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도 불어라, 젠더혁신 바람

편견 없는 과학계 만들기 위한 젠더 혁신

최근 ‘미투운동(#MeToo)’으로 촉발된 사회적 젠더 이슈가 여기저기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던 문제인 만큼 그 파급력도 커지고 있다.

젠더 중립적일 것 같은 과학계 또한 젠더 문제가 계속 대두되고 있다. 고위직에 여성들이 배제되고 성별에 의해 일자리 차별 대우 문제는 표면적으로 부각된 젠더 이슈이다. 신약개발에서 자동차 안전실험에 이르기까지 남성 중심의 연구 개발로 인해 여성들의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아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과학계에서는 이제라도 여성 과학기술인 양성과 활용 확대를 통한 연구계의 젠더 균형을 맞추고 젠더 편향된 연구 개발 과정에 젠더 편견을 제거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성 중심 연구개발이 불러온 부작용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 의약품 시장에서 퇴출된 10개의 약 중 8개는 여성에게 더욱 심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미국 회계감사기관 GAO(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에서 원인을 조사한 결과 신약 개발 단계에서 성별 격차를 무시하고 수컷 동물 위주의 실험과 남성 위주의 임상실험 결과를 토대로 신약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신약 등 의약품과 의료 연구 개발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으로 나타났다. ⓒ Pixabay.com

그동안 신약 등 의약품과 의료 연구 개발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으로 나타났다. ⓒ Pixabay.com

현재 미국에서 시판되는 600여 가지의 약물 중 1/2 이상이 남녀 간 약물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신약이나 치료 개발 등이 남성이 만들고 남성에게 테스트해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발생했다. 과학기술 연구는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는 과학적인 증거들이다.

이혜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젠더혁신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중일 과학기술분야의 젠더이슈’ 포럼에서 그동안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할 만큼 여성에게 불리한 연구개발 사례들을 발표했다.

먼저 심장병이다. 심장병은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남성들의 병으로 인지하고 주로 남성 위주의 실험과 진단, 치료법이 개발되어왔다. 하지만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연구 결과 이처럼 성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구개발로 인해 여성은 남성보다 진단이 늦고 사망률 또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성별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성 중심의 약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체계 또한 남성 중심의 설계로 발전되어왔다. 현재 도시의 교통체계는 건강한 남성들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용자의 이동성 데이터 분석을 여성의 역할로 변경해 다시 시뮬레이션 한 결과 전혀 다른 교통체계가 완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은 2006년~2007년 목적에 따른 대중교통 사용을 남성 중심의 분류에서 여성의 젠더 역할 요소인 쇼핑, 육아를 고려해 재분류하였더니 도시의 대중교통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남녀 모두를 위한 연구로 새로운 산업가치 증대

자동차 충돌시험에 사용되는 실험용 인형 ‘더미(Dummy)’에도 성 차별 요소가 있었다. 주로 자동차 안전실험을 할 때 사용하는 여성용 더미는 남성의 축소모형으로 여성과는 뼈와 피부 구조 등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여성 과학자 젠더 운동을 벌이고 있는 NGO 활동가 엘리자베스 폴리처(Elizabeth Pollitzer)는 이러한 연구개발 때문에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 충돌 테스트에도 성별 간 격차가 발생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용 더미를 중심으로 여성의 안전을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다. ⓒ 현대자동차 충돌테스트_https://vimeo.com

자동차 충돌 테스트에도 성별 간 격차가 발생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용 더미를 중심으로 여성의 안전을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다. ⓒ 현대자동차 충돌테스트_https://vimeo.com

그는 지난해 3월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여성과학기술인 정책 제안 토론회에서 “여성은 자동차 충돌 사고 시 남성보다 47% 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남성은 시속 65km에서 사고가 많은데 비해 여성은 시속 20~65km 사이의 자동차에 충돌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폴리처(Elizabeth Pollitzer)는 “이렇게 성별에 따라 부상의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크지만 현재 충돌 실험에는 이러한 남녀 차이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 핵심 기술로 알려진 음성인식 개발도 젠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음성인식 개발을 할 때 남성 음성에 맞추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음성은 주파수 음역대가 전혀 다르다. 남성 중심의 음성개발은 여성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제대로 기기가 대처하지 못해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학계 또한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시스템이 만들어져 왔다. 이러한 문화를 하루아침에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젠더 문제 자체를 인식하고 꾸준히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진정한 젠더혁신이 가능해진다.

이혜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과학계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남녀 모두를 위한 연구로 연구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증진시키고 젠더 편견이나 편향성을 제거한 새로운 연구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한다”며 “이를 통해 구매력과 의사결정 영향력이 증대된 여성의 수요와 요구를 수용한 특화된 기술개발로 산업가치가 증대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과학계에 만연해 있는 편향된 젠더 문제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젠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연구개발 풍토와 남녀 모두를 위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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