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을 움직이는 다양한 동력 중에서, 풍력은 인류가 활용한 최초의 자연에너지다. 범선(sailing ship)이 그 대표적인 예로서, 지금도 풍력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선박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런 형태의 선박은 대부분이 소형 요트 같은 레저용 선박들이다. 화물선 같은 커다란 선박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최근 들어 이런 거대한 선박들을 풍력으로 움직이게 만들려는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마그누스 효과를 활용한 새로운 풍력 에너지
과학기술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최근 원통 기둥이 일으키는 풍력 에너지를 통해 움직이는 새로운 형태의 선박이 등장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선박이 움직이는 원리는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 링크)
마구누스 효과란 독일의 과학자인 ‘하인리히 마그누스(Heinrich Magnus)’가 날아가는 포탄에서 발견한 법칙이다. 구(sphere) 또는 원기둥이 회전하면서 유체 속을 지나 갈 때 회전축과 진행방향으로부터 수직으로 힘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구나 원기둥이 공기 속에서 회전할 때,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휘어지게 되면 앞으로 직진하는 힘이 발생하는 원리인 것이다. 예를 들면 야구에서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거나, 축구에서 무회전 킥을 할 때 공이 휘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마구누스 효과 때문인 것이다.
공의 회전축과 같은 방향의 공기는 가속을 받아 속도가 빨라지고, 반대쪽은 공기의 속도가 느려져 압력이 높은 쪽이 낮은 쪽으로 공을 밀어내면서 휘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마그누스 효과는 공기의 밀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구장에서는 공의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1910년대에 마그누스 효과가 처음 밝혀지면서 당시 조선업계는 이 원리를 이용하여 선박 제작을 추진했다. 원기둥 형태의 회전자인 로터(rotor)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선박을 ‘로터쉽(rotor ship)’이라고 불렀다.
최초로 탄생한 로터쉽은 1920년에 건조된 ‘baden-baden’이었다. 배의 선미와 후미 부분에 하나씩의 로터를 가진 이 선박은 남아메리카에서부터 뉴욕까지 장거리 항해를 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지만, 1931년에 폭풍을 만나 좌초되었다.
baden-baden호가 사라진 이후 3개의 로터가 달린 ‘buckau’호가 건조되면서 로터쉽이 다시 등장했지만, 화석연료가 선박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뒤떨어지게 되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8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풍력 터빈을 만드는 독일 회사인 에너콘(Enercon)이 다시 로터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그누스 효과를 이용하여 과거보다 더 효율적인 풍력 에너지 선박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수립한 것.
물론 풍력 에너지의 효과만으로는 대형 선박을 100%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 연료를 적게 사용하는 선박을 만드는 것이 에너콘사의 첫 번째 목표였다.
이런 목표아래 에너콘사는 효율면에서 볼 때, 과거의 로터쉽과는 차별화된 ‘이-쉽원(E-ship1)’을 건조했다. E-ship1은 길이 130m, 너비 22.5m의 대형 선박으로서, 지름 4m, 높이 27m의 회전자(rotor)가 회전하며 마그누스 효과를 통해 배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제작되었다.
에너콘사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E-ship1은 마그누스 효과를 통한 풍력 에너지로 같은 규모의 선박들 보다 최대 25% 정도의 연료를 더 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연이 받는 풍력을 활용한 선박도 등장
E-ship1보다 먼저 새로운 개념의 풍력 에너지를 사용하여 유명세를 탄 선박으로는 ‘스카이세일(SkySails)’이 있다. 커다란 연을 배에 달아, 그 연이 받는 풍력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이 선박은 마치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재미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의 ‘SkySails-GmbH’사가 개발한 이 선박은 바람이 세게 부는 해역에 다다르면 320㎡ 정도 되는 면적의 대형 연을 100~300m 높이로 날린다. 그리고 여기서 확보한 풍력 에너지를 선박이 움직이도록 하는데 힘을 보탠다.
이 회사의 첫 번째 작품은 ‘MS Beluga Skysails’라는 이름의 대형 화물선이다. 화물선의 관계자는 “대형 연을 달고 운항한 결과 약 10~35% 정도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SkySails-GmbH사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화물선들이 스카이세일을 도입할 경우, 연간 총 1억 4600만 톤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선 분야의 전문가들은 “E-ship1이나 SkySails 등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증기 기관과 풍력을 같이 사용하는 21세기형 기범선이라 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새로운 풍력 추진 시스템들이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초과하는 효율성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이런 유형의 신개념 선박을 보는 일은 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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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8-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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