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어린이가 과학적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는 과정을 상정해 보자. 그는 의문을 가진다. 예컨대 쇠 조각을 끄는 자석의 힘이 멀리 미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작은 전구의 빛은 멀리 갈수록 어두워 지지만 적당한 반사경과 짝 지워 만든 풀래쉬는 먼데까지 잘 비춘다. 자석의 힘도 이렇게 집속하여 먼데 있는 물체를 끌어 붙일 수는 없을까? 또 금속 중에도 어떤 금속 혹은 합금이 자석에 끌리는가?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저것 소 도구로 실험을 해 볼 수도 있지만 결국 확실한 해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책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 그는 여러 가지 자석을 써서 만드는 장치도 볼 수 있고 자기장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 책은 특히 교과서는 공부하는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인터넷으로 숙제하고 공부하는 시대에도 교과서는 콘텐츠의 경전이다. 우리의 초 중등과정 과학 분야의 교과서들을 보면 실망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외국의 교과서들과 대비하면 과학교과서가 너무 초라하고, 흥미롭지 못한 내용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는 한심스런 특징이 있다.
지금 온 나라에 과학기술분야를 공부하겠다는 학생이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을 놓고 많은 논의가 있는 데, 근본적 문제의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체험하는 교과서에 있다는 논의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래 전부터 미국의 어린 학생들의 교과서를 접할 기회가 있어 우리 교과서들 보다 월등히 훌륭함에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의 잘못과 빈약함이 우리 사회의 과학 문화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탓이 이런데 있다는 주장을 다른 기회에 한 바 있거니와 빈약한 교과서, 잘못된 교과서는 우리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과학 기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어처구니 없는 개악(改惡)의 경향까지 나타남을 보고 놀란다.
“해보자”, “알아보자”의 병폐
내가 한심스런 우리 교과서들의 특징이라는 것의 하나는 초등학교와 저급 중등 교과서에 현저하게 나타난다. 잘 그려진 그림과 생각을 유도하는 좋은 질문들, 잘 고안된 실험 아이디어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것 밖에는 없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엇을 “해보자”, “알아보자”, “어떻게 다른가 얘기해 보자” 등의 지시나 질문만 던져 놓고, 과학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술과 설명이 없다.
우리 세대가 어려서 배운 교과서에는 있지 않았던 특징들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되는 경향을 개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무릇 과학의 교육은 실험을 해 보고 탐구 해 나가면서 체험 학습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게 해야 한다는 일견 그럴듯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틀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교육학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본일이 있다. 그들 생각은 교육은 지식을 넣어주는 것(注入)이 아니고 스스로 알아 내야 한다는 것, 책에 제시된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고 생각도 해본 다음 궁극적인 해답은 교사가 교사지침을 근거로 해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박-순진(naïve)한 생각은 대체로 과학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파고들어 공부 해 보거나 과학을 가르쳐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스스로 탐구하는 작업에는 교과서를 포함하는 문헌의 탐색이 꼭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의문이 생길 때 정리된 설명을 찾아볼 책이 없는 것이다.
과학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다. 그 업적은 과학적 법칙과 원리, 논리적 설명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그 정리된 사실을 학생에게 제공하는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청소년들에게 기초적 과학 지식을 제공하고 그를 기초로 하여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데 있다.
교사나 책의 저자가 생각치 못한 문제에까지 의문을 품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는 능력과 흥미를 키우게 해야 한다. 교과서가 구체적 질문으로 제기하지 않는 문제까지 궁금한 생각을 갖는 학생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이런 의문에 대하여 생각할 자료가 교사가 제공해주는 지도에서만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 대서야 말이 안 된다. 교사의 설명은 학생의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에 때를 맞춰 제공될 수도 없는 一過性 일 수 밖에 없고, 간단한 교사지침서와 교사 자신의 지식수준의 한계에 묶여있다(유능한 과학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가 과학의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거침없이 지도할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겠는가?). 그 많은 “해보자”라는 실험들은 그 반에서 반만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은 어디서도 불가능 할 것이다. 지나친 부담은 학생들을 멀리할 뿐이다.
