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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7

과학성의 두 의미와 우리 시대의 과학정신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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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대도 과학이고 이유식도 과학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과학적인 것은 신뢰감을 주고 지적 권위를 높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반면 체계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과학적인 것은 좋은 것이고 비과학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환경오염과 같은 현대과학기술과 관련된 여러 폐해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과학정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찬찬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침대도 과학이고 이유식도 과학인 시대


우선 과학적․비과학적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침대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 아무 나무나 골라 대강 대패질을 한 다음 적당히 잘라서 그 위에 스프링 달린 이불을 올려놓아 침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재료를 어떻게 결합하여 침대를 만들었을 때 그 위에서 자는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숙면을 취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인 연구와 시험을 거쳐서 침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이는 과학적 ‘방법(method)’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방법은 대략 다음 네 가지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과학연구의 대상으로 ‘자연적(natural)' 원인만을 인정한다. 이는 초자연 현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과학적 방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초자연적 현상은 그것이 자연적인 원인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한에서만 과학적으로 타당한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과학적 방법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에 근거하여 모든 주장이 평가될 것을 요구한다. 물론 매번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의 모든 내용을 경험적으로 완벽하게 검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련 연구 분야에서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제외한 부분에 대한 평가는 경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적 방법의 셋째 특징은 ‘분석적(analytic)’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자연현상은 질적으로 다양한 여러 인과적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성격을 띤다. 분석적 방법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단순한 요소로 분해하여 그 각각을 이해한 후 나중에 그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복잡한 전체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이는 흔히 ‘환원적 방법론’이라 부르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학적 방법의 마지막 특징은 그것이 ‘체계적(systematic)'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연구자 집단끼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상대방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경쟁하는 과학적 주장들 사이의 관계를 앞뒤가 맞게 밝히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방법론적 의미의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과학적’ 방법이 연구주제에 따라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유용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분석적 방법과 기계적 모형이 생명체에 대한 연구에서 전체론적 이해에 비해 어떤 장점과 한계를 지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적어도 방법론적 의미의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지적 활동에 대한 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침대도 과학’이라고 선전하는 일은 그 침대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방법론적 의미에서 전적으로 ‘비과학적’으로 만들어지는 침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제작자들이 침대도 과학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지적 권위의 힘을 빌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이 ‘과학적’이라면 그것의 내용이 확실하고, 종종 그 진리가 보장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회사의 침대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광고는 자신들의 침대가 침대에 대한 한 가장 최고의 품질을 가졌음을 과학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갖는 지적 권위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이렇게 보장적 혹은 정당화(justification)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과학적’의 이러한 사용은 실제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당화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수많은 과학사 연구를 통해 현재 확실해진 점은 매우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얻어진 과거의 과학지식 중 상당 부분이 현재는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과학적’ 방법의 사용이 연구결과의 참을 보장하지 않는다. 주의할 점은 이 사실로부터 현재 우리가 참으로 믿고 있는 과학지식도 언젠가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므로 과학지식과 가령 신화적 믿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상대주의적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우리는 앞선 과학이론이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한계를 가졌는지를 뒤에 등장한 과학이론을 사용하여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적 믿음은 이러한 설명적 연쇄고리를 갖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사 세계관과 개념체계에 있어 극단적으로 상이한 ‘공약불가능한(incommensurable)’ 이론들이 관련된 복잡한 상황이어서 이런 식의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대개 우리는 경험적 지식의 수준에서는 연속적인 과학지식의 축적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얻어진 지식이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얻은 지식보다 대체적으로 더 믿을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식이 ‘과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서조항 없이 무조건적으로 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학적 방법의 사용이 연구결과가 참이라는 보장이나 연구결과가 유일하게 나온다는 보장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보장이 가능했다면 인류는 이미 오래 전에 전지(全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과학연구활동의 진정한 매력은 성공을 보장해주는 지적 능력이나 방법론적 도구를 가지지 않은 인류가 어떻게 때로는 흥분될 정도로 짜릿하고, 때로는 피를 말리도록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세계에 대한 신뢰할만한 이론을 창조해왔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성’이 갖고 있는 이러한 두 측면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과학연구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저작권자 2004-0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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