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해와 함께 인류의 역사와 늘 동행 해왔던 존재입니다. 하루의 절반은 해가 비춰주고 절반은 달이 지켜주었으니, 인류는 지금까지 존재한 시간의 반을 달과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천체 중에서 가장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벗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인류의 우주 탐험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탐사의 목적지가 된 곳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지구 외에 인간의 발이 닿은 유일한 천체입니다.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의 마지막 달 착륙 이후 20여 년간 달은 우주 탐사의 변방에 있었습니다. 갈릴레오 탐사선이 그랬듯이 목성 가는 길에 잠깐 들러 가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 밖 천체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 후보로 등장한 것이 달과 화성이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곳이었지만 외계에서의 인간 거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 거주 가능성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은 달의 정밀한 지도 제작과 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90년대 중반에 클레멘타인과 루나프로스펙터라는 두 대의 탐사선을 달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루나프로스펙터는 달의 극지방에 충돌하면서 까지 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달 탐사에 나선 주자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스마트 1호입니다.
스마트 1호는 유럽우주기구 ESA(European Space Agency)에서 설계하고 스웨덴에서 제작된 유럽 최초의 달 탐사선입니다. 여러 종류의 달 탐사선 중에서 특별히 스마트 1호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탐사선이 기존의 궤도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궤도를 따라 달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서 출발한 탐사선들이 달까지 가는 데에는 보통 3일에서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스마트 1호의 경우에는 달까지 가는데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03년 9월 27일에 쿠루우주센터에서 아리안 5호 로켓으로 발사된 스마트 1호는 지금도 달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겨우 1/3 정도 되는 곳까지 가있을 뿐입니다. 사고라도 난 걸까요? 왜 그리 오래 걸리는 걸까요?
스마트 1호는 다른 탐사선들처럼 타원형 궤도를 따라 한번에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 궤도를 따라 빙빙 돌면서 서서히 달까지의 거리를 좁혀 가고 있습니다. (그림 2)에서처럼 스마트 1호는 단번에 달까지 날아가지 않고 지구 둘레를 계속 돌면서 천천히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발사 한지 이제 8개월 정도 되었는데 지구로부터 약 12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전진한 상태입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직선으로 약 384,400 킬로미터이니까 현재 1/3 정도 되는 곳까지 가 있는 셈이지요.
스마트 1호는 고체 로켓, 액체 로켓에 이어 제3의 엔진이라 불리는 전기추진 엔진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 중인 전기추진 엔진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먼저 실용화가 된 제논 이온 엔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주 공간에서 탐사선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주로 사용한 것은 하이드라이진을 연료로 사용하는 액체 엔진이었습니다. 이것의 원리는 상온에서는 기체 상태인 하이드라이진 가스를 고압의 연료 탱크에 액체 상태로 저장했다가 밸브를 열면 연료가 관을 통해 흘러 나와 노즐에서 기화하면서 뿜어져 나가는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산화질소(N2O4) 같은 산화제를 함께 사용해서 추진력을 크게 만들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온 엔진은 전기를 이용하여 제논 연료를 이온화시킨 다음 제논 이온을 가속시켜 아주 빠른 속도로 우주선 밖으로 내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 제논 이온이 배출되는 속도는 초속 30킬로미터에 이르는 아주 빠른 속도입니다.
이온 입자의 배출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추진력 자체는 아주 작습니다. 왜냐 하면 이온 입자의 질량이 워낙 작기 때문입니다. 작용-반작용의 원리에 의해 우주선이 얻게 될 가속력은 배출 물질의 질량과 배출 속도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온 엔진의 경우에는 배출 속도는 높지만 배출되는 물질이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이온이다 보니 질량이 아주 작아서 실제로 엔진이 내는 힘은 사람이 입으로 부는 정도의 힘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온 엔진은 지상에서는 그다지 쓸만한 물건이 못 됩니다.
그런데 힘이 약한 대신에 이온 엔진은 장시간 동안 작동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엔진들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내는 것과 같은 크기의 가속력을 오랜 시간에 걸쳐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즉, 아주 작은 추진력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배출함으로써 서서히 우주선의 속도를 올려 가는 원리입니다. 보통 고체 엔진은 몇 분, 액체 엔진은 몇 십분 정도 연속으로 작동하는데 비해 이온 엔진은 수십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연속으로 작동할 수가 있습니다.
이온 엔진의 최대 장점은 기존의 액체 엔진에 비해 연료 효율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똑같은 양의 속도증가분을 얻는데 기존 엔진에 비해 1/10 정도의 연료만 소모할 뿐입니다. 따라서 탐사선의 연료 탱크 부피와 연료 무게가 그만큼 줄어들고 더 많은 탐사용 장비를 탑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스마트 1호가 달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년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탐사선은 적어도 500회 이상 나선 궤도를 선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스마트 1호는 2005년 하반기 중에 달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달에 도착하면 스마트 1호는 달 주위를 선회하는 타원형 궤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타원형 궤도는 아주 길쭉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달에 가까운 쪽에서는 표면으로부터 300 킬로미터 지점을, 반대쪽에서는 달 표면으로부터 10,000 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마트 1호는 높은 고도와 낮은 고도를 오가며 탐사선에 장착된 X-선 촬영 카메라를 이용해서 표면의 지질 성분 조사와 달 표면의 정밀한 지형 촬영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스마트 1호를 비롯해서 근래에 발사되었거나 준비 중인 달 탐사선들이 찾는 목표는 물입니다. 사람이 거주한다든지, 달에서 귀환용 로켓의 연료를 만든다든지 하는, 지금 보다 한 단계 진보된 형태의 탐사 활동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물이 있어야 가능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달에 탐사선을 보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달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는 매우 희귀한 헬륨-3 원소가 달에서는 지면 가까이에 상당한 양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륨의 동위 원소인 헬륨-3은 핵융합 발전소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핵융합 발전은 무공해에다 방사능의 염려가 없어서 화석 연료를 대체할 만한 미래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리라 전망되고 있습니다.
달에 헬륨-3이 많은 이유는 대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헬륨-3은 태양에서 날아오는데 지구에는 대기권 때문에 막혀서 지표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달 표면에는 이것이 고스란히 쌓이는 것입니다. 달에는 약 100만 톤가량의 헬륨-3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약 30톤의 헬륨으로 미국의 1년간 소요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고 하니까 100만 톤의 헬륨-3라면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은 지구 전체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원을 캐내어 지구로 운반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장비의 개발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둡고 막막하고 먼지뿐이라 생각되었던 달이 미래에는 우주의 페르시아 만이 되어 연료 수송선이 매일 지구와 달 사이를 오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참고 사이트)
http://www.esa.int/export/esaSC/120371_index_0_m.html
http://www.ssc.se/ssd
http://sci.esa.int/science-e/www/object/index.cfm?fobjectid=35238
/김방엽 항공우주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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