재미있는 책이라야
과학이 모든 학생에게 흥미진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면의 구속에서 약간이라도 자유로워 지면 재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가 접한 미국의 초·중등 교과서에는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고 유용한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실생활에 관계되거나 산업적으로 혹은 환경 보호에 중요한 응용의 예도 많았다.
다채로운 그림도 책에 친근감을 갖게 한다. 교과과정의 필수 내용만을 앙상한 뼈대처럼 모아놓은 우리 책들과 대비된다. 한 예로 미국의 초등학교 책들이 왜 공룡의 얘기를 크게 취급하는 지를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공룡의 다채로운 그림들과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여러 종류 공룡의 이름들을 어린이들이 접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물이나 진화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게 하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대단한 흥미의 대상이며 자연에 대한 친근한 관심과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책의 크기와 체제, 비용의 문제
근년에 이르기까지 고등하교 교과서에서는 위에서 말한 “해보자”, “알아보자”의 병적 특징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의 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나온 책들은 어처구니없이 개악되었다. 외형상으로는 다채로운 그림으로 좋아진 것 같이 보이기도 하나 위에 말한 초등학교 교재의 병폐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도 획일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교과서에 설명이 적기 때문에 학교교육에만 의존할 수 없고 과외와 학원강습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책들은 왜소하고 좀 초라하다. 작은 쪽수에 필요한 요목을 다 집어 넣자니 까 설명은 짧고 부연 설명이나 비유, 실생활에 관계된 예, 흥미로운 삽화 같은 읽을 거리 등이 적어 앙상하다. 우리 고등학교 교과서는 우리가 그리 부러워 할 수 없는 일본 교과서를 닮은 데가 있다. 그렇게 된 첫째 이유는 아마 교육부가 책의 크기와 쪽 수 단원별 내용과 순서, 책 값 등을 단단히 규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마 학부모의 부담을 크게 고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비까지 포함하여 우리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교육비용의 규모가 지금 어떤가.
책 같지도 않은 참고서라는 것들에 소비하는 돈은 얼마나 많은가. 교과서가 두 세배로 커졌다 해도 그로 인한 비용의 증가는 새발의 피다. 공교육의 내실을 위해서 수 십년 전 기준으로 만들어진 규제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 개선의 길은?
교육부의 규제가 풀린다고 해도 단번에 좋은 책이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고 본다. 저작도 전통 위에 나온다고 보며 수십 년간 쌓여온 병폐가 단기간에 고쳐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책을 쓸 과학자들에게 큰 동기부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리 시장이 좁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성과를 논문 생산으로 만 계량화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교과서의 저작은 교수의 업적으로 잘 인정되지 않는다. 아마 상당기간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개선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첫 단계로 시대에 맞게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미국에는 교과서라는 틀이 없고 저자들이 일반 서적을 쓰는 스타일로 써서 시장에 내 놓으면 지역 교육위원회에서 자기들의 기준에 맞는 것을 채택하는 것으로 안다. 미국이라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어떤 연구 그룹에서 교과서의 잘못을 조사하였고 학계에 물질과학 분야 교과서에 잘못된 지식이 많이 들어 있다는 보고서가 제출 되었다고 한다.
좋지 못한 교과서 때문에 미국이 과학 수준에서 뒤진다는 비난도 나온다(John Hubisz, Physics Today, May 2003, 50; http://www.science-house.org/ middleschool/ reviews/ index.html). 그러나 우리와 다른 것은 교과서의 질적 문제에 무관심한 우리와 달리 거기서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논의한다는 데 있다.
청소년 층에서 과학기술계의 인기가 떨어진다고,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고 들먹이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의 원인과 대처방안의 핵심이 모두 교육인적자원부에 관계되는데, 과기 인력양성이 마치 과기부의 전담 사항인양 그릇된 인식이 팽배함도 보인다. 우리의 미래에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공교육을 통해서만 제대로 될 수 있는 과학교육의 중심 도구로서 교과서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자.
편향된 교육학적 고정관념과 탐구학습의 미몽에서 과학책을 해방시키자. 과학 교과서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은 과학자들의 영역으로 가져오자. 저자들이 자유롭게 하여 다양한 책들이 나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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