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함께 마련한 ‘파리과학탐방’ 행사 덕분에 이뤄졌다. 면접 등을 통해 선발된 학생 12명과 한국과학문화재단의 한효순 박사, 정소영 주임, 그리고 나를 포함한 15명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100년 실험실 간직한 파스퇴르 연구소
파리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파스퇴르연구소 직원들이었다. 필립 쿠릴스키 소장을 비롯해 이번 행사를 사실상 주관한 폴 브레이 박사, 연구소의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인 문지웅 박사 등이 연구소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들은 각자 각 연구원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다음날부터 우리 일행은 파리 곳곳에 있는 과학관 또는 과학과 관련된 박물관을 찾았다. 무엇보다 우리를 초청한 파스퇴르연구소 안에 규모는 작지만 근사한 박물관이 있었다. 광견병 치료제를 개발한 과학자 파스퇴르가 말년에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박물관 안에는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가 생전에 쓰던 실험기구들이 큰 방을 하나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스퇴르가 19세기말 과학자이니 모두 100년은 훨씬 넘은 것들이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생물은 생물에서 태어난다’는 이론의 실험 증거가 됐던 S자 모양으로 주둥이가 휜 유리 플라스크였다. 학생들은 실험기구들이 100년이 넘었다는데 놀란 듯 보였다. 한국의 훌륭한 선조 과학자들을 소개하면서 그처럼 많은 도구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전시물을 보고 움직이고 느끼면서 과학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특히 과학관을 나오면서 들른 과학 상점은 색다른 재미를 줬다. 다양한 과학서적부터 재미있는 과학 놀이기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한국에서 과학 놀이기구를 사려면 어디를 가야 할까. 언뜻 떠오르는 곳이 없다.
전염병 정복의 꿈 파스퇴르연구소
라빌레트 과학관에 다녀와서는 파스퇴르연구소가 마련한 여러 강연과 실험실 탐방이 있었다. 과학에 흥미가 많은 학생들이었는데도 실제 실험실에 온 적은 처음이었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실제로 보는 과학자의 모습이 꽤 신기했나 보다. 한 박사는 학생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날 때마다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들려줬다.
파스퇴르연구소의 준비도 철저했다. 살아 있는 누에벌레를 각 단계별로 가져와 학생들이 직접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져보게 하고 깃털이나 장구벌레를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게 했다. 하이라이트는 말라리아 실험실에서 준비한 모기 해부였다.
모기의 몸통을 침으로 누르면서 머리를 살짝 떼어내는 이 실험은 모기의 침샘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파스퇴르연구소는 말라리아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모기의 침샘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학생들이 모기를 누르는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고 했지만 다들 흥미롭게 실험에 참가했다. 나도 기회를 얻었는데 조금 어렵기는 했지만 ‘생명과학 전공자’답게 성공할 수 있었다.
파스퇴르연구소는 정부나 대학, 기업 연구소가 아니라 사설(private) 연구소라고 한다. 파스퇴르가 광견병을 비롯한 갖가지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다. 그 연구소가 지금 2000명이 넘게 일하고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형연구소가 됐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힌 곳도 이곳이다.
파스퇴르연구소의 수입원은 30%가 정부 지원, 30%가 외부 기부다. 나머지 40%가 이 연구소가 벌어들이는 수입인데 주로 특허료다. B형 간염 바이러스, HIV, 자궁경부암 바이러스 등 3가지 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특허료 수입이 가장 많다고 한다. 무조건 따라 할 수는 없지만 국내 연구소에도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연구소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떠나기 하루 전인 금요일 점심에는 199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조르쥬 사르파크 박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전만 해도 유창한 영어로 맘껏 이야기하던 학생들이 노벨상이라는 권위에 다소 움츠려서인지 생각만큼 질문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남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큰 감동을 준 듯 했다. 샤르파크 박사가 “학교 선생님께도 ‘당신의 설명은 이상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던 말을 학생들이 많이 실천했으면 좋겠다.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연구소 탐방을 여러 번 다녔다. 학생들이 연구소를 방문하는 것도 여러 번 봤다. 그러나 이번처럼 일주일 넘는 기간동안 단체로 연구소를 방문하는 경험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연구소 탐방은 자칫 지루해지거나 연구소 홍보로 그치기 쉽다.
그러나 이번에 실험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장소가 됐던 것은 연구원들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이 흥미로워 할 만한 이벤트를 많이 마련했고 파리에 생각지도 못했던 과학박물관들이 많았던 것도 효과적이었다. 앞으로 학생들의 방문을 준비하는 국내의 많은 연구소들에게 이번 행사는 좋은 사례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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