하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국구 음식으로 떠올랐다.
칼슘을 비롯해 무기질과 비타민A가 풍부한 곤드레나물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 예방은 물론 부인병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흉년이면 풍년 든 메밀
춘궁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음식은 죽이다. ‘죽을 쑤다’ ‘죽도 밥도 아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등 죽과 관련된 속담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밥을 짓는 데 필요한 곡식 양의 1/3만으로도 죽 한 그릇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보릿고개 때만 되면 산나물이나 시래기 등을 넣은 희멀건 죽이 밥상의 단골 메뉴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죽은 더 이상 변변찮은 음식이 아니다. 위장이 좋지 않은 직장인들을 비롯해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식으로 각광 받으며 번화가마다 죽 전문점이 들어서는 등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탄수화물이 많은 곡물을 넣고 죽을 끓이면 생녹말의 치밀한 미셀 구조가 물과 열에 의해 바깥층으로부터 차례로 깨진다. 이런 현상을 호화(糊化)라고 하는데, 탄수화물이 호화되면 분해가 쉬워져 소화가 잘 된다.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이 죽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숨어 있다.
하늘의 도움만으로 농사를 짓던 천수답(天水畓) 시절에는 모내기철이 끝나도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벼농사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땅까지 놀릴 수는 없는 형편. 대신 쩍쩍 갈라진 논에는 가뭄에도 잘 자라는 메밀이 심어졌다.
하지만 요즘은 그 지겨웠던 메밀이 강원도의 향토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밀에는 비타민 B1, B2가 많고 비타민 P의 일종인 루틴도 함유하고 있어서 고혈압 강하제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다른 곡물에 비해 우수한 단백질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혈당을 낮추고 변비 예방에 효과가 있다.
최고의 항암식품, 고구마
구황 식품 중 오늘날 웰빙 슈퍼푸드로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고구마이다. 고구마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식품으로 선정될 만큼 완벽한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끼 식사로 훌륭할 뿐 아니라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하고 잎과 줄기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고구마는 베타카로틴과 폴리페놀계 화합물인 클로로겐산, 프로테아제 억제물질 등을 함유하고 있어서 최고의 항암 식품으로 꼽힌다. 또 고구마의 보라색 껍질에는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그밖에 콜레스테롤 포획력이 큰 식물섬유가 많고 수지 배당체인 하얀 수지 성분이 있어서 장에 좋으며 비장과 위를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또 철분이 풍부하여 여성들에게 흔한 철 결핍성 빈혈에도 도움이 된다.
고구마의 효능 중 가장 주목할 것은 혈압을 낮추어주는 기능이다. 고구마는 칼륨이 많은 대표적인 식품인데, 칼륨은 고혈압의 주원인인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해 혈압을 내리게 한다.
그럼 고구마의 혈압 강하 효과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혈압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쥐에게 자색 고구마 추출물을 투여한 뒤 혈압의 변화를 체크한 결과, 불과 6시간 만에 혈압이 정상 수치로 떨어지는 게 관찰됐다.
보릿고개를 넘던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던 간식거리이자 또 하나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던 게 바로 칡이다. 옛날 시골아이들은 봄이면 산에서 칡을 캐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배가 고플 때마다 질겅질겅 씹곤 했다.
달고 쌉쌀한 맛이 구미를 돋우는 봄철의 칡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영양식으로도 괜찮다. 숙취 해소에 뛰어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칡은 에스트로겐 함유량이 석류보다 훨씬 많아 여성들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또 성장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주고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C 등 각종 영양소를 다량 함유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금속을 배출시켜주는 기능이 있어 요즘처럼 황사가 심할 때 먹으면 더욱 좋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1-05-03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