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을 통해본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은 대표적인 백과사전의 구조를 봐도 명확히 비교된다. 프랑스 백과사전의 대명사는 계몽사조기에 출간된 ‘백과전서’였다. 백과전서는 하나의 사회운동과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주도했지만, 당시의 지식인들 거의 모두가 1751년부터 1765년에 걸쳐 수행된 방대한 규모의 출판사업에 참여했다. 백과전서파의 ‘백과전서’는 시스템을 강조한 백과사전이었다. 이런 사전은 지식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만 시대의 변화에는 둔감할 수 있다. 결국 프랑스의 ‘백과전서’는 오늘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계몽사조기를 대변하는 백과사전으로만 남게 되었다.
반면에 영국의 대표적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알파벳 사전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 사전 역시 영국적인 민주주의와 자유방임형 스타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사전은 프랑스의 ‘백과전서’와 비교할 때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시대를 통해 계속 변화해서 오늘날의 일반적인 백과사전의 형태가 되었다.
미국과학과 실용주의
미국과학의 특징은 실용주의로 대변된다. 20세기 과학을 주도했던 미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형성된 과학의 모습을 자신들의 조건에 맞도록 바꿔놓았다. 즉 유럽에서 만들어진 물리화학은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오히려 더욱 번성했으며, 고전양자론, 양자역학 등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적 토양 속에서 분자물리학, 양자화학, 고체물리학 등과 같이 실험과학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 학문들로 발전했다.
과학기술발전의 토대인 과학문화
과학문화란 과학기술과 관련하며 공유되는 삶의 양식 및 가치의 총체로서 과학기술과 관련해 인간이 획득한 지식, 법률, 관습, 사유 등 행동양식의 전체를 포괄한다. 과학문화는 국가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발전한다. 다양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선진국을 살펴보면 여지없이 과학문화가 국가발전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선 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프랑스 계몽운동의 핵심에는 뉴튼의 과학이 자리잡고 있었고 달랑베르, 콩도르세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 상당수는 과학자들이었다.
미국에서도 과학기술은 국가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피뢰침 실험으로 유명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미국헌법의 기반을 마련한 위대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독일에서 과학기술은 산업적, 군사적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과학은 국가의 명예와 위신 차원에서도 진흥, 육성되었다. 현재 막스플랑크과학진흥협회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협회의 기본계획을 창안했던 아돌프 폰 하르낙은 카이저에게 제안한 설립취지에서 과학과 군사력은 위대한 독일을 지탱하는 두 기둥임을 강조했다. 독일에서 과학기술은 국가경영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위기에 더욱 빛나는 과학문화
과학기술이 경제적, 정치적인 외적 조건에 의해서 위기를 맞더라도 쇠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문화적, 제도적인 측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양자역학 출현으로 인한 독일물리학의 황금시대는 독일 통일 이후의 번영기가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맞던 시대였다. 즉, 물리학을 뒤흔든 대사건은 엄청난 재정지원이 이루어지던 19세기 말이 아니라 저널조차 구매하기 힘들었던 1920년대에 이루어졌다. 독일이 1920년대 어려운 시기에 이처럼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을 이루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탄탄한 과학문화 기반과 그 제도적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무척 오래 걸리고 어려워도 과학기술이 쇠퇴하거나 붕괴하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기술은 발전시키기는 무척 어렵지만, 일단 과학기술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거나 대중의 관심이 과학에서 멀어지면 급속히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니는 파괴적인 성격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다. 과학이 쇠퇴 위기에 직면할 때에는 과학기술발전의 기반이 되는 과학문화의 역할이 더욱더 부각된다.
독일박물관과 과학문화
과학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려고 할 때 효과적인 수단은 과학관이다. 서구에서 과학관은 이미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민들의 과학적 마인드를 함양하는데 기여해왔다. 독일과학문화의 탄탄한 기반 역할을 한 뮌헨의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은 과학기술발명품을 보존·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각종 기구를 실제 사용하게 함으로써 과학적 원리를 알게 하는 적극적인 방식의 새로운 박물관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최초의 박물관이다. 1920년대 독일과학 황금기가 도래한 데에는 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과학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학문화의 확산을 위해 지속적이고 헌신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역할이 컸다.
우리나라 과학대중화운동과 이공계유인책
선진국의 과학대중화 운동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과학대중화운동은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이 기타의 사회문화와 유기적 연결이 결여돼 과학기술이 법률, 관습, 사유 및 행동양식 등 다른 사회적인 요소와 따로 놀고 있다. 국민들의 과학마인드도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의식도 결여되어 있다. 60, 70년대에 힘찬 첫걸음을 내딛었던 과학기술진흥운동을 오늘날 포괄적인 과학문화운동으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이공계유인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이공계학생들에 대한 평생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문화육성의 방향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문화로서의 과학문화가 창달돼야 한다. 과학문화는 청소년중심 과학진흥사업에서 탈피해 사회지도층, 기성세대를 포함한 남녀노소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과학문화는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올바른 가이드로서 과학만능주의나 반과학주의의 편향을 극복하고 올바른 과학마인드를 함양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과학문화는 전통문화와 연결되면서도 변화하는 사회의 가치관과 욕구에 부흥하는 유연한 문화로 육성해야 하며 정부보다는 민간분야의 참여유도를 통해 그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문화육성사업은 체계적 연구와 장기적 안목을 갖고 꾸준히 추진돼야 하며,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과학문화에 대한 종합적 연구 및 교육이 어우러지는 총체적 관점에서 추진돼야 하며 과학문화 자체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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