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미술관에서 칼더 회고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출품작들이 매우 방대하여 칼더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을 중심으로 나뭇잎, 곤충, 공룡, 새, 강아지 같은 다양한 생물 무생물의 이미지를 단순화해 만든 가느다란 줄로 이어진 철 혹은 플라스틱 조각들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저마다 다른 모양을 띄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치밀한 과학적 계산에서 나온 것들이다. 칼더 이후 과학을 응용한 움직임을 주요소로 하는 미술작품이 등장하는데 이것을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 부른다. 키네틱 아트는 미술작품이 과학이라는 토대 위에서 어떻게 변용·발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르다. 여타 키네틱 아트의 예술가들이 계산된 움직임을 실현시키려 시도한 데 비해 칼더는 자연에 근거한 우연성과 즉흥성을 강조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인기 있었던 서커스를 구경하면서 서커스 단원의 여러 동작들을 재빨리 스케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곧 철사나 나무로 서커스의 곡예사나 광대, 또는 묘기를 부리는 동물들을 만드는 소위 철사 조각으로 연결되었다. 1926년 파리로 간 칼더는 철사 조각을 더욱 발전시켜 피카소 같이 철판을 용접하지 않고 철사를 구부리고 뒤틀어 공간에서의 형태와 균형을 추구하였다.
칼더는 파리에서 화가 몬드리안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색채를 삼원색과 흑백으로 제한하면서 기하학적 형태의 상호 균형을 추구하는 몬드리안의 화면에 힌트를 얻어 선, 색채, 공간 관계를 통해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칼더의 작품은 20세기 초 유럽의 주류 화단에서 성행하였던 기계에 대한 찬미를 보여준 미래주의와 각종 산업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낸 구성주의와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30년대 선보인 초기 모빌들은 모터가 쓰이기도 했지만 이후 칼더는 기계가 아닌 공기에 의한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다. 이후에는 모터보다는 공기에 의해 움직이고 보다 우연적 효과를 보여주는 모빌을 선호하게 된다. 이는 마치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회화와도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칼더의 창의성은 그가 기계나 산업재료를 사용했지만 정작 기계보다는 항상 자연과 인간적인 요소를 우선하였고 이것이 그의 작품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느껴지는 주요 이유이며 그의 작품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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