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을 파괴할 뿐이다”
“Science without conscience is the ruin of the soul.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파괴자일뿐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유명한 풍자작가이면서 교육자인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과학과 과학자가 취해야 할 책임과 덕목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위대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전 이번 연극을 통해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또 과학자와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도 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대중이 서로 호흡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이 땅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책무입니다. 생명과 영혼이 중요하고, 또 조화로운 사회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은 이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됐습니다. 4월의 불청객 황사가 그렇고, 식탁에 오르는 농약을 친 채소와 과일이 그렇습니다. 논란이 되는 유전자변형식품(GMO)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 사고도 그렇고, 가스누출사고, 심지어 날씨도 모두 과학기술입니다.
요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찬반 양론, 또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위한 방폐장 사건 등도 그렇습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환경문제입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 문제는 아주 중요한 과학적 과제입니다. 또 복제, 생명과학, 로봇공학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시 한번 짚어보면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새롭게 인식해 보자는 의도에서 이 연극을 만들어 본 거죠”
서울대 공과대학 동아리 實劇 회원들이 공연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압구정동 서울 유씨어터 극장에서 연극 ‘코펜하겐’이 상연됐다. 연극 ‘코펜하겐’의 제작고문을 맡은 한양대학교 이태식 교수(건설환경공학과)는 연극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16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코펜하겐’을 선택한 이유를 이와 같이 설명하면서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과학 대중화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연극 ‘코펜하겐’은 서울대 공과대학 출신으로 이루어진 연극 동아리 ‘실극’에서 만든 작품이다. 연극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또 과학기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 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극단이다. 과학이 주는 사실성과 진실성에 초점을 맞춰 이름도 ‘실극(實劇)’으로 지었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공연이었지만 마이클 프레인 원작의 ‘코펜하겐’이 일반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남달리 크다. 관객과 직접 대화하는 연극이라는 실질적 무대 위에서 과학과 과학자의 사회적인 책임이 무엇인지를 감명 깊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과학과 과학자의 윤리는 오늘날 북한의 핵개발뿐만이 아니다. 복제, 생명과학, 나노기술의 등장과 함께 커다란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교수는 “4일간의 공연이 너무나 짧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며 “실극 멤버가 아니라 전문 연극인에게 넘겨 장기간 상연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을 소재로 한 연극은 구성자체가 힘들다. 어렵게 만든 연극을 단기간에 끝내버려 과학을 대중에게 알린다는 원래 취지에 맞지 않아 아쉽다는 것이다.
“전문 연극인에게 맡겨 장기간 공연도 고려하고 있어”
한국공학한림원이 수여하는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할 정도로 건설교통을 비롯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 능력을 일찍이 인정받은 이 교수는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연구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학교육에서는 사실상 전무했던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문제를 다룬〈과학기술자의 윤리〉,〈공학법제〉,〈엔지니어의 윤리학〉 등과 같은 저서를 출간했다. 또 이와 같은 관련 과목들을 대학 커리큘럼에 처음으로 개설한 장본이기도 하다.
“과학과 대중과의 만남은 과학기술인이 먼저 나서야 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실극의 멤버였고 지금도 연극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과학기술 관련 연극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코펜하겐’은 방청객들에게 웃음과 해학을 주는 그런 종류의 연극이 아닙니다. 또 남녀 간의 애증(愛憎)을 다룬 작품도 아닙니다.
등장하는 당대 유명한 두 명의 핵물리학자(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겪는 이차대전이라고 하는 시대적 갈등과 고뇌를 통해 과학과 과학자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한 작품입니다. 대량살상무기인 핵폭탄 개발을 둘러싼 최고의 석학 간의 만남을 통해 이 시대의 과학과 기술을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를 이공계 커리큘럼에 처음으로 개설한 장본인
사실 과학기술을 소재로 연극을 만든다는 건 참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과학기술이 어려운 데다, 그 어려운 소재를 관람객들에게 쉽게 설명한다는 게 이만저만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실극의 선배와 후배들이 모두 합심한 작품입니다. 모두 직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고맙게 생각합니다.”
작품도 작품이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서도 이 교수가 제작고문을 맡을 정도로 ‘코펜하겐’에 집착한 이유는 또 있다. 이 교수는 실극 회장을 맡은 4년 전 당시 ‘코펜하겐’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저작권 시비에 말려 지금에야 상연하게 된 것. 끝마무리를 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교수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에겐 과학기술 못지않게 과학자의 윤리 또한 중요하다. “과학자의 윤리는 과학자의 중요한 조건이자 덕목입니다. 미국과 같은 과학 선진국에서는 공학인증제도에서 윤리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적 책임감 없이는 공학자로서 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대중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성수대교 근처에 과학연극 전문 공연극장 만드는 게 평생 소원”
그는 또 언론에 대해 한마디 쓴 소리를 던졌다. 최근 미국 미시시피 다리붕괴 사건과 관련해서다. “그런 표현이 독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고 섹시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성수대교’라는 표현이 과연 좋은 표현인지 의문이 갑니다. 성수대교 사건을 애써 숨기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먹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 ‘코펜하겐’은 우리나라 과학문화와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이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한국과학문화재단과 나도선 이사장에게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한양대 산업경영디자인대학원 원장을 지낸 이 교수는 뛰어난 과학자이면서도 과학자의 윤리와 책임을 부르짖는데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다. 과학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사회의 조화를 위해서 과학이라는 자신에게 채찍을 아끼지 않는 과학자다.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파괴자일 뿐이다.” 이 교수의 과학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연극 ‘코펜하겐’이 전달하려고 했던 의도도 그런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교수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으며 한국의 과학기술이 도마 위에 올려졌던 성수대교 근처에 과학 전문 공연 극장을 세워 보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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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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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7-09-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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