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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2004-03-28

[과학기술과 정치] 과학기술의 시대적 가치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정치적 역할 김문조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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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세계와 권력세계를 대변하는 과학과 정치는 ‘정당화(legitimation)’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지닌다. 그러나 지적 정당화를 목표로 하는 과학활동은 오랜 동안 지배적 정당성 획득을 지향하는 정치활동과 배치된 것으로 생각되어, 과학자는 가급적 정치권력에 초연하거나 멀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은 지속적 파행정국으로 정치혐오증이 누증되어온 우리사회에서 보다 강조되어, 과학자의 정치참여는 ‘까마귀 소굴에 꼬여드는 백로처럼’ 경원시되어 왔다.

하지만 제도영역간의 교류나 융합이 지속적으로 촉진되어 정치-경제-기술-문화간의 경계가 이완되어가는 근자에 이르러서는 각종 공공정책이나 기업전략에 과학적 사고나 판단력에 대한 요청이 증가해 과학자의 사회정치적 예지나 역할기대가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STS(과학기술사회론)가 학계나 사회일반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문계와 이공계로 나누어 외눈박이 지식인을 생성하고 있는 우리의 완고한 교육제도는 혁파되어야 한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활용이 때때로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유발하는 현 시점에서 ‘정치적 오염’을 이유로 과학자의 사회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것도 시대역행적 처사라고 본다. 정파나 시류를 초월한 과학자의 사회적 소명의식은 과학입국·기술입국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脫정치화’ 논리는 지식의 독점적 남·오용에 대한 경계심의 소산으로서, 그것은‘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 실현시킬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되는 근대사상가 막스 베버의 통제적 권력관과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앎이 곧 힘(Knowledge is power)’이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언명으로부터 우리는 또 하나의 권력 기반을 유추할 수 있으니, 그것은 전력이나 자력과 같은 ‘공공 자원(public resources)’으로서의 과학기술력이다. 물론 원자력에 대한 공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과학지식의 힘에도 남·오용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과학지식은 제로섬(Zero Sum)적 원리를 지향하는 통제적 정치권력과는 달리 전체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토탈섬(Total Sum)적 속성을 지닌다.


과학적 발견이나 활용이 때때로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은 인간사 전반에서 실증할 수 있는 현상으로, 그것은 근대 과학혁명기 이후의 과학적·공학적 성과들로부터 명료히 인식할 수 있으며, IT, BT, NT 등을 이용한 최근의 첨단 과학기술제품이나 장비

등을 통해서도 널리 간지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건은 기본적으로 만인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활용가치와 발전방향을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올바로 진단평가할 수 있는 사회정책적 역량을 배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과학기술의 시대적 가치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류역사를 되돌아 볼 때, 과학지식이 오늘날처럼 인간의 삶에 결정적 영향 과학기술의 시대적 가치와 과학자의 사회정치적 역할력을 행사했던 때가 없었다고 본다. 기후변화나 지각변동과 같은 자연재해에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노출되던 고대사회에는 자연현상에 관한 체험지에 해당하는 소박한 지구학(terrestriology)이 지식의 핵심이었으며, 모든 것이 신의 섭리로 귀결되었던 神중심의 중세사회에는 신학(theology)이 지식체계의 원천이었다. 반면 계몽주의의 도래와 함께 사고의 관심이 신에서 인간에게로 이행된 근대는 인문학(humanities)의 전성시대였으나, 19세기 말 과학기술혁명(Scientific Technological Revolution) 이래‘앎의 방식’인 과학이‘삶의 방식’인 기술과 융합되어 막강한 사회구성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기술학(technology)이 인류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적 변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개발주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인은 이러한 시대적 동향에 부응해 막강한 사회구성력을 발휘하는 현대 과학기술의 가치, 쓰임, 동학에 관한 규명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심정윤리의 차원을 넘어선 책임윤리의 정립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 “알면 알수록 더더욱 행

복해질 것이다(The more we know, the happier will we be)”라는 콩도르세(Condorcet)의 천진한 낙관론이 기술발달에 비례한 재난의 고도화를 강조하는 위험사회론자들의 주장에 의해 전면적으로 도전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대중화를 표방한 일과성 행사,’ ‘이공계 진학생의 장학제도 강화,’ ‘과학기술자의 처우 개선’ 등에 천착해 온 우리사회의 과학활성화 방안은 일이십년 이내의 시간대를 염두에 둔 단기적 개선책을 탈피한 중장기적 시각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암기나 주의주장 이전에 기본 원리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요하는 지적 고투(intellectual struggle)를 동반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과학적 진리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무분별한 진술이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보편성이 입증되어야 할 ‘특별한 지식(special knowledge)’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강국을 향한 선진화 전략은 ‘재미가 아닌 의미’, ‘유인이 아닌 선택’, ‘처우가 아닌 예우’를 겨냥한 진지한 과학사회학적 담론을 통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고통이나 숙고를 강조하는 ‘고뇌형 사회’에서 질펀떠들썩한 난장에 연연하는 ‘축제형 사회’로 전환되는 면모가 역력하다. 그러나 엄정한 검증 절차에 의한 반증가능성(falsification)을 감수해야 하는 과학활동까지 굳이 축제모드에 편입시켜야 한다면 그것은‘고통의 축제’라고 명명할 수 있는 바, 광폭한 악마와의 사투가 아닌 유혹적 악마의 시험대에 놓인 한국의 과학기술에는 영화산업진흥책 같은 것과는 격을 달리한 원대한 발전 패러다임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

저작권자 2004-03-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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