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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한 객원기자
2020-05-06

과학의 탈을 쓴 철학, AI시대 속 정체성을 묻다 [인터뷰] ‘춤을 추듯 꿈을 꾸듯’ 김재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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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인간적인 ‘인간의 피조물’ 그리고 그보다 ‘비인간적인 인간’. 고전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이어지는 SF 콘텐츠의 유서 깊은 단골 소재다. 유전자 편집 아기가 뉴스를 장식하고 인공지능(AI)이 점차 인간의 영역에 들어오는 지금 이 순간, 이런 역설적인 대비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작년 발표된 김재아 작가의 ‘꿈을 꾸듯 춤을 추듯’도 마찬가지.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은 ‘존재의 가치’와 ‘관계’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AI와 뇌과학이 극도로 발달해 기계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몸을 갖게 된 AI가 겪는 우여곡절을 보여주면서.

작년에 발표된 김재아 작가의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은 AI가 고도로 발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존재의 가치’와 ‘관계’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과학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빌려,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유를 들려주는 우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 김재아

인간과 기계, 그 경계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이라는 제목 자체가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나타내 주는 키워드입니다. AI가 인간을 점차 닮아가는 현실에서, 3~40년 후에 과연 ‘인간만의 특징은 과연 뭘까’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굉장히 사소한 것’이라는 답을 내려본 것이죠.”

“막춤을 추면서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가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설명이다. 김 작가는 “물론 춤을 추는 행위 자체를 로봇이 따라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만큼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진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는 ‘차이’가 아닌 ‘공존’이다. 작중 AI였던 주인공 로움이 인간의 몸을 원하게 된 계기 역시 ‘꿈을 꾸고 싶다’라는, 인간을 좀 더 이해하는 동시에 친해지고 싶다는 사소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관계’ 역시 핵심 키워드다. “나를 당연히 기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기계가 되고 그래도 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인간이 됩니다”라는 대사는 작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백미. 갈수록 기계와 인간을 구별 짓기 어려워지고,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 미래 사회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예요. 궁극적으로 ‘경계를 나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죠. 작품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 내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따지는 모습이 계속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 나눔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데는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종교, 신체 차이, 성별 등 누군가가 존재를 카테고리화하면 그 자체가 선입견으로 작용해 정체성을 강하게 규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중에서 기계와 인간이 섞이고,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확인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도 그러한 지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결국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은 과학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빌려,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유를 들려주는 우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기계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모습은 이에 대한 자그마한 친절이기도 하다.

“인간끼리만 또는 가족끼리만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하면 좀 무리일까요? 다소 어두워 보이는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1%의 희망은 바로 현실에서도 유효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7할의 과학과 3할의 철학… 많은 만남 통해 얻어진 영감”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계와 정체성에 대한 신랄한 질문을 던지다가도, 뇌과학과 딥러닝 그리고 연구 윤리라는 과학적 소재를 적절히 버무려 흡입력 있게 독자들을 빨아들이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을 감상한 많은 이들의 평가는 주로 ‘과학의 껍질을 뒤집어쓴 철학 혹은 철학의 탈을 쓴 과학’이라는 것이다.

김재아 작가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얻는 영감을 ‘돌아다니며’ 구체화시킨다.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차기작에 대해서는 “우울한 분위기지만 한 번씩은 밝은” 내용이라고 힌트를 남겼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이렇게 철학과 과학이 결합된 그의 글쓰기는, 작품을 통해서도 강조되는 ‘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는 설명.

“과학과 관련된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약 300명의 과학자들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구체적으로는 철학자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와 뇌과학, 천문학, 양자역학 과학자들에게서 특히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처음엔 이진경 교수님의 존재론과 인공지능에 관한 강연을 듣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과학자나 철학자들의 인공지능 강연이란 강연은 모두 듣고, 관련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분야인 뇌과학, 천문학, 양자역학, 빅히스토리 분야 과학자들이 특히 도움이 되었죠. 하지만 이 분야가 아니어도 제가 만난 모든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았어요. 거칠게 표현하면, 이 작품의 7할은 과학, 3할은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겠죠,”

“차기작, 우울한 분위기지만 한 번씩은 밝은”

이렇게 다양한 만남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김 작가만의 시놉시스는, 오래된 취미인 돌아다니기를 통해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글로써 피어나갈 자양분을 얻는다.

“저는 기본적으로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멀미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특히 한적하고 밀폐된 고속버스 안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죠. 직장 때문에 그럴 수 없는 평일에도 조금씩이나마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질문을 세상에 던질 준비가 된 모습이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다음 작품에 대해선 이렇게 힌트를 남겼다.

“이상하게도 쓰다 보면 글이 우울해집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은 우스운 장면이 나와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재능 있는 이야기꾼의 등장이 그저 반갑고, 빠른 차기작에 고마울 따름이다.

김청한 객원기자
chkim3050@gmail.com
저작권자 2020-05-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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